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첫광고
김성희 부동산
이규 레스토랑

[윌셔에서] 당찬 시작

지역뉴스 | | 2025-01-16 11:52:38

윌셔에서,허경옥,수필가,당찬 시작

권순상 노흥성 부동산 470-218-6136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작은 장미가 한 송이 앞마당에 피었다. 지난겨울 이사 올 때부터 마당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나무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놓인 디딤돌을 끼고 있는 작은 마당이다. 보통은 크고 작은 꽃들로 화려할 법한 그곳은 전 주인의 무관심을 고스란히 보여 주고 있었다. 주변에서 굴러들어 온 덤불들이 마른 모래와 섞여 버석거리는 그 땅에는 흔한 잡초들도 보이지 않았다. 황폐한 땅 한 구석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키도 채 자라지 않은 작은 나무가 하나 빼빼 마른 모습으로 있었다. 꽃이 피기 전에는 그 나무가 장미인 줄도 몰랐다.

날이 풀린 이월 말에 나만의 작은 꽃밭을 그곳에 만들기로 했다. 크고 작은 돌들을 골라내고 검불을 걷어 냈다. 비료가 섞인 흙을 사다 원래 있던 흙에 골고루 섞었다. 처마 밑 벽 쪽에는 키가 큰 목련과 치자나무를 심고 그 앞으로 꽃은 없어도 잎사귀가 큰 것을 심었다. 디딤돌 근처에는 채송화처럼 키가 작은 꽃들을 군데군데 심었다. 새로 단장하는 데 먼저 있던 초라한 보기 싫었다. 뽑아 버리고 새로운 나무를 심고 싶었지만, 거친 땅에서 홀로 살아남았다고 생각하니 함부로 대할 수 없어 그대로 놔두었다.

목련과 치자꽃은 일찍 피었다가 일찍 졌다. 그러나 앞쪽으로 심은 작은 꽃들은 다투어 피고 지고 하기를 여름 지나 가을까지 했다. 그 화사한 꽃들의 향연으로 드나드는 길이 언제나 행복했다. 꽃을 찾아 벌과 나비도 찾아 들었고 아침마다 새들이 몰려와 시끄러울 정도로 노래했다. 햇살마저 더 넉넉하게 들어와 오래 머무는 듯했다. 그러나 그 향연이 다 지도록 그 나무에서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이미 죽은 나무인가 해서 가까이 가 들여다보면 새로 난 조그만 잎새가 나 아직 살아 있다고 가벼운 손짓을 하곤 했다.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지 않아 겨울 같지 않은 플로리다지만 그래도 십이월이 되면 제법 쌀쌀하다. 찬 기운에 작은 마당 가득 피어오르던 꽃들도 모두 지고 줄기마저 시들어 고개를 숙이고 있다. 회색 구름이 무겁게 내려앉은 며칠 전, 곧 눈이라도 쏟아질 듯 스산하여 옷을 두껍게 입고 집을 나섰다. 꽃이 모두 진 앞마당은 여기저기서 날아든 낙엽으로 누렇게 덮였다. 마당이고 거리고 모두 갈색 천지다. 그런데 그 누런 세상에 느닷없는 빨간색이 하나 내 시선을 잡았다. 장미 한 송이가 하늘로 우뚝 서 있었다. 웬 장미? 다가가 들여다보니 그 보잘것없는 나무였다. 곧 죽을 것 같았던 나무가 장미였다니! 여름내 죽은 듯 있던 그 나무는 왜 이 겨울에 꽃을 피워 올렸을까? 모두 몸을 움츠리고 겨울잠으로 빠져드는 계절에 무슨 생각으로 새 생명을 내보냈을까? 너무 초라해 올봄에는 없애버리려는 내 속내를 알아차린 것일까? 화사한 꽃밭에 혼자 죽은 자처럼 누워 있다고 내심 못마땅해했던 것이 미안해진다. 막 피어난 작은 꽃에 생기가 가득하다. 주위 환경이나 타인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당당함도 보인다. 남들은 땅속으로 파고드는 추운 겨울에 새 삶을 시작하는 장미에서 남다른 다짐까지 느껴진다.

여러 가지 굴곡이 많았던 지난해였다. 또 다른 해를 맞자니 두려움이 앞서기도 한다. 이번에는 어떤 어려움이 나를 향해 오고 있을까? 그러나 이제까지 이겨냈던 어려움을 기억해 낸다. 척박한 땅에서도 살아남아 차가운 겨울에 꽃을 피워낸 장미에서 힘을 얻는다. 새해를 향해 내딛는 발걸음에 그 당찬 기운을 꼭꼭 눌러 담는다. 새로운 시작이다.

<허경옥 수필가>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경제 나쁘지 않다는데… 취업은 왜 이렇게 힘들지?
경제 나쁘지 않다는데… 취업은 왜 이렇게 힘들지?

‘채용·이직·구직’ 모두 잠잠 ‘관세·이란 전쟁’ 불확실성‘의료·운송·물류’만 채용 고용 정체 → 체감 경기 악화 고용시장이 겉으로는 안정적이나 속으로는 정체 상태인 것으로 분석된

트럼프, 연방 유류세 ‘한시 중단’… 개솔린 값 떨어질까?
트럼프, 연방 유류세 ‘한시 중단’… 개솔린 값 떨어질까?

갤런당 18~24센트의회 승인 반드시 필요‘실현 가능성·효과’ 논란 공화·민주 대체로 찬성   급등한 휘발유 가격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자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 유류세 한시 중단을

어디 빈 방 없나요?… 룸메이트 찾는 고령층 늘어
어디 빈 방 없나요?… 룸메이트 찾는 고령층 늘어

65세 이상 룸메이트 급증‘재정·정서’적 만족도 높아유주택 고령층은 빈방 임대 최근 고령층 사이에서 주거비를 아끼기 위해‘룸메이트’를 구하는 트렌드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

치솟는 주택 보험료…‘보장 부족’ 주택 증가
치솟는 주택 보험료…‘보장 부족’ 주택 증가

보장 범위 재검토해야부족해도 가입해야 안전리모델링, 보험사에 통보 자연재해 빈발로 주택 보험료가 급등하고 있다. 이로 인해 치솟은 보험료와 높은 자기부담금을 감당하지 못하는 가정이

"임신부 RSV 백신 접종, 생후 3개월 아기 입원 위험 68% 낮춰"
"임신부 RSV 백신 접종, 생후 3개월 아기 입원 위험 68% 낮춰"

미 연구팀 "RSV 관련 중증 하기도 감염 입원 위험도 69% 감소" 임신부가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백신을 접종하면 생후 3개월 이내 아기가 RSV 감염으로 입원할 위험이

손흥민, 한국 선수 역대 두 번째로 'MLS 올스타 XI' 선정
손흥민, 한국 선수 역대 두 번째로 'MLS 올스타 XI' 선정

2003년 홍명보가 최초…7월 29일 멕시코 올스타와 대결2026 MLS 올스타 '퍼스트 일레븐'에 포함된 손흥민[MLS 홈페이지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2026 북중미 월

전 세계 기자들 미국 '비자 장벽'에 발 동동…FIFA에 공식 항의
전 세계 기자들 미국 '비자 장벽'에 발 동동…FIFA에 공식 항의

세계체육기자연맹, FIFA에 항의 서한…"용납할 수 없는 구태 반복되고 있다"  2026 북중미 월드컵 개막을 코앞에 두고 개최국 중 하나인 미국의 엄격한 비자 심사와 발급 제한으

하나님이 과연 날 사랑할까?… 4명 중 1명 ‘회의론’
하나님이 과연 날 사랑할까?… 4명 중 1명 ‘회의론’

지난 10년 의심 교인 증가세‘삶에 개입하시나?’회의감도의심, 영적 성장 출발점 돼야 최근 실시된 조사에서 대부분 기독교인이 삶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신다고 믿고 있지만, 4명 중 1

‘목회자, 설교서 정치·사회 이슈 언급’
‘목회자, 설교서 정치·사회 이슈 언급’

‘낙태·동성애’ 등 단골 주제가톨릭은 이민 문제 집중  상당수 기독교인이 목회자의 설교 등을 통해 정치, 사회 이슈에 대한 언급을 듣는 것으로 조사됐다. [로이터]  대통령 선거가

AI를 영적 성장 도구로?… 교인 신뢰도 예상외로 높아
AI를 영적 성장 도구로?… 교인 신뢰도 예상외로 높아

‘행복·자아 찾기’ 개인 영역까지‘영적 목소리’대체 경계심 공존젊은 층, AI 영적 조언에 개방적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AI를 영적 성장에 활용하고 신뢰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