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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침] 겨울 밤 모놀로그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0-02-01 17: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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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겨울 밤. 조용한 방 안이 평화롭고 안온하다. 격차 없이 내리던 겨울비가 그친 후라서 잔잔하리만치 그윽한 고요가 평온하게 번지고 있다. 세상이, 주변이 마음을 뒤흔들어 놓지 않는다면 마냥 잔잔한 한적함이 적요하고 소슬하게 곁을 맴돌고 있을 터이다. 고적한 겨울 밤이라서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바람이 스치는 소리와 다름없이 들려온다. 아득하고 자욱한 길을 찾아 나서는, 최선의 순수로 창조주와 독대하게 되는 신성의 시간이다. 불꽃 같은 파라스름한 열망이 글쓰기를 향한 탐닉으로 문장의 얼을 삶 읽기로 집약해가는 시간이다. 이렇듯 소로시 정지된 듯한 시간 앞에 서노라면 주어진 소중한 삶을 살아내고 있는 딸내들을 향한 그리움으로 고스란히 밤을 밝히곤 한다. 이방인의 삶을 자처하며 큰 바다를 건너와 올망졸망한 어린 딸들 손을 꼬옥 붙드느라 노심초사했던 잔영이 크고 작은 송이송이 그리움이 되어 온 방안 가득 내려앉는다. 포부와 소망이 염원으로 영글고 희망을 담은 꿈의 테두리들은 세월의 바람결에 낡아져 가고 있지만, 딸내들은 존엄하고 고귀한 꿈을 놓치지 않으며 찬찬하고 슬기롭게 살아왔다. 조화롭게 일구어가는 누림의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조바심쳤던 먼 시간들도 이젠 그리움이다. 방금 도착한 이 메일을 열어본다.

 

“ 엄마, 늘 뭘 더 해줄걸 하고 애쓰시고 후회 마시길 바래요. 있는 그대로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 그대로가 훌륭한 거예요.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늘 더 아파하고, 힘들어하고, 허전해한다는 건 너무 불공평하잖아요. 내가 최고의 최고를, 최선의 최선을 다해도 늘 부족하다는 건 너무 부조리예요. 내가 완벽하다 해도 세상의 불행이나 사고를 막을 수 없잖아요. 제가 기억하는 엄마는 언제나 굳건하고 변함없고 든든하게 저희를 지키셨고 길러주셨어요. 그것만으로도 넘치도록 충분해요. 저는 부족하기도하고 모자라기도 하지만 늘 좀더 나아지려고 나름 노력하는 저에게 너그러워지려고 해요. 그런 생각을 하며 살고 행동으로 옮기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 훌륭하다고 감히 생각해요. 엄마한테서 보고 배운 노력과 성실함을 감사하며 소중하게 쓰고 싶어요. 날씨가 왔다 갔다 내 기억과의 실갱이를 하는 요즘 맑은 화창한 날은 반짝이는 예쁨으로, 흐린 구름이나 안개 가득한 날은 한치 앞을 모르는 신비함으로,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은 정원사의 본분을 잊지 않고 낙엽을 긁음으로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내 나이 고만했을 그 즈음에 느낄 수 없었던 지성과 감성으로 보낸 딸내 메일을 받아보며 눈물이 핑 돈다. 일상에서 떠오른 것들을 적어 보낸 메일들이 때론 낯설 만큼 어른스럽다. 기존의 가족사에서 누락되기 쉬운 드러나지 않은 사랑이 복원되고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딸 내들 메일을 대할 때마다 저들의 소명을 감당해가고 있는 과정들을 경청하게 되고 이렇게 쌓여가는 이야기들로 가이드 북이나 워크북을 만들고 싶은 분주함이 일렁인다. 딸네들과 나누는 메일은 그리스도인으로써의 존재의 모습을 드러내는 통로가 되어 삶의 대서사시를 써내려 가고 있는 것이다. 못다 부어준 사랑의 빚을 안고 전전긍긍하는 노모를 바라보는 시선엔 늘 촉촉한 물기가 보인다. 주고 받는 메일로 하여 잊고 있었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며 아련한 그 날들을 더듬으며 향수에 젖었노라고 벅찬 감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삶의 그루터기 같았던 작은 추억 하나에서도 충일감을 내증으로 수득하자고 다짐하곤 한다.

자신감 넘치는 딸내들에 비해 뉘우치고 반성하고 가다듬느라 분망했던 노년이 이즈음 들어서는 그냥 생긴대로 살자로 마음을 다독인다. 낡어져가는 모습 이대로를 보여주며 살아가려 한다. 딸내들에게 그럴싸한 노인네로 살아보고 싶고, 근사한 엄마로 남겨지고 싶은 욕심의 발로임도 들통나고 주변 눈치 보느라 헛디디는 실수도 이젠 그만두려 한다. 이제 더 무엇으로 치장한들 더 나아보이겠으며 한치라도 더 크게 보일 것인가. 느즈막 철이든 엄마라서 민망스럽다. 딸내들과의 연서가 오고 가면서 뿌듯한 감사가 우리들만이 누리는 감사가 아니기를 기도하게 되었으니까. 이민자로써의 고달픈 삶의 구석구석은 알지 못하더라도 가족 울타리를 지켜내기에도 버거운 분들을 보아왔기에. 이러저러한 사연들이 메일로 오가면서도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시적 유행이나 분위기, 정치적 편향은 약속한 듯 덮어두고, 주변을 한 개인을 부추기거나 얼을 빼는 남용 또한 조심스러워 한다. 풍랑 같은 공포스러운 소란이나 사건 또한 암묵적으로 차단해왔었다. 서로가 간직해왔던 추억에도 서로의 색상이 다르기도 하고 기억하는 부분에서도 조금씩 차이가 있다는 것도 신비스럽고 재미지다. 딸내들과의 정분을 되새기며 추억에 잠겨있느라 창이 환해지는 것도 잊고 있었다. 침실에서 나오시는 영감님의 걱정을 듣고서야 밤을 하얗게 밝힌 것을 눈치채게 된다. 유한한 인생에게 주어진 무한한 겨울 밤의 독백이 이리도 달콤하고 그윽할까. 한껏 충일한 흐뭇함으로 뿌듯하게 기지개를 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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