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혁찬 대령 가족 스토리
한국 특전사 호랑이교관 출신
20년 넘게 미 군종장교 근무
군복무 헌신 자녀들에 이어져
한국 특전사 출신으로 미국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뒤 미군에 투신해 군목으로 대령까지 진급한 한인이 세 자녀 모두를 공군사관학교 출신 현역 미군 장교로 길러내 화제다. 미 육군에서 군종장교(The Army Chaplain)로 20년 넘게 근무 중인 김혁찬 대령의 가족 이야기다. 현재 하와이 호놀룰루 육군 기지에 근무중인 김혁찬 대령의 세 자녀는 모두 공군사관학교를 나와 각각 소령과 대위, 중위로 현역 공군장교 복무를 하고 있다.
미 육군이 1775년 도입한 군종장교는 개신교는 물론 가톨릭, 유대교, 이슬람교, 불교, 원불교 등 120여개 교단 출신 2,800여명의 성직자로 구성돼 있다. 평시와 전시에 관계없이 종교 활동과 상담 등을 통해 미군과 그 가족들의 영적 생활을 가이드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1986년 육군학사장교 8기로 임관한 그는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구호로 유명한 특전사에서 줄곧 근무했다. 그는 “100회 이상의 고공강하 경력을 인정받아 특전사 교관이 됐고, 훈련을 받는 장병들에게 ‘호랑이’ 교관으로 유명세를 떨치기도 했다”고 말했다. 특전사에서 전역한 뒤 미국 유학길에 올라 라스베가스에서 호텔경영학을 공부하던 중 신학교에 진학했다.
어렵게 신학교 과정을 마치고 라스베가스 지역에서 10여년 간 부목사로 헌신하던 중 하나님이 그가 미 육군 군목이 되길 원한다는 응답을 받았다. 군종장교 지원 제한 연령인 만 40세를 몇개월 앞둔 2003년 1월 입대가 결정됐다. 6개월간 군종장교 훈련을 마치고 중위 계급장을 단 그가 발령받은 첫 부임지는 공교롭게도 전쟁이 한창이던 이라크였다.
“수많은 생사고비를 넘기는 과정에서 장병들의 상처난 마음을 어루만지며 군종장교가 나한테 하나님이 예비하신 진정한 목회자의 길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고 김 대령은 회고했다. 특전사 교관 근무 당시 훈련 장병들과 소통하던 경험이 군목 생활에도 큰 도움이 됐다.
“아시다시피 한국 특전사 교육과정은 군인으로서의 인내심과 체력을 시험해야 하기 때문에 매우 고되고 엄격합니다. 훈련을 시킬 땐 누구보다도 매섭게 몰아 부친 무서운 교관이었지만 틈틈히 고생하는 교육생들에게 다가가 어깨를 툭치며 격려를 할라치면 다들 참았던 울음을 토해 내는 신기한 경험을 많이 했죠.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장차 군종장교로 사용하시기 위해 제게 주신 달란트였던 것 같습니다.”
이라크 파병을 마치고 한국 대구의 제19지원사령부를 거쳐 지금은 육군 하와이 사령부에서 근무 중이다. 군종장교로 임관할 무렵만 해도 이렇게 오래 복무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임관 초에는 의무복무 기간만 채우고 전역해 부목사로 헌신했던 교회에서 다시 목회를 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민간 목회 계획은 무산됐다.
또 늦은 나이에 군종장교가 되다보니 계급 정년에 걸려 어쩔 수 없이 전역서를 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이곳에서 저를 쓰시려고 하시는 하나님은 군 생활을 계속 이어갈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내년 4월이면 만 62세가 되기 때문에 미 육군 규정에 의해 더 이상 군 생활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러나 그는 또 한 번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된다. 전역 신청을 앞두고 이달 초 덜컥 대령 진급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더욱이 미 육군본부의 승인을 받으면 군 생활을 연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주변 목회자들로부터 전해 듣고 3년 연장 신청서를 냈다. 김 대령이 제출한 정년 연장 신청서가 육군본부로부터 승인돼 일단 2028년 5월까지 군종장교 복무가 가능해졌다.
“밑동까지 다 잘려진 나무에서 새싹이 돋는다는 이사야서 6장의 말씀처럼, 군 생활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거기서 조그만 싹이 자라 소령에서 중령으로, 다시 중령에서 대령으로 승진했다. 게다가 군 복무가 연장됐으니 내 앞에 또 어떤 길이 예비돼 있는지 궁금하다”고 김 대령은 담담히 말한다.
변함없이 옆자리를 지켜 준 아내 김선주씨와의 사이에 태어난 김바울 소령, 김하영 대위, 김강산 중위 등 3남매 모두 미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현역 공군장교로 복무 중이다. 김혁찬 대령은 “매일 매일 주어진 시간 동안 영적 도움이 절실한 미군 장병들과 늘 함께 하는 참다운 군종장교가 되겠다”고 힘주어 다짐했다.
<노세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