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자(시인 수필가)
장수사진을 준비했다. 영정사진을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뜻으로 표현된 것이다. 오래전 가족사진을 촬영하는 날이면 최선으로 입성을 고르고 머리도 매만지고 분단장도 하면서 사진촬영에 임하곤 했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여자는 역시 꾸민 만큼의 효과가 있었던 시절 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단정하고 민폐 수준이 아니면 되는 기준에 머물고 있어서인지 현상, 인화된 장수 사진을 받아 든 순간 낯선 노인네를 만났다. 여위고 굴곡진 얼굴, 급조된 늙음이 고스란히 표출된 왜소한 얼굴이 미소를 머금은 듯 거기에 있었다. 우리 집 할배는 젊었을 때부터 영화배우 해도 되겠다는 소리를 들어온 전력이 있는지라 역시 멋진 노신사 위상이 여전한데 그 옆에 선 나이 든 아낙의 모습은 가벼운 충격 수준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늙으면 안 되겠구나 싶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최소한 범죄형으로 보이지 않으면 되는 것이고, 밤에 보면 무서울 정도는 아니었기에 다행으로 삼기로 했다. 좋지 않은 일에 연루 돼있어 주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얼굴도 있는 반면 나이 들면서 점점 준수한 외모로 바뀌는 얼굴도 있다. 몰라볼 만큼 순화되고 아름다워진 분들도 만나게 된다. 해서 인지 거의 10년 20년 세월을 넘긴 얼굴을 만나게 되면 그 간의 삶의 궤적을 짐작하게 되기도 한다. 얼굴은 인생을 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하고 한 편의 자서전 완성을 보게 된다. 풍파와 연륜의 흔적이 새겨지고 세월이 선물한 가장 정직한 지도가 그려진다. 나이 들수록 자신이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노년의 할머니 가슴에 와 닿는다.
신기한 것은 장수사진을 계속 바라보는 동안 눈 가에 피어난 주름마저 따스한 풍경이 되어 다가온다. 나이든 아낙의 여정이 그려낸 단 하나의 걸작을 마주하고있다. 지나온 시절의 바람과 햇살이 고스란히 머물러 있다. 사진 속의 할머니가 말하지 않아도 그가 걸어온 길을 나지막하게 속삭여주고 있다. 담백하고 직관적인 할머니 만의 고유한 분위기가 고여 있다. 숨길 수 없는 인품과 성품까지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어떠한 분장, 분단장도 감출 수 없는 연륜의 아름다움이 배어 있다. 십년은 앞서버린 늙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쥐 꼬리 만한 인자함이 겨우 눈에 띠인다. 세월이 흘렀다고 갑자기 예뻐 질리는 없음이지만 편안하고 안정된 분위기로 변해 있다. 부드럽고 착해 보인다. 착하게 후하게 살아야 한다고 우기며 이익과 영달을 위해 누구의 뒤통수도 치지 않고 신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기에.
이제는 사람 얼굴을 보게 되면 어떤 인생 여정을 심어왔는지 짐작이 간다. 살아오는 동안 심어왔던 말, 소양, 생각들이 삶의 이미지를 그려왔기에 삶을 통해 얼굴에 떠오르기 마련 이다. 탐욕으로 안달복달하는 인생은 흉한 모습을 남기게 되고, 한결같이 우직하게 양보하며 손해보는 일을 밀어내지 않으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그 흔적이 고스란히 주름살 위에서도 드러나 보인다. 여기까지 써놓고 얼른 거울을 가져다 본다. 부끄러운 글은 아닌가 하고. 회심의 미소가 떠오른다. 역시 내 편은 이 할머니 밖에 없음을 확인하게 된다. 얼굴을 가꾸듯 마음도 함께 가꾸어야 할 일이다. 피부로션을 바르 듯 주름진 내 얼굴에도 미소를 바르고 주름살이 만든 늙음을 자애와 평온을 끼치는 얼굴로 다듬어 가야겠다.
장수 사진을 마주하게 되면서 어린아이나 청년처럼 마냥 맑고 힘찬 것일 수만은 없음이요, 상처 받지 않은 마음도 없을 것이라서 표정이나마 나이를 재촉해서는 안될 일임을 깨닫게 해준다. 얼굴이란 거울 속에 비친 이목구비의 수려함이 아닌 살아온 세월 흔적이자 타인을 대하는 마음의 결이 고스란히 배어 나오는 영혼의 이면이다. 내 이름을 앞세우고 살아온 사회적 구조에 걸맞는 품격을 지켜내려는 의지로 살아온 ‘인생 값’이 바로 외면과 내면의 조화를 이루는 ‘얼굴 값’의 본질일 것이다. 얼굴은 인생을 비추는 거울이요, 나이 든 얼굴은 살아온 인생의 성적표라는 말에 비추어 따뜻한 마음과 겸손과 사랑으로 채워지는 삶을 남은 날 동안의 숙제로 삼아야 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