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김성희 부동산
이규 레스토랑
첫광고

[수필] 빈 잔으로는 누구의 갈증도 채울 수 없다

지역뉴스 | | 2026-04-20 10:49:39

수필,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빈 잔으로는 누구의 갈증도 채울 수 없다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도대체 왜 이래요?”

점심시간, 정적을 깨는 날카로운 고함과 함께 접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직감적으로 강 할머니가 계신 곳으로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강 할머니가 먹다 남긴 반찬을 옆 사람 그릇에 인심 쓰듯 옮겨 놓은 것이 화근이었다.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다. 양로원에서 어르신들과 지내다 보면 베풂이라는 선행 뒤에 숨겨진 모순을 자주 목격한다. 평생 ‘보여주기식’ 삶에 길들여진 강 할머니에게 나눔은 그저 선함의 제스처다. 상대방에게 그것이 필요한지, 혹은 불쾌감을 주지는 않을지는 안중에도 없다. 버리기는 아까운 것들을 처리하면서 ‘나누어 주었다’는 만족감만을 챙기는, 상대의 감정에 눈을 감은 무례함 일 뿐이다. 당뇨로 식단을 관리하는 사람에게 “비싼 거니 괜찮다”며 먹다만 과자나 빵을 억지로 쥐어 주는 투박한 호의는, 받는 이에게 그것은 달콤한 간식이 아니라 처리하기 곤란한 짐이자 건강을 위협하게 된다. 

 

일방적인 호의는 때로 친절의 탈을 쓴 폭력이다. 내가 주는 것이 상대에게 짐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 채, 자기만족에 취한 선행은 진정한 베풂이 아니다. 그저 '나는 무언가를 베푸는 선한 사람'이라는 자아도취적 이미지를 완성하기 위해 상대를 이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는 이타심이 아니라, 자신의 도덕적 허영심을 채우려는 지극히 이기적인 행위다. 결국, 준비되지 않은 상대에게 억지로 밀어 넣는 호의는 상대를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가 아닌, 나의 선행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고 만다.

 

나 역시 타인을 위해 사는 것만이 이타심이라 믿었다. 부탁을 거절한 날이면 죄책감에 밤잠을 설쳤고, 내 것을 지키려는 마음을 욕심으로 치부하며 스스로를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강 할머니의 행동을 볼 때마다 상대가 달가워하지 않는 친절이 과연 선행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혹시 나도 진정성 없는 껍데기뿐인 베풂으로 내 안의 결핍을 감추며 살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심리학자 웨인 다이어는 “당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남에게 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지당한 말이다. 흔히 이타주의를 ‘나를 희생하는 것’이라 정의하지만, 내 안의 샘이 말라 있다면 어떻게 타인의 갈증을 축여줄 수 있겠는가. 베풂의 진정성은 나를 억지로 깎아내는 고통이 아니라, 내 안의 풍요가 차고 넘쳐 자연스럽게 밖으로 흘러나올 때 시작된다. 나를 온전히 세우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타인의 삶을 지탱할 진정한 여유도 생겨나는 법이다.

 

나를 돌보지 않는 선행은 결국 나를 지치게 하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내가 나를 충분히 사랑하고 행복을 소중히 여길 때 비로소 타인의 아픔도 있는 그대로 보인다. 내가 평화로울 때 건네는 따뜻한 눈빛 한 번이, 형편을 헤아리지 않은 채 밀어 넣는 사탕발림보다 훨씬 숭고한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 내 잔이 비어가는 줄도 모른 채 남의 잔을 채우려 허덕였고, 그 허기짐을 이타심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왔던 것은 아닐까.

 

매일 아침 차 한 잔을 마시며 내 마음의 안부를 먼저 묻는다. 내 마음의 샘에서 맑은 물이 흐르지 않는데 어찌 타인의 목마름을 해결해 줄 수 있으랴. 내 안의 풍요로움이 밖으로 흘러넘칠 때 진정한 베풂이 시작된다는 진리를 믿으며, 이제는 나를 먼저 채우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껍데기뿐인 이타심의 허울을 벗어던지고, 먼저 나를 극진히 사랑하는 ‘행복한 이기주의자’가 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남은 생애에 내가 세상에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하고도 위대한 봉사라고 확신한다. 빈 잔으로는 그 누구의 갈증도 채울 수 없기에.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한인타운 동정〉 '한미장학재단 남부지부 장학생 모집'
〈한인타운 동정〉 '한미장학재단 남부지부 장학생 모집'

한미장학재단 남부지부 장학생 모집조지아, 앨라배마, 플로리다, 테네시, 사우스 캐롤라이나 대학에 재학중인 학부, 대학원생으로 6월 30일까지 신청 접수를 받는다. 온라인 www.k

군사용 해상 드론 기업 조지아 진출
군사용 해상 드론 기업 조지아 진출

블루 옵스, 발도스타에 생산시설 연내 100명 고용...향후 200명 군사용 해상 드론을 생산하는 유명 기업이 조지아에 진출한다. 조지아가 국방관련 산업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는

귀넷 도서관, 소상공인 및 창업 지원 기금 확보
귀넷 도서관, 소상공인 및 창업 지원 기금 확보

연방기금 33만 달러 확보 귀넷 카운티 공공 도서관이 조지아주 전역의 소상공인 교육 프로그램을 위해 연방 지원금을 받는 5개 도서관 중 하나로 선정됐다.존 오소프(Jon Ossof

“ICE에 시 자원 지원 절대 안돼”
“ICE에 시 자원 지원 절대 안돼”

애틀랜타 시의회 결의안 채택ICE 활동 관련 첫 공식 입장  애틀랜타 시의회가 연방이민세관단속국(ICE) 활동을 제한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의결했다. 실질적 효과와는 상관없이 도널드

실종 동생 집 몰래 판 캅 남성 ‘쇠고랑’
실종 동생 집 몰래 판 캅 남성 ‘쇠고랑’

닮은 외모에 운전면허증 이용 실종된 한 남성의 집이 형에 의해 매각돼 경찰이 신분도용 사기 및 주택담보 사기 사건으로 수사에 착수했다.21일 WSV-TV 보도에 따르면 캅 카운티에

조지아 대법관 선거, 낙태 이슈로 진영 대결
조지아 대법관 선거, 낙태 이슈로 진영 대결

내달 9일 2석 선거 앞두고 낙태 찬∙반단체들 지지선언 무당파 선거로 치러지는 조지아 대법관 선거가 낙태 이슈를 중심으로 보수와 진보 진영간 대결로 변질되고 있다.조지아 대법원은

조지아 ACA〈오바마케어〉가입자 10명 중 4명 포기
조지아 ACA〈오바마케어〉가입자 10명 중 4명 포기

1년 새 150만명→ 97만명연방 보조금 종료가 주요인의료계 “상당수 무보험 전락” 조지아의 연방 건강보험개혁법(ACA) 일명 오바마 케어 가입자 규모가 급감했다. 이에 따라 무보

옥타 애틀랜타, MODEX 2026 방문
옥타 애틀랜타, MODEX 2026 방문

북미 최대 물류 전시회AI·로봇 기술 동향 점검 세계한인경제무역협회(월드옥타) 애틀랜타 지회(지회장 썬박)가 북미 최대 물류·공급망 산업 전시회인 ‘MODEX 2026’을 찾아 스

[비즈니스 포커스] 강스 트리 서비스: “집의 가치를 높이고 안전을 설계한다”
[비즈니스 포커스] 강스 트리 서비스: “집의 가치를 높이고 안전을 설계한다”

“리모델링 안목으로 위험한 나무 골라내고 경관까지 살려” 강스 트리 서비스의 강희준 대표는 조지아에서 손꼽히는 ‘나무 전문가’이기 이전에 수백 채의 주택 리모델링을 진두지휘했던 건

최초 ‘개헌 재외투표’ 등록마감 임박
최초 ‘개헌 재외투표’ 등록마감 임박

총영사관 “27일까지”  대한민국 헌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로 헌정 사상 처음으로 재외국민이 참여하는 국민투표가 실시될 전망인 가운데, 재외 국민투표 투표권 등록 신청 마감이 불과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