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미생물을 완벽 차단
9개월간 변하지 않게 유지
뚜껑은 4중 필름
용기 재질도 3중 처리
20각 용기는 찌그러짐 방지
바닥 주름은 조리시간 단축
초고압·필요한 만큼만 도정
업체마다 맛 내기 차별화
집밥이 그리울 때가 있다. 고슬고슬하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누가 봐도 금방 지은 것 같은 밥 한 공기. 어머니의 자식 사랑이 듬뿍 담겨 있을 것만 같고, 한 숟가락 가득 담아 입 안에 넣을 때면 온 몸이 따뜻해지는 기운을 느낄 수 있는 밥 말이다.
그럴 때 떠올리는 즉석밥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어머니의 집밥은 분명 아닌데, 맛있다. 제조일자를 보면 며칠 지났거나 간혹 몇 달 전에 만들어진 것도 있는데 겉모습은 영락없는 집밥이다. 전자레인지에 데워져 나온 밥은 겉모습과 맛에서 최근 어디선가 맛있게 먹었던 집밥에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즉석밥을 먹으면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도대체 어떻게 만든 거야?“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는 거야?” 성급한 몇몇은 단정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몇 달 동안 상하지 않는 것을 보면 특별한 약품 처리가 돼 있는 게 분명해. 방부제 같은 것 말이지.“ 과연 그럴까?
20개 기둥으로 만들어진 밥그릇엔 이유가 있다
현재 국내에서 즉석밥을 시장에 내놓고 있는 기업은 CJ제일제당, 오뚜기, 동원F&B세 곳이다. 이들이 추산하고 있는 시장 규모는 지난해3,650억원 가량. 이 중 즉석밥 하면 먼저 머리에 떠올리는 CJ제일제당 ‘햇반’의 점유율은 압도적이다. 작년에만 4억개 이상을 팔아 전체 즉석밥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차별화된 포장기술’을 강조한다. 방부제를 포함해 어떠한 첨가물을 넣지 않고 오직 물과 쌀만으로 밥을 짓는다. 그런데 그 밥이 9개월간 상온에서 상하지 않는 건 물론, 밥맛이 전혀 떨어지지 않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가장 먼저 꼽는 비결은 철저한 외부와의 차단 기술이다. 밥은 산소와 접하는 순간부터 신선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시간이 길어지면 결국 공기 중에 있는 미생물 때문에 상하게 된다. CJ제일제당 패키징센터 김용환 연구원은 “산소와 미생물을 완벽하게 차단하기 위해 자체 개발한 특수 포장재를 사용한다”며 “뚜껑이 일반적인 비닐처럼 보이겠지만 거기엔 4중 특수 필름이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용기와 밥에 직접 닿는 접착층이 맨 아래 있고, 그 위에 외부 산소 유입을 막는 산소 차단층, 또 유통 과정에서 가해질 충격을 견디게 해주는 강도보강층과 상품명 등을 적을 수 있는 인쇄층까지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필름이 네 겹으로 층층이 싸여 있는 것이다.
용기에도 비밀이 숨겨져 있다. 끓는 물에 넣어도 성분과 외형이 변형되지 않는 폴리프로필렌(PP)으로 만들어진데다 모양도 단순히 동그랗기만 한 게 아니다. 조금씩 각이 져 있는데 그게 20각이다. 이를 “밥을 적게 담으려는 상술”이라고 각을 세우는 이들도 있지만, 각 하나하나가 기둥 역할을 하면서 용기가 쉽게 찌그러지는 걸 막아준다는 게 CJ제일제당의 설명이다.
재질도3중으로 돼 있다. 바깥쪽 표면은 강도보강층으로 외부 충격에 견딜 수 있게 해주고, 중간은 외부에서 침투를 시도하는 산소를 막는 동시에 내부에서 나가는 밥의 향을 차단해준다. 안 쪽에 하나가 더 있는데, 이는 안 쪽에서 수분이 날아가는 걸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포장된 햇반을 손에 들고 아무리 냄새를 맡아봐도 밥 냄새가 나지 않고, 데운 밥은 수분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바닥 주름도 제 할 일이 있다. 보통 전자레인지로 데워 먹게 되는데, 움푹 들어간 쪽으로 전자레인지 마이크로파가 자유롭게 오가면서 바닥밥을 위쪽과 동일한 온도로 데워질 수 있게 한다. 전체 조리 시간을 단축시키는 효과도 있다.
밥 자체가 맛있어야 한다
그래도 제일 중요한 건 역시나 ‘얼마나 좋은 쌀로 맛있는 밥을 지어 용기 안에 넣어두느냐’다. 보존할 맛 자체가 없다면, 특별한 용기 기술은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
‘센쿡’을 내놓고 있는 동원F&B는3,000기압에 달하는 압력밥솥의 2,500배 정도의 초고압으로 밥을 짓는다고 한다. 이를 통해 쌀을 포함한 잡곡 등 곡물 내부에 수분을 적절하게 침투시킬 수 있다. 특히 이 공법은 흰 쌀밥보다 잡곡밥 맛을 키우는데 탁월하다고 한다. 동원F&B는 “백미에 비해 여러 층으로 외피에 둘러싸여 있는 맵쌀은 일반 공정으로는 그 거친 식감을 제어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오뚜기밥‘을 만드는 오뚜기 측은 ‘원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저온창고에 보관하다 그 때 그 때 필요한 만큼만 도정을 해 쌀의 신선도를 살린다는 것이다. 쌀은 도정을 하는 순간부터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햇반‘은 여름철 쌀이 도정된 뒤 생산공장까지 갈 때 차 안에서 50도 이상 열기를 받아 신선도가 떨어진다는 점을 발견, 물류과정을 최소화하는 등의 시도를 하고 있다. 이들 업체들은 반도체에 버금가는 ‘무균 공정’으로 내부의 미생물을 완전히 제거하는 과정도 빼놓을 수 없는 즉석밥 제조 기술이라고 강조한다.
끝으로 많은 이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을 하나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즉석밥을 상온에 보관하면 상하거나 맛이 떨어지지 않을까 싶어 냉장 보관을 하는 이들이 있는데, 앞으로는 무심하게 부엌 어딘가에 그냥 던져 두자. 냉장고에 보관하게 되면 쌀 안에 있는 전분이 노화 되면서 굳어지거나 딱딱해진다고 한다. 뚜껑을 열지만 않는다면 무관심 또한 맛을 지키는 또 하나의 비결인 것이다. <남상욱 기자>
<밥 사진=게티이미지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