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정치불안 우려에… 한인 전문직 신청 사례도
유럽 포르투갈·몰타, 뉴질랜드 등 투자이민 인기
가주 부자들이 전체 20%…“만일 대비 보험 성격”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한인 재 김씨. 아내와 4세 아들을 둔 김씨는 현재 포르투갈 거주권 취득 절차를 밟고 있다. 출생증명서 공증과 지문 등록 등 각종 행정 절차를 거쳐 50만 유로(약 57만 달러)를 국제 투자펀드에 투자할 예정이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인공지능(AI) 아키텍트로 일하는 김씨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것 가운데 하나는 결국 선택권”이라고 말했다.
포르투갈 거주권을 신청한 김씨 부부는 당장 이주할 계획은 없다. 그러나 미국의 장기적인 정치적 안정성과 아들의 미래에 대해서는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 부부는 장차 포르투갈에서 은퇴할 가능성과 함께 아들이 미국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유럽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한다.
미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이처럼 캘리포니아의 부유층 사이에서 거액을 투자해 해외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확보하는 이른바 ‘골든비자’가 새로운 자산관리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LA 타임스(LAT)가 13일 보도했다. 특히 해외 투자이민 전문업체들의 고객 가운데 캘리포니아 주민이 전 세계 고객의 최대 20%를 차지할 정도로 관심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당장 미국을 떠나기보다는 미국의 정치·사회 상황이 악화될 경우에 대비해 ‘제2의 거주지’를 확보하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LAT에 따르면 최근 부유한 캘리포니아 주민들이 포르투갈과 몰타, 뉴질랜드 등 해외 국가의 영주권과 시민권을 얻기 위해 투자이민에 나서는 사례가 사상 유례없는 수준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들이 이용하는 제도는 흔히 ‘투자 시민권’ 또는 골든비자로 불린다. 일정 규모 이상의 자금을 해당 국가의 부동산이나 기업, 펀드 등에 투자하면 일반적인 이민 절차보다 쉽게 영주권 또는 시민권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미국 전체의 골든비자 신청 건수를 집계하는 정부기관은 없지만 투자이민 전문업체들은 지난 5년간 관련 문의와 신청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전했다.
한 업체의 경우 5년 전만 해도 캘리포니아 고객이 연간 3명 정도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100명을 넘어섰다. 일부 업체에서는 전 세계 투자이민 고객 5명 가운데 1명이 캘리포니아 주민일 정도다. 세계적인 부호들이 대거 거주하는 캘리포니아의 특성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부유층이 해외 거주권을 확보하려는 가장 큰 이유로는 미국의 정치적 불안에 대한 우려가 꼽힌다.
투자이민 업체 래티튜드의 에릭 메이저 대표는 미국 고객의 약 85%가 정치적 불안에 대한 우려 때문에 해외 거주권이나 시민권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그가 상대하는 캘리포니아 고객들의 평균 순자산은 약 2억5,000만 달러에 달하며 이들은 제2의 여권을 확보하기 위해 평균적으로 약 100만 달러까지 지출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인들의 투자이민 수요 자체도 크게 늘었다. 2019년만 해도 메이저 대표의 전체 고객 가운데 미국인은 5% 미만이었지만 현재는 전체 고객의 약 75%를 차지한다. 부유한 미국인, 특히 캘리포니아 주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은 유럽이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의 거주권이나 시민권을 확보하면 유럽 내 여러 국가에서 거주와 취업, 교육 등의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이민 업계에 따르면 유럽에서는 포르투갈과 몰타가 특히 인기가 높다. 투자 대신 혈통을 통해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시민권을 취득하는 방법도 있다. 아일랜드와 이탈리아 등은 부모나 조부모가 해당 국가 출생자 또는 시민이었던 외국인에게 일정 요건 아래 시민권 취득 기회를 제공한다. 뉴질랜드 역시 캘리포니아 부유층의 관심을 끌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골든비자를 신청하는 부유층 대부분이 당장 미국을 떠날 계획은 없다는 것이다. 상당수 국가는 영주권을 유지하기 위해 연중 대부분을 현지에서 거주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런던에 본사를 둔 라비다 골든비자의 폴 윌리엄스 최고경영자는 제2의 거주권을 확보하는 행위를 일종의 ‘보험’에 비유했다. 집에 불이 나거나 사고가 발생할지 알 수 없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보험에 가입하는 것처럼 해외 거주권을 미리 확보해 둔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