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도 요청이 먼저”
몬테네그로 항소법원 판결
“미국 송환” 법무장관 교체
공범 신현성 재판영향 주목
전 세계적으로 400억 달러가 넘는 피해를 가져온 암호화폐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인 권도형씨가 돌고 돌아 결국 한국으로 송환될 가능성이 커졌다.
몬테네그로 항소법원은 1일 권씨의 한국 송환을 결정한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의 판결을 확정했다고 홈페이지를 통해 밝혔다. 항소법원은 판결문에서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은 권도형에 대해 한국으로의 약식 인도를 허용한 반면 미국의 범죄인 인도 요청은 기각했다”며 “이 결정에 대해 (검찰과 변호인이) 항소하지 않았으므로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의 결정은 법적 구속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항소법원은 판결문 두 번째 문단에서 미국의 범죄인 인도 요청을 기각한 고등법원의 판결을 직권으로 검토한 결과 문제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1심은 한국의 범죄인 인도 요청이 미국에 비해 순서상 먼저 도착한 것으로 판단했다”며 “따라서 이러한 점 등을 종합해 한국의 범죄인 인도 요청에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결과적으로 미국의 범죄인 인도 요청을 기각한 1심 판결은 그 이유가 명확하고 충분하며 2심 법원도 이를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이로써 권씨는 특별한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조만간 한국 송환 절차를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항소법원이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판결문에서 “법적 구속력이 있다”고 강조한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권씨가 지난해 3월23일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국제공항에서 검거된 이후 그의 신병 인도를 결정할 권한이 있는 주체가 법원인지, 법무부 장관인지를 놓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다. 법률에 따라 권씨를 한국으로 송환해야 한다는 사법부와, 대미 관계를 의식한 안드레이 밀로비치 법무부 장관이 충돌하면서 양측의 다툼 속에 한국이냐, 미국이냐를 놓고 1년 넘게 결정이 엎치락뒤치락했다.
지난 3월에는 항소법원의 결정으로 권씨의 한국행이 사실상 기정사실화됐는데 대검찰청의 이의 제기를 대법원이 받아들여 한국 송환을 무효로 하면서 원점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몬테네그로 정부의 부분 개각을 통해 밀로비치 장관이 교체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후임 법무부 장관이 밀로비치 장관처럼 권씨의 미국행을 관철하기 위해 제동을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항소법원이 “법적 구속력이 있다”라고까지 확인한 마당에 이를 뒤집으려고 시도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권씨와 테라폼랩스는 미국에서 지난 4월 민사소송에 패소해 46억 달러가 넘는 거액의 추징금 납부에 합의한 상황이고 미국 연방 검찰로부터도 형사기소가 된 상황인데, 결국 미국이 아닌 한국으로 송환될 경우 공범 혐의를 받고 있는 신현성 전 차이코퍼레이션 총괄대표의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되고 있다.
권씨와 함께 테라폼랩스를 공동창업했던 신현성씨는 유신정권의 실세였던 신직수 전 중앙정보부장의 손자로, 홍석현 중앙그룹 회장이 고모부이며 홍석현 회장의 장남인 홍정도 중앙일보 부회장과 사촌간이다. 신씨는 테라·루나 폭락 사태가 벌어지기 전까지 거래 조작 등을 통해 무려 4,629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로 한국에서 불구속 재판 중이다.
테라·루나 폭락으로 손실을 입은 투자자들은 2022년 5월 권도형 테라폼랩스 최고경영자(CEO)와 신현성 공동창업자를 사기죄로 고소했다. 투자자를 변호했던 법무법인 LKB앤파트너스는 서울남부지검에 권씨와 신씨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사기,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고소·고발했다.
그러나 한국 법원은 신현성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두 차례나 기각하고 불구속 재판을 허용해 호화 가족배경에 따른 봐주기가 아니냐는 의혹이 일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