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수속을 할 당시 방송국 기술과 전기 담당 과장으로 있다가 그만 둔 김태업씨가 찾아와 휴게실에서 기다린다고 해 가 보니 탤런트 최길호, 김난영, 정혜선, 최정훈, 장욱제씨 등이 함께 있었다. 김태업씨는 부친(공군 대령 예편 이 화양동에 세운 운전학원 총책을 맡게 돼 특별히 KBS TV 탤런트인 우리에게 무료 운전교육을 제공하겠다고 해 우리는 좋은 기회라 즉석에서 등록을 했고 나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되면 가장 중요한 것이 자동차 운전이라 적기라고 생각 했다. 교육중 운전 실력은 부족했지만 시험관들이 탤런트라고 쉽게 합격을 시켰다. 한국은 좋은 점도 많고 돈과 배경만 있으면 안되는 것이 없다. 앞으로 미국에 가 살게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한국에서 살던 방식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알게 됐다.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미국으로 이민 간 한인들이 서로 싸우고 시기하며 밀고와 사기까지 치고 있다는 말이 있고 그 때문에 이민 가면 한국사람을 조심하라고 해 나는 각오를 단단히 했다. 미지의 나라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 한국 사람이 없는 곳에서 훌륭한 미국 시민으로 존경을 받을 수있는 코리언 아메리칸이 되겠다고 굳은 각오를 했다.
그런데 이제 돌이켜 보니 그 각오가 아직도 미완성인 상태가 됐다. 앞으로 이민을 가면 고국에는 다시 오지 못할 운명이 될지도 몰라 떠나기 전에 고궁과 사찰 등을 순회하기로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려서 부모들 따라 멋도 모르고 따라 다니는 형편이었다. 미국 이민 또한 어린 아이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고 자녀 교육을 위한 이민이라는 주장과 뜻은 어른들이 이민을 가기 위한 자기 변명에 불과했다. 문화 유적지를 돌아 보면서도 이민에 대한 꿈과 희망의 도취돼 무지개빛 신천지가 눈 앞에 아롱거리고 신이 났지만 아무런 보장이나 근거가 없는 생소한 미지의 땅 미국이 나에게 무엇을 주고 꿈을 이루게 할 것인지 긍정과 부정의 명암이 계속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여행을 끝내고 신무대 실험극회 소극장 연극 동우들이 나를 위해 베푼 축복의 송별연에 참석했다. 극작가 이철향씨와 부인 권미혜씨 TV 연출가 ( 용의 눈물) 김재형씨 부부와 김순철씨, 그리고 최불암씨와 부인 김민자씨, 이묵원씨와 부인 강부자씨, 최정훈씨 부부와 전운씨 부부 등과 함께 만찬을 나누고 작별의 순간을 보내면서 착잡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었다. 그 동안 연극에 가시밭 길을 함께 걸었던 연극 동인들과 방송 관계자들과 작별을 하고 연극 배우에 대한 대망의 꿈을 지상 목표로 정하고 살았던 것을 일시에 포기하고 이민을 떠나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나는 스스로 배우의 길을 포기하는 낙오자가 되고 패자가 된 것이다. 연극을 최고의 예술이라고 믿고 살려고 했던 꿈이 완전히 끝이 나는 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