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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 위대한 침묵 - 알프스의 깊은 계곡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19-05-09 21:21:47

칼럼,김건흡,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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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누구도 쉬이 들여다보지 못했던 고요함의 세계가 있다. 해가 뜨고 달이 지고 별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하는 계절 속에서 영원을 간직한 공간을, 그들만의 시간을 만들어나가는 이들이 있다. 외부와 단절된 수도원에서 세상적인 삶을 뒤로 한 채 오직 하나님만을 응시하며 침묵 속에서 살아가는 수도사들이다. 

수년 전 개봉되어 전 세계에서 절찬을 받은 필립 그로닝 감독의 영화 ‘위대한 침묵(Die Grosse Stille)’은 해발 1,300미터 알프스의 깊은 계곡에 자리 잡은 프랑스 그랑드 샤르트뢰즈 수도원에 거주하는 카르투지오 수도사들의 일상을 그린 다큐멘터리다.  

이 카르투지오 수도원은 1081년 성 브르노가 창설했다. 사방이 벽으로 갇힌 곳에서 바깥세상을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고 매일 한 끼만의 식사로 소재를 지키며, 세상 모든 인간적 재미와 흥미를 떠난 채 철저한 고독 속에서 주님만으로 만족하는 삶을 누리는 이곳 수도승들이 세상을 떠나 홀로 선 것은 세상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자신만의 특별한 성소로 주님을 증거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이 수도원은 세상의 변화에도 여전히 지금까지 창립 초기의 정신을 유지하고 있다. 14세기 흑사병이 유럽을 강타했을 때 거의 모든 수도회가 더 이상 엄률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모두 완화된 규칙을 채택했으며, 흑사병이 지나간 후에도 원래의 엄률로 돌아오기를 꺼려했다. 그러나 카르투시안회만이 단 한 번의 회칙 개정도 없이 고유의 엄률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2010년 12월 한국에서도 개봉된 이 영화는 침묵을 통해 우리에게 수도원 너머 미지의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다. 카르투지오 수도원은 방문객이나 관광객 등 일반인들의 출입을 철저하게 제한하는 수도원으로 로마 카톨릭 중에서도 가장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이들은 사방이 벽으로 갇힌 곳에서 바깥세상을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고 매일 한 끼 만의 식사로 소재를 지키며 세상 인간의 쾌락과 흥미를 뒤로 한 채 철저한 고독 속에서 주님만으로 만족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오프닝은 눈보라와 불빛이다. 그리고 침묵이 이어진다. 외삽 되는 검은 화면에 자막이 흘러나온다.  

“봄은 겨울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봄은 침묵으로부터 온다. 또한 그 침묵으로부터 겨울이, 그리고 여름과 가을이 온다.”

그리고 장면이 바뀐다.  카메라가 수도원 건물들을 잡아낸다. 견고한 저 건물들. 문득 화면이 블로우 업으로 돌아간다. 작게 울리다가 이내 높아지는 수도원의 종소리. 그리고 옷자락 스치는 소리, 수사들의 오래된 방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그리고 다시 침묵. 말씀들. 

2시간 42분이다. 놀랍지 않은가. 이 긴 러닝타임 동안, 눈이 먼 늙은 수사의 끊어질 듯 이어지는 약 5분여의 대사와 산책과 눈썰매 타는 동안의 수사들의 몇 마디 말, 그리고 미사를 하는 동안의 기도 소리 외에 어떤 ‘인간의 소리’도 이 영화에는 없다. 잠깐 잠깐씩 화면을 블로우 업 시키는 것 외에 별다른 편집기술도 동원되지 않는다. 

이처럼 이 영화는 대사가 거의 없다. 수도원의 일상에 관해 어찌 보면 지루하달 수 있는 장면을 반복해서 연출한다. 침묵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서 언어를 사용할 수는 없다. 음성은 눈이 먼 노수도사의 읊조림 같은 발언이 전부이며, 사람의 언어가 섞여들지 않은 음향이 들릴 뿐이다. 삐걱이는 문소리, 종소리, 그리고 그레고리안 성가… 수도사들은 방에서 면벽(面壁)한 채 끊임없이 명상과 기도에 열중한다. 아니 집중한다. 마치 틈새를 노리는 마귀가 기도 사이에 끼어들기라도 할까봐 두려운 듯이. 

느리게 하염없이 눈발이 흩날리고 수도원의 종소리가 들린다. 뎅 뎅 뎅, 수도원의 고요를 조용히 깨뜨리는 작은 종소리. 이어 미사를 알리는 큰 종소리가 미로와도 같은 각 은수처의 낭하를 타고 울려 퍼진다. 

은수처와 기도처를 오가는 수사들의 움직임이 이렇게 소개되고, 다시 은수처와 작업실의 일상이 소개된다. 

독경, 옷 만들기, 식사, 설거지, 삭발, 장작패기, 신발수리, 채소 가꾸기 등의 일상. 그리고 어둠 속의 성가, 신입 수사의 입회, 독방 입실, 공동식사, 산책 등등 공동체 생활의 주요 일과도 소개된다. 

그리고 이 모든 일과를 품고 있는 알프스 산악지대의 자연 풍경과 간간이 삽입되는 “너희가 모든 것을 버리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다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와 같은 불어·독일어 자막, 수사들의 얼굴을 정면으로 찍은 컷, 마지막으로 장님 수사의 소박한 발언, 이것이 이 영화의 모든 것이다.

영화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이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번쯤 생각해봄직 한 원론적인 질문에 알프스 깊은 산 속에서 평생을 보낸 늙은 수도사는 이렇게 대답한다.

“주님의 깊은 뜻을 찾지 못한다면 계속 살 이유가 없다.”

짧고 명료한 답변에 늙은 수도사뿐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는 이유가 담겨있다.

영화는 신랄하게 이런 삶을 살라고 강요하거나 이런 삶을 살지 못한다고 힐책하지 않는다. 그저 부끄러움이면 된다. 진리에 철저하지 못함에 대해 한껏 부끄러움을 느끼면 된다. 

수도사들의 침묵 수행은 스스로 소리를 내지 않고 귀로 감각할 수 있는 소리 저 너머의 소리, 즉 하나님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내면 깊이 침잠(沈潛)하며, 자연적 세계 너머로 확장되는 신비적 체험으로 자신을 열어두고 자신의 말을 멈춘다. 

나도 잠시 일상적 소음을 줄이며 그들의 고독한 명상의 시간에 동참해 보려고 노력해 보지만, 그 깊은 침묵에 동참하기에 우리는 여전히 너무 부스럭거린다.

떠들썩하고 더 큰 자극을 요구하는 현대 사회 안에서 침묵은 대단히 중요한 영적 키워드를 제공한다. 우리 영혼의 심연 안에서 하나님을 응시하고 세상을 사뭇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관상은 단순히 ‘보는 것’ 이상일 것이다. 

그래서 바람 안에 새겨진, 그 소리와 빛깔이 발산하는 하나님의 기운을 느끼도록 돕는다는 사실은 부박(浮薄)한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바뀌어도 매일 같은 의식 속에서 변함없는 일상을 살아가는 수도사들의 경건한 모습은 보는 이에게 깊은 감동을 전한다. 

우리는 소셜 미디어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들의 소통이 더 빠르고 분주해졌다. 이로 인해 내면의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부드럽고 정적인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 인류의 역사 어디를 봐도 사람들은 한 걸음 물러나 있을 때, 세상과 분리되어 고요함에 빠져 있을 때, 조용히 영적 교감을 경험할 때 자신의 깊이를 가장 잘 감지한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사람들은 외적 아담이 목소리를 낮추고, 내적 아담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시간, 긴 침묵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왔다. 하지만 이렇게 고요한 침묵의 순간들은 점점 더 드물어진다. 시간이 날 때마다 스마트 폰으로 손이 가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특징은 조용히 사색하고 명상하며 기도하는 침묵의 시간을 잃은 데 있다. 그 시간을 잃어버림으로 천박한 생각, 얕은 꾀, 꼼수만 늘었다. 그 천박하고 얄팍한 생활을 살아가려 하니 스스로 자신의 올무에 걸려 넘어지게 되는 것이다. 약은 사람이 늘 잔꾀에 넘어지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을 만나 떠들고 집에 돌아왔을 때 그렇게 마음이 공허하고 허전할 수가 없다. 공연히 지껄여댄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고 후회스러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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