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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의 의미, 기억에서 실천으로”

미주한인 | 사회 | 2026-04-29 09:13:02

오늘 LA 폭동 34주년, 대니 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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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LA 폭동 34주년

한·흑 화합 대니 박씨

스키드로우 마켓 운영

소외된 이웃 공존 실험

“다인종 협력·봉사·참여

다음 세대로 이어져야”

 

 LA 다운타운 커뮤니티 마켓을 운영하며 한·흑 화합에 앞장섰던 한인 2세 대니 박씨가 근무지인 민족학교에서‘4.29 간담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상혁 기자]
 LA 다운타운 커뮤니티 마켓을 운영하며 한·흑 화합에 앞장섰던 한인 2세 대니 박씨가 근무지인 민족학교에서‘4.29 간담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상혁 기자]

 

 

34년 전인 1992년 4월29일. LA 한인사회가‘사이구(4.29)’로 기억하는 그날은 단순한 폭동의 날짜가 아니다. 수많은 한인 이민자들이 미국사회 안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뼈아프게 깨닫게 된 사건이었고, 동시에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상처와 질문의 출발점이었다. 34년이 지난 지금, 한인 2세 대니 박씨는 4.29를 다시 이야기하는 이유를“과거를 기억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의 책임이 무엇인지 묻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대니 박씨는 LA 다운타운 스키드로우에서 ‘스키드로우 피플스 마켓’을 운영하며 한·흑 화합을 앞장서 실천했다. 이 마켓은 원래 그의 부모가 4.29 이후 생계의 어려움 속에서 운영하던 작은 가게였다. 이후 박씨는 이 공간을 노숙인과 저소득층 주민들이 필요한 물품을 구하고, 직원들과 대화하며, 때로는 도움과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바꿔 나갔다.

박씨의 스토리는 LA 타임스 등 주류 언론에도 소개되며 한인사회와 흑인·저소득층 커뮤니티 사이의 새로운 관계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받았다. 이 마켓은 지난 2024년 흑인 주도 비영리단체가 운영을 이어받아 박씨의 한·흑 화합의 철학을 계승하고 있다.

현재 LA 민족학교에서 커뮤니티 권익 활동가로 일하는 박씨는 28일 민족학교에서 열린 4.29 관련 커뮤니티 대화 모임 준비를 주도했다. 이 행사에는 이민자 권익, 연방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자 지원, 한반도 평화와 군사주의 반대, 한·흑 관계 회복 등 다양한 현장에서 활동해온 한인 및 아시안 아메리칸 활동가들이 모였다. 그는 이번 모임의 취지를 “흩어져 보이는 문제들이 실제로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어로는 “점을 연결하는 일(connecting the dots)”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4.29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우리의 아픔, 슬픔, 상실을 봐야 한다. 동시에 지금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우리의 책임이 무엇인지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씨에게 4.29는 개인사와 가족사를 관통하는 사건이다. 1992년 LA 폭동 당시 그는 아홉 살이었다. 직접 폭동 현장에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주변의 가까운 지인들 가운데 피해를 입은 이들이 많았고, 부모 세대가 겪은 충격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그는 “그때는 너무 어려서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며 “그저 난리가 났다는 분위기만 기억난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며 4.29의 의미는 그에게 더 깊어졌다. 박씨는 4.29를 “한인들의 의식이 깨어난 순간”으로 본다. 당시 많은 한인 이민자들이 ‘문제가 생겼을 때 아무도 우리를 도와주러 오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는 것이다. 그는 “가게들이 불탔고, 경찰은 오지 않았다. 많은 이민자들이 그때 아메리칸 드림의 다른 얼굴을 본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가족 역시 4.29 이후 사업 실패와 생계의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부모는 스키드로우 지역에서 마켓을 운영했고, 박씨는 훗날 그 공간을 ‘스키드로우 피플스 마켓’으로 바꾸었다. 그는 이곳을 운영하면서 자신의 관점도 달라졌다고 했다.

스키드로우에서 만난 주민들의 삶은 한·흑 관계를 단순한 갈등의 구도로만 볼 수 없게 만들었다. 박씨는 한인 이민자들도 힘들게 일하며 살아왔지만, 흑인 커뮤니티와 다른 저소득층 주민들도 일자리, 주거, 생계 문제 속에서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고 말했다. 서로의 삶에 쌓인 스트레스와 고통이 갈등으로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인사회가 이제 더 넓은 미국사회와 연결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끼리만 있으면 관점이 좁아질 수 있다. 미국은 다양한 사회이고, 그 다양성이 힘이다. 한인사회도 한인만 볼 것이 아니라 타인종 커뮤니티와도 협력하고 봉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4.29를 직접 겪은 1세대가 점점 고령화되고, 2세와 3세가 커뮤니티를 이끌어가는 지금, 그는 젊은 세대에게 ‘참여’를 강조한다. 뉴스를 읽거나 의견을 갖는 것에서 멈추지 말고 커뮤니티와 정치 과정에 직접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씨는 4.29를 매년 기억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30주년, 35주년, 40주년 같은 기념비적 해가 아니더라도 멈춰 서서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는 너무 바쁘게 살아간다. 코로나도 그냥 지나가듯 지나왔고, 많은 사람들이 무거운 것을 안고 살아간다. 그걸 풀어야 한다. 대화하고, 먹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에게 4.29는 과거의 상처이자 현재의 책임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불편한 대화를 피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는 “나쁜 일이 있었다고 말하지 않으면, 우리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며 “그러면 비슷한 해악이 다시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4.29를 단순히 한인과 흑인 사이의 갈등으로만 보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책, 지역, 자원 배분, LA의 구조적 불평등까지 함께 봐야 한다는 것이다. 34년이 지난 지금, 박씨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기억은 멈춰 있는 추모가 아니라 관계를 다시 만드는 실천이어야 합니다.”

 

<로스앤젤레스 한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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