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5,200m 빙하, 1,200m 아래 추락 정황
“빙하·암석 잔해가 하류로 급류 일으킨 듯”
돌발홍수·협곡 지형·순례자 많아 피해 급증
![네팔의 트리슈리 지역 마을에 대홍수로 인한 엄청난 산사태가 휩쓸고 지나간 모습. [로이터]](/image/fit/296291.webp)
지난 26일 네팔과 중국 국경에서 발생한 대홍수는 고지대의 빙하와 암석이 함께 무너지는 이른바 ‘빙암 붕괴’에서 시작됐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전에 비가 내리지 않아 기존 홍수경보체계가 작동하기 어려웠고, 좁고 깊은 V자형 협곡이 물과 토사의 속도와 파괴력을 키운 데다 관광·순례객이 몰리는 지역을 덮치면서 피해가 커졌다고 분석한다.
국제통합산악개발센터(ICIMOD)는 영상과 피해 지역 자료를 예비 분석한 결과 “대량의 빙하·암석 잔해가 보테코시강 지류인 렌데강으로 유입돼 물과 토사, 큰 바위를 하류로 밀어내는 급격한 물살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빙암 붕괴는 고산지대에서 빙하가 기반암·빙퇴석 등과 함께 갑자기 무너져 흘러내리는 현상이다. 27일 중국 매체 펑파이에 따르면 천펑페이 중국과학원 부연구원은 “높은 곳에서 무너진 빙하와 암석이 빙하호(湖)로 떨어지면 거대한 파도가 일어나 빙하호가 순식간에 터질 수 있다”며 “이때 방출된 홍수가 이동 경로의 느슨한 물질을 휩쓸어 파괴력이 큰 토석류(흙과 돌이 물에 뒤섞여 급류처럼 쏟아지는 현상)로 변한다”고 말했다.
지진 신호와 위성영상 분석도 빙암 붕괴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다. 연방 지질조사국(USGS)은 당초 규모 4.4 지진으로 분류한 진동을 재분석한 결과 실제 지진은 없었으며, 빙하 붕괴와 토석류가 만든 신호였다고 정정했다. 로이터가 검토한 위성영상에서도 해발 약 5,200m에 있던 빙하 말단부가 떨어져 약 1,200m 아래 계곡으로 추락한 흔적이 확인됐다. 빙암 붕괴 잔해가 렌데강의 물을 밀어내거나 물길을 일시적으로 막아 급류를 만들고, 이 물살이 보테코시강을 거쳐 트리슐리강 하류까지 이어졌다는 게 현재까지 유력한 가설이다.
과학자들은 처음 빙하와 암석이 붕괴한 원인도 조사 중이다. 기후변화에 따른 온난화로 히말라야의 눈과 빙하, 영구동토층이 빠르게 녹고 있는 현상이 원인이란 설이 유력하다. 대니얼 슈커 캐나다 캘거리대 지질학과 교수는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대홍수 직전 카트만두에서 북쪽으로 약 64km 떨어진 곳에서 600m에 달하는 얼음 덩어리가 빙하에서 깔끔하게 떨어져 나갔다”며 “재난 발생 전 약 24시간 동안 막대한 양의 눈이 녹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유엔은 2023년 보고서에서 최근 30년간 네팔 설산 빙하의 약 3분의 1이 소실됐다고 밝혔다.
이번 대홍수는 비도 오지 않았는데 갑자기 들이닥쳐 사전 대비가 불가능했다. 하팀 샤리프 텍사스대 샌안토니오 캠퍼스 수문학 교수는 재해 전 강우가 없었다는 점에 주목해 “이는 사실상 전 세계에서 운용되는 모든 홍수경보체계를 무력화한다”고 말했다. 강우량과 하천 수위를 전조로 삼는 기존 체계로는 돌발적인 빙암 붕괴를 포착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보테코시강 일대의 좁고 깊은 V자형 협곡은 급류의 속도와 파괴력을 높이는 통로가 됐다. 도러시 하인리히 영국 레딩대 연구원은 “산악지대의 좁은 강이 눈사태나 산사태로 막히면 많은 물이 몰리고, 엄청나게 빠른 홍수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천 부연구원도 “빙암 붕괴의 속도가 매우 빨라 상류 붕괴에서 하류 재해까지 시간적 여유가 극히 짧고, 효과적인 대피 경보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ICIMOD에 따르면 당시 하류 트리슐리강의 일부 수위는 30분 만에 최대 9m나 올랐다.
재해 지역이 세계 각지에서 순례객들이 거쳐 가는 ‘히말라야의 관문’이라는 점은 외국인 피해를 키웠다. 힌두교·불교 등 4개 종교 신자들이 신성시하는 카일라스산은 해마다 여름철이면 순례객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네팔과 중국 시짱자치구에서 실종된 약 1,500명 가운데 외국인은 약 800명이다. 네팔 실종자 826명 가운데 외국인은 약 500명이었으며, 실종 관광객 중 인도인이 177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상당수는 카일라스산으로 향하던 순례객으로 추정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