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글을 쓰세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주로 깊은 밤에 글이 써진다는 답을 드렸지만 글을 쓴다는 과정과 아우르는 절차적 순리가 감성을 부려놓듯 글을 풀어내고 묶어내기도 하는 작업이라서 한마디로 언제 글을 쓰게된다는 결론을 선뜻 얻는다는게 어쩐지 역설적일 것 같다.
잠자리에 들면서 문득 떠오르는 단어, 산책길에서 스며드는 글귀 하나에도 절명의 욕심이 도사리고 있음이라서 머리맡이며 주머니며 가방에도 메모지는 항시 대기 중이다. 메모가 모여지고 전후를 선별로 정리해가며 컬링과 정렬로 가려낸 후에 발췌된 문장들을 파일 주제별로 옮겨놓는 일이 일사불란 진행된다. 오타 발생으로 선택해두었던 글줄이 엉기면서 실종되기도 하고 문장을 잇고 잘라내기를 번복하면서 한 오리도 엉키지 않고 흐트러짐 없이 파일로 옮겨지는 일은 드물다.
구와 절이 단락으로 문단으로 저장되고 숙성과정 동안 수정이란 잣대로 잘려나가는 낱말들의 아픔을 겪게도 된다. 글을 짓고 개축하고 리모델링을 하는 와중에 막다른 골목으로 접어든 것 같은 막막함과 마주하게 되면 시를 찾아 읽으며 상념의 에어포켓을 찾기도 한다.
작품을 구상하고 써내려가면서 마무리 시간에 만나지는 전율때문에 글쓰기를 놓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구상을 할 때는 글의 전개가 어떻게 가지를 뻗는지 손수 써내려가면서도 신비로운 설렘으로 벅차지만 미학 탐구 보편성을 가늠하게 되고 두드러진 글로 남기고 싶은 이타심이 일렁이기 시작하면 글이 뒤틀리고 맥이 분실되기 십상이라 힘든 시간을 쏟아부어야 한다. 해서 가능하면 단순하되 유난스레 잘써보려는 무리를 범하지 않으려 한다.
글을 써야한다는 작업은 스스로 만든 책무감으로 온통 들러싸여 있는 터이라서 먹거리를 준비하고 설거지를 하면서도, 지인과의 만남에서도 소재를 얻기도하고 찾고있던 소중한 낱말을 건져올리기도 한다.
편리한 디지털기기의 도움을 받으며 쓰는 시간 속으로 잠입하게 되지만, 사실 그 공간 속에서 오롯이 유지될 수 있는, 방해 받지않는 시한은 얼마나 될까. 일상은 이런저런 사유로 좀처럼 시간을 얻어내기가 쉽지만은 않음이요 가정 일상사를 돌보는 다양한 시간 틈새에서 적당한 관계 유지에도 시간이 할애당하기도 한다.
유례없는 해를 넘기는 칩거 중에 느슨함을 공급받는 절호의 시간을 누리고 있는 참이지만 끝없이 해도 표시나지 않는 집안일은 항시 대기중이요 산책이나 마켓을 다녀오는 일 외엔 한아한 시간의 여지가 있어 보이지만 짜투리같은 소강상태의 시간 동안에도 글을 구상해야 하는 사투는 진행 중이다. 느닷없는 재앙으로 인한 운둔 와중인데도 쓰고 싶다는 욕구가 잔잔히 뿜어져 나오고 있다는 현상이 놀랍고 기이하기도해서 감사가 저민다.
마감 시간이 다가오면 완벽하게 조율된 악기를 연주해야 하는 것 마냥 예적 균형과 조화에 집중하며 마무리에 몰입하게 된다.
까똑까똑 숨넘어가는 전화 소음을 우회하느라 아예 전원을 꺼버린다.
글쓰기 과정을 통해 살아있음을 확인하게되는 기쁨도 있지만 각박하고 분주한 이민자들로 부터 어찌보면 한가한 짓거리로, 사치로 여김받을 수 있겠다 싶은 기우가 어른거려 딱히 내색치 못하고 있는 편이다. 착상이 문자화되어 파일에 올려지고, 지면에 활자화된 글로 실리게되면 세상을 향한 시야가 바른 것이었는지 지평이 기울어진 바는 없는지 글을 위한 매몰찬 평론을 던지면서 매번 게재된 글을 다시 다듬게 된다.
쉼없는 추론과 유추와 숙고들이 글자판을 두드리게하는 계기로 만들어가고 있다. 상상력 시야가 멈춘다거나, 무위도식 내버려두지 않아서 아직껏 게으름이 들어설 자리는 얻지 못하고 있다.
쇠할 것 같은 노구의 사색이 질곡의 언덕을 넘어 글쓰기를 이어갈 수 있도록 삶의 발원이 되어주고 있다.
주어진 공간에서 유영하듯 마음껏 시간을 누릴 수 있는, 홀로 만의 시간을 찾아내는 일 또한 흥미롭다. 들쑥날쑥했던 집필시간은 시행착오 끝에 집중력을 모을 수 있는 시간이 선택 받게된 것이다.
깊은 밤 동안을 나만의 시간으로 삼으며 사색이 깃든 공간을 마음껏 순례하는 기행을 누린다. 글쓰기를 구상할 수 있는 순화와 탐색이 머무는 깊은 밤이면 사고와 느낌이 살아 움직이듯 놀랍게도 숨겨두었던 광맥처럼 글줄이 풀려나온다.
감사할 수밖에 없는 행복회로의 내중력 본체가 가동되는 순간들이다.
‘언제 글을 쓰세요’ 라는 질문에 만족할만한 답변이 되려나 싶으면서도 ‘행복한 아침’으로 하여 새벽을 깨우는 글을 남기고 싶다는 가당찮은 모색을 끌어안게 된다. 글이 써지는 날까지 멈추지 않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