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령자인 스페인의 마리아 브라냐스 모레라 할머니가 꼭 1주일 전에 117년 5개월여를 향수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제 지구촌 최고령자 타이틀은 올해 116세인 일본의 이토오카 도미코 할머니에게 넘어갔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역대 최고령자는 프랑스의 잔 루이스 칼망 할머니로 향년 122세였다. 성경의 모세보다도 2년을 더 살았지만 진위여부로 논란이 없지 않았다.
한국의 최장수기록 보유자는 2005년 109세를 일기로 타계한 최애기 할머니이다. 김엄곡(123세), 이화례(121세), 오윤아(119세) 등 ‘수퍼센티네리언’(110세 이상 향수)들이 있었다지만 공인되지 않았다. 지난해 상수(上壽:100세)를 맞아 정부로부터 지팡이를 선사받은 노인이 8,929명이었고 그중 7,403명이 할머니였다. 장수 건강노인의 간판격인 김형석 교수는 올해 104세이다.
‘인생 100세 시대’란 말이 맞는다면 나도 올해 중학교에 들어간 손자가 장가갈 무렵엔 상수를 훌쩍 넘겼을 터이다. 그래서 걱정이다. 노인들은 해마다 부쩍부쩍 느는데 신생아는 갈수록 줄어든다. 지난해 미국의 출산율은 가임여성 1,000명당 55명으로 1년 새 또 3%가 줄었다. 앞으로 입시전쟁, 취업전쟁, 승진전쟁 말고도 ‘세대전쟁’이 안 일어난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나?
지난 2022년 일본에서 ‘플랜 75’라는 영화가 개봉돼 파장을 일으켰다. 그해 부산 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됐다. “경제를 축내며 젊은 세대에 부담만 안기고 있는 노인들이 우리사회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도와주겠다”며 한 청년이 어르신들을 닥치는 대로 살해한다. 그 이후 유사사건이 잇따르자 일본정부는 존엄사법(플랜 75)을 제정해 노인들의 안락사를 공개적으로 유도한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개미’를 쓴 배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집 ‘나무’에 실린 ‘황혼반란’도 노인들을 핍박하는 사회풍조가 배경이다. 프랑스정부가 “놀고먹는” 노인들을 잡아다가 강제로 안락사 시키자 일부 노인들이 저항군을 조직해 맞서지만 결국 정부군의 세균탄 세례에 전멸한다는 얘기다. 주인공이 안락사 주사를 놓는 젊은이에게 “너도 언젠가 늙은이가 된다”라고 일갈한다.
나를 포함한 대다수 노인들이 연방정부의 사회보장(SS: 소셜시큐리티) 연금과 메디케어에 목을 매고 있다. SS가 2033년부터 대폭 줄어들 것이라는 말이 나온 지 오래됐다. 세금 내는 젊은이들이 불만일 수밖에 없다. 미국은 총 쏘기를 손 뒤집듯 하는 나라다. 일본이나 프랑스와는 비교도 안 된다. 망상이지만 시니어센터, 요양병원 등이 불만청년들의 공격타깃이 될 수도 있다.
에세이집 ‘100세를 살고 보니’에 이어 지난 5월 ‘백년의 지혜’를 출간한 김형석 교수는 늙지 않는 두 가지 비결이 “계속 공부하고 일하면서 마음을 젊게 가지는 것”이라고 공개했다. 감정이 풍부한 글과 예술작품들을 자주 대해 감수성을 연마하고 젊은이들과 교류하면서 젊은 생각으로 무장한다고 했다. 한 고등학교에서 강연이 예정돼 있다며 학생들과 노는 게 즐겁다고도 했다.
김 교수 얘기는 대다수 한인노인들과는 거리가 멀다. 평생을 학자로 산 그는 공부가 일이다. 젊어서부터 존경받는 저명인사였다. 남녀노소 단체들로부터 강연요청이 쇄도한다. 하지만 이국땅에서 먹고살려고 바둥바둥 일만 한 한인들이 은퇴 후 새삼 공부를 하거나 예술을 익힌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젊은이들과는 언어부터 다르다. 한인타운에 나가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우리에겐 ‘일노일노 일소일소(1怒1老 1笑1少)’ 비결이 더 쉽다. 웃자.
“노인은 다기능 보유자다. 재채기하며 소변도 본다,” “자녀에게 잘 보여라. 당신이 갈 요양원은 그들이 선택한다,” “달과 틀니의 공통점은? 둘 다 밤에 나온다,” “노인이 받는 트로피는? ‘애트로피(Atrophy: 쇠퇴),” “노화의 4단계: 이름을 잊는다-얼굴을 잊는다-지퍼 올리는 걸 잊는다-지퍼 내리는 걸 잊는다.”
<윤여춘 전 시애틀지사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