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모빌리티 시장 진출을 노리는 애플과 기아의 협력이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이번에는 국내가 아닌 애플과 관련이 있는 해외에서 자세한 협력 방안이 제기됐다. 애플 전문가로 알려져 있는 궈밍치(郭明錤) 대만 TF인터내셔널증권 연구원이 △애플이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기반으로 ‘애플카’를 설계하고 △기아 조지아 공장에서 애플카 1차분을 생산하며 △향후 GM과 PSA와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 협력을 고려한다는 애플의 구상을 전한 것이다. 출시 시기는 오는 2025년 이후로 제시했다. 현대차그룹으로서는 ‘미국 내 생산’을 강조하고 있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기조에도 호응하는 효과를 꾀할 수 있다.
기아는 처음 협력설이 제기됐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직 결정된 게 없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서는 애플과 현대차그룹, 특히 기아와는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다고 분석하고 있다.
우선 주목받는 것은 현대차그룹의 미국 내 생산능력이다. 애플이 애플카를 만든다면 처음 투입하는 시장은 자연스레 미국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애플의 ‘안방’이자 중국을 제외하면 세계 최대 자동차 소비 대국이다. 첨단 차량을 테스트하기에도 좋은 환경이다. 최근 글로벌 기업들에서는 생산 기지를 저임금 지역보다는 소비 시장에서 가까운 곳에 두는 흐름이 관측된다. 이 같은 흐름에서 보면 애플 또한 양질의 차를 미국 내에서 안정적으로 생산해 미국 시장에 적기 공급할 수 있는 업체를 찾을 가능성이 크다.
업계에서는 이 조건에 현대차그룹이 딱 맞아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기아와 현대차는 각각 미국 조지아와 앨라배마에 연산 35만 대, 36만 대 규모의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필요시 ‘미국-캐나다-멕시코 협정(USMCA)’으로 미국과 연결된 멕시코 기아 공장(36만 대)도 활용할 수 있다. 세 공장을 합치면 현대차그룹은 북미에서만 연산 107만 대의 대규모 양산 체제를 갖추고 있다. 공장 주변에 현대모비스를 비롯한 부품 서플라이체인도 완벽히 갖추고 있다는 장점도 있다.
세계 2~4위를 오가는 전기차 판매 경험도 강점이다. 한마디로 애플카의 기반이 될 전기차를 만들 줄 안다는 뜻이다. 여기에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탑재한 모델들이 올해부터 나오면서 현대차그룹의 경쟁력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미래차의 두뇌에 해당하는 운영체제나 칩셋을 잘 만들어진 뼈대에 적용하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는 애플로서는 기아가 최적의 파트너인 셈이다. 현대차그룹 외에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갖춘 전통 자동차 기업은 GM과 폭스바겐이 있지만 폭스바겐은 미국 내 생산 시설이 미미하다.
애플과 현대차그룹의 협력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저마진으로 아이폰을 생산하고 있는 폭스콘처럼 종속적 협력 관계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현대차그룹 또한 이 부분에서 고민이 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현대차가 아닌 기아를 중심으로 애플과의 협력설이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대차가 아닌 기아를 중심에 놓고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는 얘기다.
자체적으로 미래차 기술에 투자하고 브랜드를 구축하고 있는 현대차와 달리 기아는 최근 들어 ‘디바이스 공급자’를 자처하고 있다. 송호성 기아차 사장이 “목적기반모빌리티(PBV)가 기아의 주요 미래 먹거리”라고 공언했을 정도다. PBV는 쇼핑·음식·게임·유통 등 각 고객들의 목적에 맞게 생산된 차량 또는 이동 중에 이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즉 PBV를 유연하고 빠르게 제작해 각 고객들에게 공급한다는 게 기아의 전략인데 이 같은 모델에서는 애플과의 생산 협력에서 오는 리스크가 훨씬 줄어든다.
오히려 기아로서는 E-GMP 기반의 애플카를 대량생산하며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다. 또 이를 ‘트랙 레코드’ 삼아 다른 서비스 회사들에 PBV를 공급할 수 있다. 지난달 ‘CES 2021’에서는 GM이 일종의 PBV 기반 신사업 ‘브라이트드롭’ 을 발표하면서 “페덱스 등 유통 업체들에 전용 전기트럭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PBV 시장은 향후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 같은 모델이라면 생산 부분에서도 충분히 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며 “스마트폰과 차는 다르고 폭스콘과 기아도 다르다”고 말했다.
<박한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