간은 심각한 손상이 된 뒤에도 특별한 증상을 나타내지 않는다. 간을 ‘침묵의 장기’로 부르는 이유다. 간의 침묵으로 인해 간암은 국내 암 사망률 2위나 된다.
간암 발병 경로를 거꾸로 추적하면 그 시작은 대부분 간염이다. 특히 C형 간염은 예방 백신이 없는 데다 만성 간염으로 이어질 위험이 매우 높다.
안타깝게도 C형 간염 검사는 아직 국가건강검진 대상 항목이 아니다. 다행히 조기 발견해 먹는 약으로 치료하면 98% 이상 완치할 수 있다. ‘세계 간염의 날(7월 28일)’을 앞두고 C형 간염에 대해 알아봤다.
◇C형 간염, 증상 나타나면 이미 늦어
간염은 간세포나 조직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이다. 바이러스가 원인일 때가 많다. 바이러스 종류에 따라 AㆍBㆍCㆍDㆍE형 간염으로 구분되고, 급성과 만성으로 분류된다. 만성 간염은 간염이 6개월 이상 낫지 않고 지속될 때를 말한다.
C형 간염 유병률은 1%(50만 명)로 추산된다(대한간학회). C형 간염은 평균 7~8주 잠복기를 거치는데 대부분 증상이 없다. 드물게 황달이 생기거나 피로감, 소화불량, 체중 감소 등이 나타나지만 아주 경미한 수준이다.
따라서 환자 대부분은 증상을 느끼지 못해 20% 정도만 치료를 한다. 대부분 건강검진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30~40%의 환자는 간경변증과 간암으로 악화한다.
C형 간염은 AㆍB형 간염과 달리 예방 백신이 없다. 철저한 관리가 중요한 이유다. C형 간염 바이러스(HCV)는 최소한 6개 유전자형과 50개 정도의 RNA 바이러스 아형(亞形)이 있어 백신 개발이 어렵다.
C형 간염은 AㆍB형 간염과 달리 수혈과 주사기를 통해 주로 감염된다. 지금은 C형 간염 바이러스가 수혈로 인해 감염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모든 혈액 제제는 수혈 전 혈액검사를 한 뒤 문제가 없을 때에만 수혈하기에 이로 인한 C형 간염 전파는 거의 없어졌다.
하지만 주사기를 통한 감염 위험은 여전하다. C형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에게 쓰인 주사기가 다른 사람에게 다시 사용돼 전염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이 같은 주사기 재사용으로 C형 간염 집단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또한 면도기ㆍ칫솔ㆍ손톱깎이 등을 같이 사용하거나, 문신ㆍ피어싱ㆍ 반영구 화장ㆍ침 시술ㆍ정맥주사 등이 최근 늘면서 C형 간염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8~12주 정도 약 먹으면 98% 이상 완치
C형 간염은 6년 전까지만 해도 바이러스 유전자형(1~6형)에 따라 6개월~1년 동안 치료해도 50%밖에 완치되지 못했다. 주사제와 ‘리바비린’이라는 먹는 약(항바이러스제)을 함께 사용하는 치료법인데, 약물 부작용까지 생겨 치료에 어려움을 겪는 환자가 많았다.
그런데 짧은 기간에 완치되는 경구용 항바이러스 치료제(DAAㆍDirect-acting Antiviral Agents)가 개발돼 건강보험 적용까지 받을 수 있게 됐다. 모든 C형 간염 바이러스 유전자형(1~6형)을 치료할 수 있는 약(마비렛)도 나왔다. 8~12주 동안 하루에 한 번 약을 먹으면 98% 이상 완치될 수 있다.
심재준 경희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C형 간염 치료제 발달로 거의 완치될 수 있게 됐지만, 진단 후 치료받는 비율은 60%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30년까지 C형 간염 퇴치를 목표(2030년까지 전체 환자 90%를 진단하고 80% 이상 치료)로 국가별 C형 간염 퇴치 계획 수립과 범국가적인 검진 권고와 지원 정책 시행을 촉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ㆍ프랑스ㆍ대만 등 여러 나라에서 C형 간염 검사 대상을 늘리고 무료 검사를 진행하면서 C형 간염 조기 발견에 나서고 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