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이민 와서 전원(숲)의 도시 애틀랜타에서만 이십년 가까이 살고 있다.
영국의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그대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 하리>작품명을 회자하여 떠올리게 된다. 이제는 숲의 도시 애틀랜타를 떠나서 살아갈 것 같지 않다.
이국(타향)도 오래 살다보면 정 들어 고향처럼 느껴진다는 말을 몸소 실감하고 있다.
애틀랜타는 화창한 날씨와 온화한 기후가 살기 좋은 친환경적인 도시로서 손꼽히고 있다.
소나무가 주종을 이루는 울창한 숲은 자동차로 하루 종일 달려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광활한 지역이다. 이곳, 조지아 주는 남한의 면적 세배가 되는 넓은 땅이다.
애틀랜타는 조지아의 주도이다. 애틀랜타 푸른 숲을 굽이굽이 돌아 유려하게 흐르는 풍광이 수려한 “차타후치”강은 시원이 “레이니에”호수이다.
바다 같은 아름다운 큰 호수는 앨라배마, 플로리다 주의 식수원이요. 애틀랜타 시민들이 즐겨 찾는 꿈의 요람이며 삶의 휴식처다.
동쪽 먼 곳에 있는 스톤 마운틴 정상에 올라 동서남북의 시가지를 내려다보면 애틀랜타가 숲의 도시라는 것이 한층 더 실감된다.
울창한 숲속에 파묻혀 있는 애틀랜타 시가지는 신이 내려준 천혜의 땅이다.
이민생활의 애환을 담을 수 있는 대자연을 애틀랜타는 품고 있다.
굳이 멀리 야외로 나가지 않아도 인근에 울창한 숲이나 큰 호수가 있는 공원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며 피로했던 심신을 새롭게 할 수 있어 삶의 활력소가 된다.
도심지 공원에서 물을 찾으러 나오는 사슴을 만나는 진풍경에 희열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바람과 억세 풀이 빚어내는 소리의 향연은 무디어진 감성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회복케 한다.
자연의 신비를 간직한 숲의 노래를 듣는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며 삶의 환희에 빠져든다.
숲에서 나의 영혼과 내면의 아픔이 치유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삶의 고통스런 숨결은 바람에 실리어 흩어지고 내면의 열정이 훈훈하게 살아나고 있다.
인생의 폭풍우가 지난 후 감사의 찬양이 가슴 깊숙한 곳으로부터 유려하게 흘러나오고 있다.
베토벤의 고난의 삶은 얼마나 힘 들었을까. 실연의 아픔을 겪었고 작곡자로서 치명적인 청각을 잃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극복하고 대자연 속에서 위로 받으며 감정이 치유 되지 않았든가.
애틀랜타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살아가며 전원 교향곡을 감상하는 기쁨이 여기에 있다.
베토벤이 청각을 상실하고 처절하게 삶의 고통과 아픔을 극복한 영혼의 노래가 전원 교향곡이다.
신과의 영적인 교감에서 탄생한 전원 교향곡은 상실과 고통스런 영혼의 처절한 절규가 내면으로 승화된 치유의 노래다.
베토벤은 대자연의 리듬인 바람소리, 폭풍우, 천둥소리, 시냇물 소리, 새소리를 자신의 내면에서 교향악으로 울려주고 있다.
인생의 폭풍우가 지난 후 삶의 새로운 기쁨과 감사를 노래하고 있는 마지막 악장은 참으로 경건하고 아름다운 선율이다.
살아가면서 어떻게 고통과 마주하는가? 고통스런 상황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베토벤은 고통스런 상황에서 전원을 찾아 산책하며 상한 감정을 치유했다.
그는 절망의 심연에서 헤어나 가혹한 자신의 운명을 극복한다.
베토벤은 자신의 삶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하고 음악의 창조성을 일깨우며 매진했다.
그는 드디어 인생 최고의 정점에 우뚝 설 수 있었다.
제6번 교향곡 <전원>은 베토벤의 상한 감정이 치유되어 고양된 영혼의 노래였다.
고난의 시간이 지나고 보면 삶의 과정에서 얻었든 교훈이 참으로 귀한 지혜가 됨을 감사하고 있다. 삶의 과정에서 부딪치는 온갖 불협화음에 지혜롭게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는 일이 중요하다. 숲의 도시 애틀랜타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축복을 누리고 있음을 감사한다.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의 시간이 있지만 몸과 마음이 쉴 수 있는 숲에서 영혼이 치유되는 기쁨에 전율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