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길
메주콩 한 자루 마늘 한 접 등짐 매고
오일장 보러 가신 아버지
여름 보낼 란닝구와 학용품 서너 가지
왕소금 듬성하게 박힌 고등어 두어 마리
누런 신문지에 둘둘 말아 망태에 넣고
늦은 점심 곁들인 막걸리 몇 잔에
기분 좋은 비틀걸음
둑길로 올라선
하동 저수지
복사꽃 붉은 가지 일렁이는 물그림자에
거꾸로 선 두 다리가
갈대처럼 흔들리는
하동 저수지
매고 온 망태 벗어주며
멋쩍게 웃으시던 아버지
혼자 국밥에 곁들인 막걸리가
그렇게도 미안하셨나요
노을 함께 붉어가는
하동 저수지
<이종길>
생년월일- 1940/2/18
본적- 경북. 영천
국적- 미국
이민- 1970년
직업- 병아리 감별사 취업 이후 서비스 소매업 부동산업 기타
학력- 대 중퇴(한국)
이메일- palpal96@me.com
■ 수상소감
글을 읽거나 쓰는 것에 재미를 느끼며 살아오고는 있지만 이런 큰 상이 내게 주어지다니 그저 과분하다는 생각뿐입니다. 작품 중에 거꾸로 매달려 갈대처럼 흔들리는 아버지의 야윈 다리가 나옵니다. 일제의 폭정, 6.25, 폐허를 헤쳐온 고통과 가난, 그 역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버지의 다리는 항상 거기 있었습니다. 그는 그때 어떤 꿈을 가졌으며 또 무엇을 얻으려 했을까요? 이 물음이 원래는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 동기였습니다. 아버지는 오직 한길 외롭고 고달픈 길을 주저없이 택하셨습니다. ‘사람 같은 사람’으로 자식을 키우는 일, ‘사람 같은 사람’으로 모인 사회를 만들고 그 속에서 제 몫을 감당할 수 있는 책임 있는 인간이 되게 하는 것. 그 분은 바로 이런 홍익인간의 철학과 가치를 몸소 실천하고 가르치는 일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이라는 한 나라의 세기적 번영을 기적이라는 한마디로 정의하려 합니다. 그러나 실은 우리의 성취는 홍익인간으로의 전 인류적 보편가치가 도약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지금 세계로 퍼져가고 있는 한류의 물결도 이러한 정신적 바탕에서 출발한 것이라면 한류는 절대로 한순간의 바람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한 사발 막걸리와 국밥의 호사를 혼자 누린 게 미안해서 멋쩍게 웃으시는 아버지의 소박하고 겸손한 모습에서 사랑에 더하여 잔잔한 연민의 정도 느끼게 됩니다. 노을빛, 술기운, 미안한 마음, 이 모든 것들로 하여 하동 저수지는 붉어가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이 풍요로움을 한 가지도 누려보지 못하고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신 모든 어버이들께 이 헌시로나마 위로를 드리려는 게 작시의 동기였음을 거듭 밝히며 포상으로 응답해주신 심사 위원님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종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