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사이 줄기차게 내렸던 빗줄기 탓이리라. 산책로로 들어서자 전신이 맑아진다. 생기로 가득한 숲의 신비로운 기운에 매료된다. 수목과 오솔길이 온통 물기를 머금고 있어 마음도 함께 촉촉히 젖어든다. 산뜻한 숲내음을 머금은 초목사이로 신선한 느낌들이 물방울처럼 떠다닌다. 풍성한 초록이 충일한 활기로 천지를 넘쳐나듯 채우고 있다. 푸르스름한 안개가 애둘러 여명을 밀어내고 어스름한 새벽이 만물을 깨우기 시작한다. 깨어나기 시작하는 아침이 주춤주춤 하루를 살아낼 채비를 서두르는 모습이다. 운무의 영기가 빛의 서막처럼 어우러지며 숲을 헤집고 다닌다. 하루의 시작이 출범하는 시간이라서 새로운 하루를 맞기 위한 기지개로 하루를 설계하고 기대와 열망이 싱그럽게 꽃봉오리 처럼 봉긋이 열리기 시작한다. 활기찬 매일의 아침풍경이 어제도 오늘도 여념없이 찾아든다. 원시의 내음이듯 숲 내음이 한 가슴 안겨지면 만남이나 인연의 시작들이 떠올려지고, 해오름이 아침노을로 비끼기 시작하면 살아온 날들이 직조해놓은 무늬들을 한올한올 풀어내기도 하며, 조곤조곤 나누다보면 추상과 회고가 얼기설기 엮여지고 휘감겨지곤 한다.
산책길을 나설땐 쓰레기 봉지와 장갑을 준비한다. 자잘한 쓰레기들이 시야에서 맴돌아 지나쳐버리지 못하고 주섬주섬 줍기 시작했던것이 일과의 부분으로 자리잡게 된 셈이다. 휴지조각이며 잔뜩 물에 불은 신문이며 담배꽁초들이 단골 쓰레기들이다. 비바람에 휘둘려 부스러진 이파리들까지는 손댈순 없지만 처참하게 뚝뚝 떨어져있는 잔가지들은 숲 길 가장자리에 모아둔다. 음료수 병이나 패트병들도 함께 널부러져 있다. 이렇게 밤새 비바람이 지나간 날은 두어봉지 쓰레기를 너끈히 채우게된다. 오늘은 오버타임으로 가고 있지만 내일은 한가로운 산책 길이 되어질 것이다. 흐드러지듯 떨어진 잎새들이며 가지들은 종국엔 낙엽이 덮어주어 흙으로 돌아갈 터인데 문득 숲길을 덮고있는 잔해같은 잔가지나 잎새처럼 사라지고있는 것들이 사라져버린 것으로 치부되는 세상의 속도감이 두렵다는 생각이 뭉클 솟구친다. 속도와 돌풍같은 변화의 바람을 타고 세상이 제 정신 아닌 듯 달리고 있음이 맑은 산책길의 아침을 쓸쓸하게 만들어 준다.
어찌 그 비바람에 견디었을까 여린 들꽃이 하늘하늘 흔들리고 있다. 같은 수종이 오손도손 모여있기도하고, 키가 가지런한 이름모를 꽃들이 어우러져 다정하게 꽃길을 만들고 있다. 조화로움을 뽐내거나 도드라지려 하지 않는다. 단조로움으로 꽃피움을 이어가지도 않거니와 유독 무성하거나 빈약해 보이지도 않는다. 산책 길에 만나지는 꽃들은 언제든 정겹고 다정한 마중을 해준다. 수목이며 풀도 꽃도 깊은 사귐을 일구어내다 보면 저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은 두근거림이 일기도 한다. 간간히 내리는 비로하여 대지가 촉촉하지만 말복 더위를 넘기고 습도를 끼고있는 우기가 지나가면 목 마르다는 수목들의 투정이 다음 계절을 불러들일 것이다. 쓰레기를 버릴 퍼브릭 가배지 캔을 찾느라 두리번거리는 틈에 개를 끌고 가는 한 젊은이가 휘익 스칠 듯 지나간다. ‘깜짝이야’ 라는 소리에도 뒤돌아보지 않고 종종걸음을 친다. 개가 뛰기 시작하자 젊은 남자도 함께 뛴다. 놀란 노인네는 아랑곳 없이. 언뜻 인생의 단편을 본 듯하다. 세상을 지켜오는 작은 평화가 한순간 파괴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언뜻 스치고 지나간다.
산책길에도 우여곡절이, 희로애락이 함께 산책을 하고 있다. 산책 길에서 만나지는 수목도 꽃도 풀도 계절을 따라 꽃피우기도하고 스러지기도하면서 심오한 자연의 품으로 돌아간다. 안개가 수풀 사이로 잦아들고 붉은 기운이 감도는 아침 빛살이 신선하고 눈부시게 하늘 저변으로 번져간다. 혼자 걸으면 더 빨리 갈 수 있지만 둘이 걸으면 더 멀리 간다라는 말을 떠올리며 길동무와 동행하는 산책길을 지켜내려 한다. 새벽 여명을 매일의 첫 단추로 삼아 반듯한 하루이기를 소망하는 산책길 민그림을 소중한 삶의 여정 앞에 겸손히 옹립하기로 했다. 아직도 남아있는 자만과 이기를 창조주께서 베풀어주신 자연 속에서 공허하도록 아름다운 비움을 배워갈 수 있도록 변함없는 숲을 찾고 또 찾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