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이규 레스토랑
김성희 부동산
첫광고

[주말 에세이] 헬렌을 위한 기도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4-05-17 18:57:06

주말에세이, 송윤정,금융전문가,헬렌을 위한 기도

권순상 노흥성 부동산 470-218-6136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한국에서 돌아오니 마당 곳곳에 심어진 화초들 사이로 불쑥불쑥 솟아 나온 풀이 있었다. 풀만 봐서는 냉이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분명 한국에서 식용이나 약재로 쓸만하게 생겼다. 농장을 하시는 한 시인께 사진을 찍어 보내 이름을 물었다. “아래 풀은 냉이잎 비슷하게 생겼고 대가 길게 올라온 끝엔 노란 작은 꽃들이 펴요. 잎을 조금 먹어 보니 쓴맛이 나고요.” 조금 있다 문자가 왔다. “고들빼기 같은데요.” 검색해 보니, ‘고들빼기, 벌씀바귀, 뽀리뱅이 구분하기’ 혹은 ‘냉이, 지칭개, 뽀리뱅이 구별법’ 등 친절하게도 각 부위 사진에 상세한 설명까지 더해 구분하는 법과 각 풀의 식용법, 효능 등 유용한 정보를 담은 글이 많이 있다. 

아프리카 속담에 ‘노인 한 명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했는데, 인터넷과 친절한 사람들 덕에 그 속담은 더 이상 적합하지 않은 때가 오지 않을까 싶다. 자신의 경험과 정보를 나누는 이런 세상이 얼마나 고마운지.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는 것 외에도 유익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선 자신의 귀한 시간을 들여야 한다. 기록에 생각이 미치니, 헬렌 맥큔Helen McCune 할머니가 떠올랐다. 한국에 다녀온 후에 집으로 초대해 그분의 얘기를 더 듣겠노라 약속했었다. 

헬렌은 내가 속한 가든 클럽의 엘리자베스 할머니를 통해 알게 된 분이다. 내가 한인문인회를 이끌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된 엘리자베스는 내게 꼭 소개해 주고 싶은 자기 친구가 있다며 헬렌 집으로 초대했다. “헬렌은 1934년에 평양에서 태어나서 여섯 살까지 그곳에서 살았어요. 헬렌의 얘길 들으면 책을 한 권 쓸 수 있을 거예요.” 엘리자베스는 헬렌에게서 받은 문자를 내게 보여주며 물었다. “일 테노레Il Tenore라는 뮤지컬 들어봤어요? 헬렌의 할머니 얘기가 서울에서 뮤지컬로 만들어져 공연 중이라 그러던데.”

올해 90세가 되어 밖에서 만나기보단 자신의 집에서 만나길 원한다는 헬렌 집으로 찾아갔다. 마침 그날이 정월 대보름날이라 한국 전통도 알릴 겸 나물과 오곡밥을 지어 비빔밥 점심을 준비해 갔다. 그 분께 수고가 되지 않도록 그릇과 수저까지 다 챙겨갔는데, 도착해보니 그분은 다이닝테이블에 손수 만들었다는 냅킨과 매트에 만찬 세트를 차려놓을 만큼 섬세한 분이었다. 거실에는 커다란 병풍과 한국의 전통 방석이 의자 위에 놓여있고 테이블 위엔 로버트 김Robert Kim이 쓴 ‘프로젝트 이글Project Eagle’과 ‘미국계 평양인 American Pyongyang’ 책이 놓여있었다. 

  “색동저고리를 입은 금발 소녀가 제 어릴 때예요.” ‘미국계 평양인’ 책 뒤표지의 금발 곱슬머리 여자아이 사진을 가리키며 헬렌이 말했다. “할아버지가 평양에 선교사로 가셔서 아빠도 평양에서 나고 나도 평양에서 태어났답니다. 엄마도 할아버지 때부터 한국에 선교사로 나가 한국에서 태어나셨죠. 두 분은 서로 모르고 지내다 미국 버클리 대학에 공부하러 와서 만나 결혼하고 다시 평양으로 가서 사셨죠. 1940년에 일본이 진주만 공격으로 미국의 적국이 된 후 온 가족이 탈출해 왔어요. 미국에 오시자마자 아빠는 대통령에게 아시아태평양과 한국 관련 자문을 하는 역할을 맡으셨고, 한국전쟁이 났을 땐 엄마가 맥아더 장군의 통역을 맡으셨죠.”

점심을 먹으며 거의 세 시간에 걸쳐 들려준 헬렌의 이야기는 놀라울 따름이었다. 같은 민족으로 역사를 공유하는 북한 땅과 그곳에서의 삶을 백발이 된 미국 백인 할머니에게 듣는 진귀한 경험이었다. 문인회의 더 많은 분들과 이 숨겨진 보물 같은 이야기들을 듣고자 5월에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며 헤어졌다. 헬렌에게 다시 만날 날짜를 잡기 위해 문자를 보내니, 즉각 답이 왔다. “한국에 잘 다녀와서 연락해 주니 고맙네. 근데 내가 지금 병원에 입원해 있고 방문객도 허용이 안 돼. 상황이 좀 나아지면 알려줄게.” 가슴이 철렁했다. 매일 그녀가 속히 회복되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도하는데, 두 주가 더 지났는데도 아직 연락이 없다. 

   내 마당의 풀은 뽀리뱅이로 밝혀졌다. 풀도 정성스런 기록을 통해 제 이름을 찾듯, 헬렌과 그녀처럼 한국의 옛 모습을 간직한 이들의 기억이 잘 기록되어 후세에 전해지길 바라 마지않는다.

<송윤정 금융전문가>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법률칼럼] “미국 내 영주권 신청 막힌다?”

케빈 김 법무사 USCIS 신분조정(AOS) 정책 변화와 현실적인 대응 전략 미국 이민국(USCIS)이 지난 5월 22일 발표한 신분조정(Adjustment of Status·AO

[행복한  아침]  어른  다움의 서사

김 정자(시인 수필가)     나이가 들어간다는 말은 내 보이기 싫은 것들이 늘어난다는 말과 동의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주름살, 흰머리, 아집, 애착이 은근히 자리 잡기 시작하

〈비즈니스 포커스-김철회 태권도장〉 “무예와 지성 겸비 태권도인 양성”
〈비즈니스 포커스-김철회 태권도장〉 “무예와 지성 겸비 태권도인 양성”

"태권도 통해 '예'와 '인성'을 수련"썸머스쿨, 방과후 학교 인기 폭발  스와니 시청 옆에 위치한 김철회 태권도장(World Class Taekwondo)은 예와 인성을 중시하는

2026 코리안 페스티벌 준비 힘차게 출발
2026 코리안 페스티벌 준비 힘차게 출발

4일 발대식 열고 축제 준비 시작헨드릭슨 귀넷의장 명예 대회장 애틀랜타 코리안 페스티벌 재단은 4일 저녁 귀넷카운티 사법행정센터에서 2026 코리안 페스티벌 발대식을 개최했다.올해

동남부 한인사회 40년사 발간
동남부 한인사회 40년사 발간

미동남부 한인회연합회는 4일 둘루스에서 『미동남부 한인사회 40년사』 출판기념회를 개최했다. 2022년 홍승원 전 회장이 편찬위원회를 구성해 4년 만에 완간한 이 책은 연합회 설립 초기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정치·경제적 성과, 한인체육대회, 참정권 운동 등 6개 분야의 기록을 담았다. 출판기념회에는 박선근 초대회장, 김기환 현 연합회장 등이 참석해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4세 한인 카일리 정, 조지아 아마추어 골프 챔피언 등극
14세 한인 카일리 정, 조지아 아마추어 골프 챔피언 등극

최종 합계 6언더파 210타(73-70-67)로 우승8월 US 여자 아마추어챔피언십 출전권 획득 커밍 출신의 14세 한인 소녀 카일리 정(Kylie Chung)이 3일 기량이 뛰어

폰지사기 뒤 사라진 귀넷 남성에 거액 현상금
폰지사기 뒤 사라진 귀넷 남성에 거액 현상금

FBI,제보자에 15만달러 90여명 1천만달러 피해 수년 전 대형 폰지 사기극을 벌인 뒤 사라진 귀넷 출신 남성 검거를 위해 연방수사당국이 거액의 현상금을 내걸며 수사 수위를 높이

조지아, 가뭄은 여전히 ‘진행형’
조지아, 가뭄은 여전히 ‘진행형’

최근 비로 다소 완화 불구식수원 수위 아직도 낮아 최근 1,2주 사이에 내린 비에도 불구하고 애틀랜타를 비롯한 조지아 전역에 닥쳤던 가뭄은 여전히 진행형이라고 관련 전문가들이 진단

〈한인마트정보〉명품 소고기∙ 프리미엄 돼지고기…방학 맞은 자녀 건강 챙기기
〈한인마트정보〉명품 소고기∙ 프리미엄 돼지고기…방학 맞은 자녀 건강 챙기기

H마트스마트 카드 고객에게는 농심 신사발면12 EA 11.99, 농심 육개장사발면12 EA 11.99, 오징어채LB 15.99,수협 손질냉동가자미 USA LB 3.99,씨없는수박

[비즈니스 포커스] 제이로펌(J Law Firm) : "투명한 소통으로 한인 권리 지킨다"
[비즈니스 포커스] 제이로펌(J Law Firm) : "투명한 소통으로 한인 권리 지킨다"

복잡한 교통사고와 개인 상해, 언어 장벽으로 막막하신가요? 구글 평점 5점 만점을 자랑하는 스와니 제이로펌(정효선 변호사)이 100% 한국어 맞춤 대리로 해결해 드립니다. 한미 양국 정서를 완벽히 이해하는 전문가들이 적당한 합의가 아닌 의뢰인을 위한 끝장 소송까지 불사하며 권리를 지켜드립니다. 조지아주 사고 발생 시 필수 초기 대응 지침과 현명한 대처법을 기사에서 바로 확인해 보세요.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