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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칼럼] 백수 대통령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4-10-02 14:41:51

뉴스칼럼,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백수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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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를 보면 학과 소나무가 자주 등장한다. 조선시대 말기 그림에는 특히 학과 소나무가 자주 나오는데 이는 실제 풍경을 그린 그림은 아니다. 학은 소나무에 앉지 않는다. 학이나 소나무처럼 백년 천년 오래 살기를 기원하는 학수송령(鶴壽松齡)의 그림이다.

유한한 존재로서 인간은 장수를 꿈꿔왔다. “오래 오래 무병장수하시라”는 것은 대표적 덕담으로 꼽힌다. 인간이 도달하기 어려운 나이로 지금은 120세를 꼽지만 20세기 중후반만 해도 100세가 장수의 목표였다. 기대수명이 날로 길어지고 있다.

까마득한 고지로 느껴졌던 백수가 우리 곁으로 바짝 다가들었다. 100세 넘는 고령자가 날로 늘고 있다. 우리가 백수라고 할 때 해당되는 나이는 둘이다. 100세 그리고 99세. 100의 백(百) 자에서 일(一)을 뺀 백(白) 자를 써서 99세도 백수라고 부른다.

99세 백수(白壽)였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100세 백수(百壽)가 되었다. 1924년 10월 1일 태어난 그는 미국 역대 대통령 중 최장수 기록에 이어 최초의 100세 전직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대통령 재직 당시 인기 바닥이었던 카터는 인생 2막에 빛을 발한 흔치 않은 케이스이다. 젊은 날을 다 보내고, 더 이상 꿈꿀 것 없을 것 같은 나이, 노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는 몸으로 보여주었다.

1981년 1월 20일 후임인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취임식 참석 후 귀향했을 때 그의 상황은 참담했다. 개솔린 가격 등 물가는 치솟고 이란 인질사태 미해결로 임기 말 국정 지지도가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그는 현직 대통령으로서 드물게 재선에 실패했다.

56세에 최정상의 자리에서 밀려나 고향으로 돌아오니 그를 맞은 건 부채. 워싱턴에 가있는 동안 돌보지 못한 땅콩농장이 빚더미에 올라 앉아 있었다. 그의 노년은 예상 가능해 보였다. 실패의 아픔을 삭이며, 땅콩농사 지으며 씁쓸하게 노후를 보내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새 출발점일 줄은 아무도 몰랐다. 조용히 하지만 강인하게 그는 필생의 과업들을 시작했다. 어떤 역할도 마다하지 않으며 봉사하고, 지구촌이 좁다하며 분쟁지역들을 찾아다녔다. 세계의 평화와 인권, 공중보건 개선을 위해 그는 여생을 걸었다. 신앙에 뿌리를 둔 소명의식이었다.

그렇게 20년 지나자 그에게 돌아온 것은 2002년의 노벨 평화상 수상, 그리고 돈 주고 살 수 없는 두터운 신뢰와 존경이었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명함으로 연설 한번에 10여만 달러, 대기업 자문으로 이름 올려 수백만 달러의 자문료를 챙기는 관행으로부터 그는 멀찍히 떨어져 살았다. 조지아 플레인즈의 고향에서 주일학교 교사하며 소박하게 살았다.

노장의 발목을 잡은 것은 건강문제였다. 구순 즈음부터 암 발병, 낙상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회복되기를 반복하다가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이 재발해 간과 뇌로 퍼지면서 그는 지난해 2월부터 호스피스 케어를 받고 있다. 이어 지난해 11월 평생의 동반자였던 로잘린 여사가 세상을 떠나면서 그는 한쪽 날개가 잘려나가는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새 날들을 맞고 있다. 새 날들 중에 하고 싶은 건 다음 달 대선에서 민주당의 카말라 해리스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 2019년 암 진단을 받았을 때 그는 말했었다. “(신앙인으로서) 물론 기도를 한다. 하지만 살려달라는 기도는 아니다. 죽음을 맞는 바른 태도를 갖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부탁했다. 죽을지 살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조용하게, 강인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그는 생의 마지막 날들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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