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교통사고로 허리와 무릎 부상을 입고 3년째 치료를 받고 있다. 사고 당시 X-ray상으로 갈비뼈에 금이 간 것을 확인은 했지만 별다른 치료법 없이 2. 3개월을 고스란히 견뎌내면서 시간 읽기에만 적응할 수 밖에 없었다. 눕고 일어나는 일, 숨을 쉬어야 하는 기본적인 일과 등과 허리 통증, 무릎 인대가 끊어진 상태로 움직일 수 없는 영어의 몸이 되어 하루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사고 경위로 인한 치료과정에서 극심한 통증 부위를 위한 집중 치료와 재활 과정을 거치면서 각성하게 된 것은 고통스러운 통증을 설명한다는 일이 진부한 타령이 될 것 같은 군걱정 탓에 고리타분한 일은 범하지 않기로 마음을 정하고 있는 터였는데 진료시간을 기다리는 병원 대기실 의자에서 처음 대하는 분들과 뜻밖의 시간을 경험하게 되었다. 다양한 연령층인 데다가 병원에 오게 된 경위와 사유가 각기 다른 터라 공통점을 쉽게 발견할 수 없었는데도 모두 마음을 열어놓은 듯 자신들의 병력을 거리낌 없이 공개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뿐 아니라 믿고 싶은 것들만 믿는 세상 통념을 불식시키고 있었다. 격의 없이 들어주고, 치료과정을 터놓고 있는 진풍경을 접하게 된 것이다. 처신 거북한 속 마음들을 소의 없이 터놓으며 옛 이야기 하듯 대화가 흘러가고 있었다. 경이로운 풍경이었다.
어느 분의 배려였는지 가까운 카페로 자리가 옮겨지면서 조심스럽게 주변을 의식해야 했던 대화가 조금은 긴장감이 줄어든 대담으로 이어졌다. 저하된 기능 회복을 위한 재활과 통증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뜻밖의 건강 상식까지 접하게 되었다, 이전에 겪었던 크고 작은 불상사, 사건 사고에 대처해온 체험담을 하소연 차원이 아닌 건강홍보를 위한 모임 마냥 여러 부위의 골절상태에 따른 통증에 따른 대처법, 치료법과 후유증, 살아있는 체험담을 얻게 되었다, 서로 고개를 끄덕이고, 맞장구를 치고, 때로는 환성을 지르기도 하며 이전의 힘든 상태에서 호전된 경과를 나누며 함께 기뻐하며 한 마음이 되어 응원하고 완쾌를 위한 덕담을 나누었다. 활동 반경을 제한 받지 않았던 사고 이전 시간을 돌아보게 되면서 몸과 마음에 외상을 입으신 분들께 다가서며 염려와 위로를 전하는 일에 나름대로 정성을 다해온 것 같은데 막상 백발 아낙이 휠체어를 타게 되고 워커를 밀고, 지팡이에 의지하는 일에 직면하게 되면서 늙고 병들어버린 사람을 대하는 민심을 바라보는 시야가 열리게 되었다. 호의이든 고의이든. 측은지심이든.
일상 생활 기본은 걷는 것인데 걷는다는 동작을 의료기기에 의지하는 모양새가 생각보다 많은 시선을 받게 될 줄 몰랐다. 시니어 아파트 복도를 스치는 분들마다 어쩌다 그랬는지 얼마나 불편한지 스스럼 없이 묻고 걱정을 해 주신다. 시니어 아파트 입주민이 우리 가정만 제외하고 모두 이국인들인데 상상치 못했던 주변 배려로 하여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 감이 치유에까지 안정감을 가져다 주었다. 이방인 이웃들의 따뜻함이 이국살이 끝에 훈훈한 인성을 발견하게 된 아름다운 연유가 되어주었다. 이 시대 대화는 믿고 싶은 것만 골라 말하고, 믿고 싶지 않은 정보는 외면한 채 아집을 키워가는 현상이 난만하게 번지고있다. 심리학 분야에선 자신의 신념에 시간과 노력을 기울일수록 확증편향이 굳어진다 했다. 고수해 온 생각과 다른 것, 상대의 상황, 입장에는 가차없이 오류로 인정하며 재난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무슨 죄값을 치르고 있다는 식의 발언을 스스럼없이 던지는 이들에 대한 불신임과 위화감으로 자칫 세상과 벽을 만들고 말 것 같은 위기감에 처하게 되면서 스스로를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는 절박감에 놓이게 되었는데, 병원 대기실에서 만난 청정지역에 들어선 것 같은 맑은 환우들을 만나게 되면서 생을 향한 경적을 신호로 삼으며 사람이 만들어놓은 벽을 허무는 혁명을 가져왔다.
활동 반경에 제한을 받는 동안 늪지대 같은 시간을 지나다가 푸른 초원을 마음껏 거닐어 보는 활기를 되찾게 해주었다. 낯선 환우들과의 어울림이 초면임에도 이렇듯 맑은 대화 속에 합류 해보는 것도 얼마만인가 싶다. 예상치 못한 사고는 예외적인 상황으로 일상의 변화를 겪게 되면서 마냥 시들시들하게 살아갈 수 밖에 없음이라 마음이 접히려 했는데 이토록 결이 다른 세상이 있음에 감사가 밀려든다. 치료 중인 환자들이라 믿어지지 않을 만큼 나이든 핸디캡 노인네를 감싸주는 호의와 친절에 그대로 흡수될 수 밖에 없는 산소 같은 상큼한 분들을 만난 것이다. 장애를 터부시하는 세상 풍조를 보고 듣고 해왔기에 자연스레 나서지 못하는 경향으로 기울고 있었음에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다가설 수 있는 동병상련, 환우 공감 경지를 맛보게 되었다.
주변 시선을 느끼면서도 워커를 붙들고 걸어야 하는 시간이 아직 얼마나 남아 있을지 불투명 하지만 워커를 밀고 다니는 불완전하고 미진한 모습인 체로 누구 와도 어렵지 않게 말을 붙일 수 있을 것 같고 부담감을 느끼게 되는 도움도 은근히 기껍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스치고 지나가며 웃고 인사하고 했던 세상이 갑자기 등을 돌린 것 같은 적막감 속에 갇혀 있었지만 맑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환우 분들을 만난 이후로는 내가 가만히 서 있어도 누군가 손짓을 보내 줄 것만 같다. 내가 넘어지면 저들이 달려와 줄 것이고 누군가 쓰러지면 내가 달려갈 것이라는 믿음이 움튼다. 이미 시작된 폭염이지만 믿고 싶은 것들만 믿는 세상에 대한 쿠션감이 더욱 두터워 지기를 기도 드린다. 결코 쉽지 않은 부분들이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