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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 조선책략을 생각한다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19-06-05 21: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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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 9월, 일본에 수신사로 파견됐던 김홍집(金弘集)이 돌아와 고종에게 <조선책략(朝鮮策略)>이라는 외교의견서를 바친다. 이는 청국 주일공사관의 참찬관이던 황준셴(黃遵憲)이 지은 것으로 내용을 요약하면 조선은 러시아의 남하를 막고 친중국(親中國), 결일본(結日本), 연미국(聯美國)함으로써 자강책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황준셴은 당시 중국 정부의 최고 실세인 리훙장(李鴻章)의 측근이었는데, 리훙장은 조선이 러시아와 가까워진다면 중국이 더 이상 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조선이 일본 미국과 우호적이 된다면 러시아 견제에 더욱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조선책략>은 황준셴 개인의 의견이라기보다는 리훙장, 나아가 청국이 조선을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한 하나의 방편에 불과했던 것이다. 더구나 <조선책략>에서는 미국을 강대, 공명, 정의의 나라로 묘사하며 미국이 조선에 대해 욕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조선을 이롭게 할 것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권장했다.

중국 외교는 내심 한국을 얕잡아 본다. 그 속에는 중화(中華)의 DNA가 담겨 있다. 허루장(何如璋)은 청나라 말기 일본 주재 공사였다. 그는 영국 외교관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조선인들은 어린아이 같다. 그들에게 힘을 적절히 내비치면서 친절하게 달래면 쉽게 따른다.”

이 내용은 도쿄의 임시대리공사 고든 케네디가 런던의 외교부에 보낸 극비 문서다. 그 말은 허루장이 한국과의 수교를 권유하면서 했다. 청나라는 러시아의 남진을 막으려고 영국을 끌어들였다. 황준셴의 <조선책략>은 허루장의 구상을 담은 것이다. 황준셴은 허루장 밑의 참사관이었다

고종은 결국 <조선책략>의 주장을 적극 받아들여 1882년 미국과 수교했고, 1910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길 때까지 미국이 조선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다. 고종은 국제정치적 상황에 무지했다. 일본과 미국간에 조선을 두고 어떤 음모가 진행되었는지도 알지 못한 채 고종은 막연히 좋은 선입견 때문에 미국의 원조를 기대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미 포츠머스조약이 체결되기도 전에 일본의 조선 점령을 인정하는 밀약을 일본과 맺어두고 있었다. 소위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라고 하는 것이다. 포츠머스 조약 체결 직전 일본을 방문한 미 육군장관 태프트와 가쓰라 일본 수상간에 합의된 이 밀약은 한마디로 필리핀과 조선을 양국이 나누어 갖자는 것이 핵심적 내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 바로 <조선책략>이다. 중국은 조선과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우호를 증대해야 하며, 일본은 중국 다음으로 가까운데다 과거부터 교류해 왔으므로 결합이 필요하다는 논지다. 미국의 경우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약소국을 도우려 하니 서로 연결한다면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할 수 있다고 했다. 문제는 그로부터 140여년이 흐른 지금 시점에서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지형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남북한이 갈라진 데다 북한의 핵개발로 더욱 복잡해진 양상이다.

다시〈조선책략〉을 생각해본다. 그것은 한마디로 조선의 책략이 아니라 패권국의 책략이었다. 패권국의 관점에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세계정세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패권국의 책략이 우리의 운명을 지켜줄지 알 수 없다. 큰 나라들에 둘러싸인 한반도에서 남북으로 나뉜 터라, 우리에게 지정학적 조건은 중요하다.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의 도움을 받으며 우리를 줄곧 위협해왔다. 우리는 미국과 일본의 도움으로 그 거대한 공산주의 세력을 힘겹게 막아냈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한반도에 관심이 적었다. 19세기 말엽 잠시 ‘은자의 왕국’에 호기심을 가졌었지만 빈곤하고 부존자원도 없다는 것이 드러나자 조선을 잊었다. 주변 강대국들이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조선을 차지하려 다툰 것과 대조적이다. 이런 태도는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뒤 남한을 떠맡은 뒤에도 이어졌다. 미국은 일본만 우방으로 삼으면 서태평양을 지킬 수 있다고 여겨왔다.

일본은 국력과 군사력이 아울러 크다. 정보 수집에도 뛰어나 북한의 기습 공격에 대응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할 수 있다. 우리가 전시에 필요한 물자도 대부분 일본에서 공급받아야 한다. 현실적으로 더 중요한 것은 한반도에 전쟁이 나면 일본이 미군의 후방기지가 된다는 사실이다. 한국전쟁은 이 사실을 괴롭도록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지정학적 조건이 그러하므로, 미국은 한국에 일본과 협력하라고 권고하고 때로는 강요했다. 그러나 두 나라 사이의 불행한 역사는 그런 협력을 어렵게 했다. 큰 권력과 지도력을 지녔던 박정희 대통령만이 정권의 명운을 걸고서 일본과 수교할 수 있었다. 우리의 안보와 발전에 결정적 요소지만 다른 대통령들은 결코 이루지 못했으리라는 점에서, 일본과의 수교는 박정희 대통령의 위업들 가운데서도 으뜸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시아는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최대 비상상황이다. 미국과 일본의 밀월 속에 한국은 고립 상태로 가는 분위기다. 미중 무역전쟁과 북핵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자칫 경제와 안보 모두 낭패를 볼 수도 있다. 북핵 중재자는 고사하고 꼬리를 잡혀 휘둘릴 가능성도 있다. 교착된 북핵 협상과 미중 무역전쟁 등은 바로 우리 현실의 문제다. 이럴 때일수록 한미일 안보 협력 체제를 강화해야 한다. 긴박한 국제정세에서 악재를 호재로 바꾸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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