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침묵하고 있던 것이 아니다. 너희들과 함께 괴로워하고 있었다.” 엔도 슈사쿠의 침묵에서 들려준 <예수님의 음성>입니다. 침묵할 때가 있습니다. 그 침묵은 그냥 간과할 목적으로 하는 침묵이 있는가 하면, 침묵하는 것이 입을 벌려 말하는 것보다 더 강력한 힘이 있을 때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입니다. 현하(現下), 비아 돌로로사, “슬픔의 길(The Sorrowful Way)”, “고통의 길(The Way of Suffering)”을 걸어가신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할 <고난주간, The Passion of Christ>이 임박하였습니다.
시편 기자는 고통 가운데서도 그 고통 앞에서 침묵으로 일관하지 말고 “소망을 하나님께 두라”고 말씀합니다(시130:7). 어느 시골 마을에 한 농부가 부지런히 밭을 갈고 땀을 뻘뻘 흘리며 일에 열중하고 있었을 때, 그의 아내가 저녁식사를 맛있게 준비하고 큰 소리로 외칩니다. “여보, 이제 오늘은 일을 그만 하시고 농기구는 흙 속에 묻어두고 저녁식사하러 오세요.” 이 말을 들은 남편은 부랴부랴 농기구를 밭 한쪽 구석에 몰래 흙을 덮어 숨기면서 큰 소리로, “알았소. 농기구는 흙으로 밭 끝자락에 잘 숨겨놨소,”하며 저녁식사를 하러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생각없는 남편의 행동에 아내는 질색을 하면서, “여보, 당신이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외치면, 당신이 다시 밭으로 돌아가서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농기구는 이미 누군가가 훔쳐갔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듣자마자 성급한 남편은 식사 도중에 쏜살같이 밭으로 달려가봤지만, 아내의 말대로 이미 농기구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모기만한 작은 음성>으로, “여보, 누군가가 내가 숨겨놓은 농기구를 훔쳐가버리고 그 자리에 없었소.” 그러자 이 지혜없는 남편을 타박하기를, “아니 여보! 작은 소리로 침묵해야 할 때는 큰 소리로 외치더니 정작 큰 소리로 외쳐야 할 때는 작은 소리로 말씀하세요?”
지금은 비아 돌로로사, 슬픔과 고통의 길에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향하여 걸어가신 주님께서 왜 침묵하셨는지에 대한 그 의미와 목적을 깊이 헤아려야 할 때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격리”와 “소외”에 익숙하다 보니 정작 <큰 소리>로 말해야 할 때는 조용히 침묵하고, 침묵하며 인내해야 할 때는 <큰 소리>로 함성을 지르는 <역 영향권(New Normal)의 세대>입니다. 이 모순 덩어리같은 <코비드 제네레이션 인민들>은 지금 과연 “비아 돌로로사 예수”의 <침묵의 의미와 그 목적>을 분간이나 할 수 있을까 헤아려집니다.
비아 돌로로사의 주님은 십자가를 본능적으로 외면하고 그 책임전가를 변명으로 일관할 수도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그 자리를 비켜가거나 그 자리에서 떠나 멀리멀리 달아나신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의 한복판에서 떠나지 않으시고 <침묵>으로 슬픔과 고통, 그리고, 상실과 절망 가운데 서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편기자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아 ‘야훼(비아 돌로로사의 예수)’를 바랄지어다. ‘야훼(비아 돌로로사의 예수)’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시130:7)
현하(現下), 비아 돌로로사 예수의 침묵 앞에서 코로나바이러스의 기승으로 인해 변명하며 움츠려들 것이 아니라, 비아 돌로로사 예수의 침묵의 의미와 그 목적을 큰 소리로 증언해야 할 때입니다. “나는 침묵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너희들과 함께 괴로워하고 있다.” 절망이 깊어질수록, 고난이 그 강도를 더해 갈수록, 희망의 빛은 비아 돌로로사 예수의 침묵과 함께 찬란한 소망의 빛으로 반드시 환하게 밝아올 것입니다.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빛을 향한 희망의 여정](/image/289269/75_75.web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