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윌킨슨은 “참 포도나무의 비밀(Secrets of the Vine)”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참 포도나무의 진수임을 만천하에 밝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참 포도나무라 하시면서 자기 자신의 나무에 붙은 가지들을 과감하게 전지하는 사실까지도 유감없이 밝힌 이 진리를 통하여 왜 하필이면 예수님께서는 그 많은 나무들 가운데 포도나무를 자신에게 비유하셨을까? 포도나무의 참 가치는 <오직 열매>에 있습니다. 성경 가운데는 오직 열매만으로만 존재가치를 부여하는 나무가 몇 되지 않습니다.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감람나무는 그 열매 외에는 목재로서 가지는 별다른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가운데 포도나무를 자신에게 비유하시면서 예수 안에 있는 모든 자들을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에 비유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나무의 열매에 큰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그러므로 포도나무의 포도열매 유무와 다소에 따라서 참 포도나무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15:1)
무엇이 열매인가? 예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무엇이 열매인지를 밝히지 않으셨으나 불필요한 가지는 과감하게 전지하신다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이 열매는 깨끗한 포도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가지치기를 하시는데 그 가지치기는 열매를 맺는 가지를 가지치기를 하신다 말씀하십니다. 열매를 맺는 가지를 가지치기를 하시는 목적을 분명하게 밝히십니다. “더 열매를 맺게 하려”고 그러신다 말씀하십니다.
더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포도나무의 가지를 치신다는 것은 오늘날 상충되어지는 현실 속에서 Paradox가 늘 존재하는 이 세상에 무슨 의미를 부여하고 계실까? 비극적인 현실을 맞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희극적인 현실을 맞는 사람이 엄연히 존재하는 이 Paradox의 세상에서 예수님은 어떤 사람을 두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열매는 곧 Good News를 의미할진대, 좋은 소식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더 좋은 소식과 기쁜 소식을 안겨주시겠다는 <희망의 메시지>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이 희망의 메시지를 전파함에 있어서 가장 독버섯 같은 혹은 암적인 존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내면 깊은 가운데 빙산일각에 불과한 <자아(Ego)>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우리의 모습이 빙산일각이라면 우리 내면 깊은 가운데 숨어있는 자아는 독버섯 내지는 암처럼 무서운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자아를 제거해내어야 비로소 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강력한 도전을 하고 계십니다. 못된 자아, 못난 자아, 비겁한 자아, 교만한 자아, 무례하고 완악한 자아, 결코 용납하거나 관용을 불허하는 무서운 자아를 잘라내어야만 더 훌륭한 열매를 맺게 된다는 이 엄중한 진리를 선포하고 계십니다. 그순간, 자신의 자아를 버리지 못하여 여전히 죄와 슬픔 가운데서 죄책감의 올무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옛사람>은 사라지고 안도감과 신뢰와 같은 <Peace>가 생수의 강같이 흘러내림으로써 성령의 열매, 착함의 열매가 풍성하게 주렁주렁 맺히게 되리라는 선포를 하고 계십니다. 못난 자아와 과감함과 용감함으로 결별할 때, 마치 농부의 손에 들려져 있는 예리한 전지기구에 의하여 잘려져 나가는 옛가지, 묵은 가지에 해당되는 <옛사람>인 불필요한 곁가지 대신에 파릇파릇한 새 잎은 돋아나오고 기존의 포도나무를 지탱하던 좋은 가지는 더욱 더 견고하여 좋은 포도나무 열매를 다량으로 생산해 내는 아름다운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 바로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의 비밀의 진수입니다. 위기는 곧 위장된 축복의 기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