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아 켐피스는 <그리스도를 본 받아>라는 그의 기도에서 “만일 이것이 내 영혼에 해가 되며, 상처를 주는 것이오면 이 생각, 이 욕망을 내게서 거둬가 주시옵소서”라는 유명한 <욕망에 관한 기도>를 남겼습니다. 마가복음은 사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가운데 가장 먼저 쓰인 복음서입니다.
젊은 날의 욕망을 이기지 못하여 선교여행 도중에 집으로 돌아가 위대한 사도 바울과의 오랜 오해의 불편한 관계를 가졌던 추억이 있었기에 겨울이 오기 전에 쓸쓸한 유배지에서 사도 바울이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에 꼭 만나고 싶어했던 자가 바로 마가입니다. 마가는 개인 스스로에게나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나 오늘 21세기의 모든 크리스천들에게나 꼭 풀어야 할 중차대한 숙제가 있다면 그것은 <욕망을 정돈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한다면 역설적인 예수 역설적인 복음의 진수를 반드시 체험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가장 역설적인 것을 지적하자면, 예수님은 처음부터 사람이 아니셨고,이 땅에 계셨던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장 높은 곳에서 사람들로부터 섬김(To be served)을 받으셨던 본체가 하나님과 동등 됨을 받으셨던 지존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빌 2: 5~11). 이 섬김의 지존에서 섬기는 역설적 예수(Servant Jesus)가 된다는 것은 마가에게서 부요한 가정을 버리고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오직 그리스도를 위하여 오직 복음을 위하여 선교지향적 사도의 삶을 선택한 것입니다.
오늘날 이 21세기 명품세대에서 존귀함을 받고 존경과 섬김을 받으려는 현대 크리스천의 세속적인 마인드에서 존귀히 여겨주고 존경과 섬김을 다하는 살아있는 작은 예수가 된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 순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체험한 Paradoxical Jesus를 만나고 Paradoxical Gospel을 비로소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역설적 크리스천들이 되도록 코비드를 통해서 연단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섬김을 다하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목회현장은 네로황제가 시대의 폭군으로서 당시의 세상사람들에게 두 가지 역경을 주었습니다. 하나는 고난이라는 역경,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박해라는 역경입니다. 지금 코비드가 난무하는 이 시대도 동일합니다. 세상이 주는 유혹의 역경, 역병이 주는 염려와 두려움의 역경입니다. 역경을 만나면 사람들의 심리적 현상은 대체로 완악해집니다. 살기등등해집니다. 그래서, 마음이 포악해져서 선한 말 대신에 폭언을 일삼고, 선행 대신에 폭행을 일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때에 우리는 역설적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역설적 크리스천이 되어야 합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대속물은 대가를 대신 지불한다는 Self-Sacrifice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 의미를 생각한 토마스 아 켐피스의 기도는 곧 지금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이것이 내 영혼에 해가 되며, 상처를 주는 것이오면 이 생각, 이 욕망을 내게서 거둬가 주시옵소서” 그리고 마가가 마가복음에서 외친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예수께서는 메시아,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욕망을 정돈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자>마다 오직 이 한 마디,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구주, 메시아이십니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으시고 섬기려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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