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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침] 그리움 백서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2-03-25 08:24:04

행복한 아침, 김정자(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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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자(시인·수필가)      

  

뵐 때마다 외로움이 깃든 애틋한 시선으로 기도부탁을 하시는 연세가 높으신 분이 계신다. 하루 하루 외로움을 잘 견뎌내실 수 있기를 소원하신다. 꼬옥 안아드리면 낙엽 소리가 들릴 것 같아 힘주어 안아드리지를 못하고 포근히 다독이듯 안아드린다. 살포시 안아드리면 연한 숨결이 선천적 그리움이듯 쓸쓸한 느낌이 전이된다. 살아오시며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가까이에서, 먼 거리에서 그리워하시면서 어딘가를 향한,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이 있는 것 만으로도 삶의 풍요를 누린 것 같으시다고. 삶은 언제 어디에서나 그리움을 남기는 것이라서 그리움의 근원은 마를 날이 없어 눈가가 짓무르기도 하지만 품을 수 있는 그리움이 있었기에 삶을 지탱할 수 있었노라고 고백하듯 풀어내신다.

그리움 본질은 마음 속을 흐르는 음악 같기도 하고, 생각 속에 그려지고 있는 그림 같기도 해서 무언가를 그리워할 수 있는 오롯한 감성이 있음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행복 영역 임이 분명하다. 그리움의 대상이 있고 그리워할 수 있는 간직된 추억이 있기에 그리움 본능은 호흡이 있기에 소유할 수 있는 누림일 것이다. 깊은 포옹에도 맞닿을 수 없는 심장의 거리 만큼 인생은 서로를 그리워할 수 밖에 없나 보다. 그리움 마다 다른 질감들이 살아온 연륜 켜켜이 쌓여가고 문득문득 떠오르는 멍울 같은 떠오름 까지도 그리움의 결에 실리고 있다. 살아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사르르 배앓이 같은 그리움이 되어 마음을 저미게 된다.

지금에 이른 풍경 속엔 이른 아침 네 딸아이들을 등교시키는 소란스러운 소리에서부터 막내 결혼 축하연의 술렁임까지. 그 날들의 환희와 이룸과 보람들이 생의 길목 마다에 그리움으로 남겨지고 있었다. 분주함 가운데서도 숱한 일들을 만나고, 새로운 것을 보며 새로운 소리를 들으며 벅차도록 무언가가 늘 채워지고 있었다. 그것은 삶의 희열이요 성취였고 생을 지탱해준 보루였다. 그리움을 묻어둔 마음 어귀에는 생을 지켜온 묵은 느티나무 같은 것이 가족을 지켜주고 있었다. 그리움이 서리는 자리마다 그림자처럼 존재감을 드러내는 기다림도 있었고, 가슴에 작은 이랑들이 만들어지기도 하면서 우연히 듣게 된 익숙했던 멜로디가 울컥 그리움을 몰고 오기도 했었다. 기억 속에 남겨 있었나 싶은 익숙한 내음도, 문득 스쳐간 사람이 떠오르는 오랜 기억 속의 잔잔한 일깨움도 모두 그리움의 실체였다.

그리움의 의지도 푸르렀던 무성함이 세월을 덧입고 쇠락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하면 그리움도 사위어 가고 움츠러들기 마련인 것. 친지들을 하나 둘 떠나보내는 여정 가운데서 더 이상 기다림도 그리움도 남겨지지 않을 날이 올 것이라서 그리움도 생을 지탱해주던 등불의 촉수처럼 줄어들 것이다.  그리움 미학은 삶 속에 속속들이 박혀있어서 푸른 새벽에도 햇살이 눈부신 한낮에도 시도 때도 없이 그리움이 찾아들지만 그리움이 있었기에 생을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일 게다. 쌓여있는 그리움 무게는 노년으로 접어들수록 골이 깊어지고 메아리처럼 웅얼대기도 한다. 그리움 원천은 언제나 사랑이었고, 생은 그리움이었고, 그리움을 풀어내다 떠나는 것인가 보다. 사는 것이 무겁고 힘겹다고 생각할 땐 그리움이란 호사스러움 이라며 밀쳐두었던 감성이지만 이 세상 나들이가 끝나가는 즈음이라 작은 그리움의 빛살에도 꿋꿋이 하루들을 세워나갈 수 있음에 감사가 피어난다. 가야할 길이 아득하고 척박하다한들 그리움이 윤활유가 되어 주었기에 어느 그리움 하나에만 집착하지 않아도 되는 여력을 더해 주고 있었다.

그리움은 우리네 한국인의 정체성과도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온 세월도 오랜 것 같다. 그리움을 감성적으로  지나치게 치우치지 말아서 이성적 판단 결정을 저해하는 균형을 잃지 않아야 세상살이와 별리 된 감성적 여백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리움은 분망한 삶의 현장에서도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고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도록 관대함으로 마음을 넓히게도 해주었다. 감성적인 그리움만 꼽고 있느라 잊고 살았던 것 같지만 놓아서는 아니 될 소중한 그리움이 있다. 영원을 향한 그리움이다 . 일상의 그리움은 간직해왔지만, 아직 영원을 향한 그리움을 만나지 못한 이들이 지금도 여전히 우리들 곁에 있음을 상기해야 할 일이 숙제처럼 남아 있다. 생애에서 가장 고귀한 그리움인 것인데. 이를 위해 기도의 끈을 다시금 팽팽하게 당겨야겠다. 생의 종착역은 예고없이 찾아드는 것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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