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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의 기다림… 조각으로 물든 도시 공공미술 매혹에 빠지다

지역뉴스 | | 2017-08-11 09:09:09

독일,뮌스터,조각,아트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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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에 한 번씩, 강산이 바뀔 때마다 깨어나는 도시가 있다. 독일 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NRW)주에 속한 북부 소도시 뮌스터다. 유럽 교역로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이곳은 지난 1648년 지루했던‘30년 종교전쟁’의 종식을 선언한 베스트팔렌 조약의 체결지로 세계사 교과서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의 화마로 도심 지역의 90%가 파괴돼 전후 상흔을 치료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보냈고 지금은 뮌스터대를 중심으로 한 대학도시로 알려져 있다. 

이 조용한 도시를 10년에 한 번씩 뒤흔드는 사건의 진원지는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Skulptur Projekte)’. 발단은 197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뮌스터대는 그 시기 유럽 미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조각가 중 하나인 영국 태생 헨리 무어의 작품을 기증받게 된다. 추상조각의 선구자로 지금은 작품값이 수백억원을 호가하는 무어이건만 당시 뮌스터 시민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때만 해도 의미 있는 인물을 다루거나 형상의 묘사가 생생한 ‘구상조각’이 주류였기에 뭔지 모를 구불구불한 청동 덩어리를 향해 “치우라”는 여론이 빗발쳤다. 그 무렵 베스트팔렌미술관 관장이던 클라우스 부스만은 공공을 위한 예술교육의 필요성, 미술관 안에만 갇혀있는 게 아닌 일상 가까이에 존재하는 미술의 필요성을 자각했다. 그렇게 1977년 뮌스터에서 처음 열린 ‘조각 프로젝트’의 다섯 번째 행사가 이달 10일(현지시간) 개막했다. 행사기간 전 세계의 미술 애호가들은 많이 걸어도 무리 없는 운동화 차림으로 도시 곳곳에 전시된 35개의 신작 조형물과 과거 전시 이후 영구 설치된 수십 개의 작품들을 찾아 이곳 뮌스터를 누빈다.

‘예술여행’ ‘아트투어’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몸이 달을 만한 이번 조각 프로젝트에 앞서 여행 가방을 싸기로 결심한 것은 당연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또 10년을 기다려야 하는 탓이다. 도시 탐험가이자 예술 수색대를 자처한 뮌스터 여행객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작품 설치 장소를 표시한 지도가 쥐어 있다. 특히 올해는 ‘SP17’ 등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선보여 GPS를 기반으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작품을 찾기가 한결 편해졌다. 

30년째 조각 프로젝트를 돌아본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뮌스터 남서부를 촉촉이 적시는 인공호수 아제 강변에서 여행을 시작했다. 33번 시내버스에서 내려 다리로 향하는 길, 가느다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눈이 아닌 귀로 먼저 만난 작품은 수전 필립스가 2007년 미술제 때 선보인 ‘잃어버린 반영’이다. 교각에 매달린 스피커에서 독일 낭만주의 작가 호프만의 ‘잃어버린 반영 이야기’에 바탕을 둔 오페라가 흘러나오고 찰랑이는 물결에 튕겨난 선율은 더욱 애잔하게 들린다.

노래를 뒤로 두고 강을 따라 걷기 시작하면 곧바로 직육면체 반듯하게 깎아 만든 주목나무 수풀이 눈에 들어온다. ‘저것도 작품인가’라고 묻는다면 적어도 지금 이 시기 뮌스터를 찾은 거의 모두가 “네, 작품 맞습니다” 하고 답할 것이다.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중요한 여성 작가 중 하나인 로즈마리 트로켈이 지난 전시 때 선보인 것으로 자연과 인간의 유기적 연결관계에 대해 고심하는 작가의 특성이 고스란히 읽힌다. 호수 쪽 나무 일부가 노릇하게 시든 것은 10년 세월의 흔적 같다. 시간의 흐름은 첫 회이던 1977년 조각 프로젝트 때 선보여 영구 설치된 미국 미니멀리즘의 대표작가 도널드 저드의 작품에서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콘크리트로 만든 원형 구조물 2개를 겹쳐놓은 형태인데 놀이터만 한 울타리 안쪽에 무성한 잡풀, 누가 했는지 모를 그라피티와 빼곡한 낙서에서 시간이 읽힌다.

여기서부터 시내까지 2㎞ 남짓한 호숫가 곳곳에 작품이 놓여 있다. 잔디밭 위로 솟은 초대형 안테나 모양의 작품 ‘위를 봐, 그리고 글을 읽어봐’는 자연스럽게 여행객을 드러눕게 만든다. 일리야 카바코프가 1997년 조각제 때 개념미술을 공공미술 형식으로 구현한 것으로 하늘을 보고 누워야만 안테나 꼭대기에 적어둔 시 구절을 읽을 수 있다. 작은 나루터처럼 호수 안까지 파고든 ‘부두(Pier)’라는 목조 구조물 형태의 작품은 다양한 방식으로 주변을 조망할 수 있게 한다. 그득한 낙서 중에 ‘사람들은 그렇게 봐주길 바라는 대로 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문장이 유독 발길을 붙든다. 보고 싶은 대로 보겠다는 그 말이 작품의 정곡을 찌른 것일 뿐 아니라 이번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이기 때문이다.

멀리서도 보이는, 어른 키 두 배쯤 되는 커다란 흰 공들을 향해 걸어가면 호수 끝에 닿는다. 우리에게는 청계천 입구 소라고둥 형상의 조형물로 잘 알려진 클라스 올덴버그의 1977년작 ‘거대한 풀볼들’이다. 올덴버그는 별스럽지 않은 일상의 물건들을 엄청난 크기로 확대한 작품으로 생각의 전환, 새로운 시선을 유도한다. 몇 번이나 하얀색을 다시 칠한 이 콘트리트 조형물 옆에는 ‘예술(kunst)’ ‘자유롭게 느끼라(feel free)’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어느덧 이곳 시민들은 최첨단 현대미술의 정신을 가장 잘 이해하는 예술선동가가 돼 있었다. 

뮌스터 도심 곳곳에서는 올해 신작들을 만날 수 있다. 조각 프로젝트 주최 측이자 3유로에 작품위치 지도를 판매하는 주립 엘베엘(LWL)미술관을 거점으로 잡으면 편리하다. 바로 옆에는 뮌스터 시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교통수단인 자전거 대여소가 있다. 보행 전용도로가 많아 미술제를 둘러보기에는 종일 요금 12유로의 자전거가 최적이다.

미술관 앞마당 쪽으로는 대형 트레일러가 인도까지 침범해 방문객을 당혹하게 한다. 케냐 태생의 독일 작가 코지마 폰 보닌과 미국의 개념미술가 톰 버의 협업 작품이다. 트럭 바로 옆에 그 유명한 무어의 조각이 마치 방금 운송된 듯 놓여 있다. 작품 감상을 위해서라면 통행의 불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가치가 있다는 의도로 읽히지만 해석은 각자 입맛대로다. 

반대쪽 후문 입구, 조각 프로젝트 현수막이 걸린 벽 건너편 모서리에 존 나이트의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예술가들이 사용하는 수평자를 거대하게 확대한 것인데 작품이 정확하게 걸린 것인지, 또 나 자신이 똑바로 서 있는 것인지 돌아보게 한다. 미술관 안팎으로 여러 작품들이 산재했지만 단연 인기는 그레고어 슈나이더의 작품이다. 미술관 아트숍 앞 계단에서 최소 20분, 길게는 한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하는 대기 줄이 그 열기를 보여준다. 한 명씩 관람객 수를 제한한 까닭도 있다. 차례가 되면 닫힌 문을 열고 4층 계단을 올라가 방 3개와 욕실 1개 구조의 아파트형 설치작품 앞에 다다른다. 하얗고 조용한 ‘남의 집’은 관람객에게 훔쳐보기의 묘한 쾌감과 어디선가 감시당하는 듯한 이상한 긴장감을 동시에 안긴다. 

니콜 아이젠만이 공원 내 분수 주변에 세워둔 벌거벗은 조각들은 결코 예쁘지 않으나 유머러스하다. 커다란 엉덩이를 보인 채 누운 사람이나 부끄럼 없이 허리를 젖힌 채 웃는 남자 등의 모습에서 우리네 속마음을 들킬 것만 같다. 

이번 뮌스터 조각제를 다녀간 이들이 첫손에 꼽는 작품들은 도심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 터키 출신 여성 작가 아이셰 에르크멘의 ‘물 위에서’는 관객들에게 물 위를 걷는 기적을 경험하게 한다. 성경 속 예수가 물 위를 걷는 기적이 등장하기에 유럽인들에게 그 같은 체험은 연신 환호를 터뜨리게 했다. 작가는 수면 바로 아래에 징검다리 같은 구조물을 설치해 강 양쪽을 연결했고 그 위를 걸어가는 모습은 물 표면을 걸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스링크로 사용된 체육관 전체를 작품으로 바꿔놓은 프랑스 작가 피에르 위그의 ‘앞선 삶 이후(After a life Ahead)’가 개인적으로는 최고였다. 마치 고고학자의 발굴현장처럼 파놓은 빙상경기장 아래로 흙과 물이 드러나 있는데 고인 물에서 작은 물고기와 소라게·물방개 같은 것들이 꼬물거리며 살아간다. 하늘을 나는 벌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미생물도 이곳에 ‘살아 있다’. 작가는 인간이 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만든 문명의 이기는 인간을 위한 환경일 뿐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며 재개발을 위해 버려지는 건축물을 통해 자연이 어떻게 스스로 정화하고 치유하는지 보여준다. 언뜻 파헤쳐 놓은 것 같지만 자연의 입장에서는 숨통과 터전이 열린 복구이자 복귀인 셈이다. 

창립멤버인 카스퍼 쾨니히 총감독은 올해 전시 주제를 ‘매혹적으로 늙은, 짜릿하게 젊은’이라고 밝혔다. 그렇다. 미술관 밖 미술로 공공미술의 개념을 소개한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개념미술의 구현, 도시재생과 소통 등을 거쳐 일상의 활력과 새로운 생명력이라는 또 하나의 가치를 전하고 있다. 강산이 네 번 바뀌며 시간과 함께 쌓인 예술은 삶과 사람들까지 바꾸고 있었다. 이번 조각제는 오는 10월10일까지 열린다. 거듭 강조하지만 놓치면 10년을 기다려야 한다. 

1987년 조각제 때 설치된 다니엘 뷔랭의 ‘4번째 문’은 평범한 거리를 비범하게 바꿔놓았다. 

  <뮌스터=조상인기자>

10년의 기다림…  조각으로 물든 도시 공공미술 매혹에 빠지다
10년의 기다림… 조각으로 물든 도시 공공미술 매혹에 빠지다

올해 조각제의 신작으로 공원 안에 설치된 니콜 아이젠만의‘분수를 위한 스케치.

10년의 기다림…  조각으로 물든 도시 공공미술 매혹에 빠지다
10년의 기다림… 조각으로 물든 도시 공공미술 매혹에 빠지다

아이스링크 전체를 파헤쳐 조성한 피에르 위그의 작품‘앞선 삶 이후(After a life Ahead)’는 인간이 파괴한 자연의 자생적 회복력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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