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을까, 막을까…이민정책, 글로벌 선거 최대 이슈로
올해 선거를 앞둔 미국, 영국, 유럽연합(EU) 등지에서 이민자 정책을 놓고 논란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해를 거듭하면서 급증하는 이민자들에 대한 국민적 불만이 쌓이자 이민 장벽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힘을 얻고 있어서다. 반면에 이민자들이 노동의 공백을 메우는 등 국가 경제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는 진단도 나오면서 이민정책을 둘러싼 논란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28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11월 대선이 치러지는 미국에서 이민 이슈가 최대 쟁점으로 부각했다.
여론조사 기관 ‘갤럽’에 따르면 4월 말‘미국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 1위에 이민이 올랐다. 이민을 꼽은 응답자 비중은 27%로 경제(17%), 인플레이션(13%) 등을 크게 웃돌았다. 갤럽은 매달 같은 주제의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올 2월부터 석 달째 이민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관련 조사가 시작된 후 처음이다.
5주 남은 영국의 총선에서도 이민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유고브’의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40%(5월 6일 기준)가 ‘국가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이민을 지목했다.
경제(50%)와 건강(45%)에 이은 3위다. 2019년 총선 당시 이민을 중요한 이슈로 보던 비중은 약 20%에 불과했지만 5년 만에 상황이 확 달라진 것이다. 다음 달 6일부터 열리는 EU 의회 선거에서도 이민은 주요 쟁점으로 꼽힌다.
이민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 것은 예전에 없던 ‘역대급’ 이민 행렬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지난해 순이민자(이민 유입-이민 유출)가 33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전년 대비 23.3%가 늘어난 것으로, 순이민자 수는 2021년(117만 명)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어선 뒤 2년 만에 300만 명을 돌파했다.
영국도 2022년 순이민자 수가 76만 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2023년 68만 명으로 감소하기는 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의 10만~20만 명 수준이던 것과 비교하면 세 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독일의 지난해 순이민자 수도 65만 명으로 코로나19 직전 대비 약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현지인들 사이에서 곱지 않은 시선이 늘고 있는 것이다.
현지인의 불만이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국경을 넘은 이들이 급작스럽게 늘어나면서 각종 시스템이 마비되는 일이 빈번해졌고 마약을 비롯한 범죄 사건에 연루되는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치안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급등한 집값 문제 역시 이민자 급증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런던의 주택 중위가격은 평균 소득 대비 11.9배로 2009년의 7.4배에서 크게 높아졌다. 공급 부족 등이 집값 문제의 밑바탕에 있지만 이주민들이 늘어나면서 주택 문제가 심화됐다는 분석이다.
여기에다 저숙련 근로자들의 유입이 늘어난 것도 갈등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제한된 일자리를 놓고 기존 저임금 근로자들과 경쟁이 벌어지면서다. 노동시장으로 유입되는 근로자들이 급격히 늘면서 임금 하방 압력이 커지는 것도 기존 근로자들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현 집권 세력을 중심으로 반이민 정책들이 경쟁적으로 쏟아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재집권 시 불법 이민자를 제3국으로 추방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조 바이든 대통령도 불법 이민자를 신속히 추방할 수 있는 여러 방안들을 살펴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도 보수당의 재집권을 위해 망명 신청이 거부된 사람들을 르완다로 내보내는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진보 진영인 영국 노동당은 수낵 총리의 정책에는 반대하지만 이민자 문제에 전보다 엄격하게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상태다. EU 의회에서 다수 진영을 차지하는 중도 우파 유럽국민당(EPP) 역시 이민 문제가 역내 주요 이슈로 떠오르면서 국경의 벽을 높이는 데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일각에서는 반이민정책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특히 주류 언론 및 경제학자들을 중심으로 이민자 유입의 경제적 효과를 강조하는 분위기다. 노동시장으로 대거 유입된 이민자들이 생산비용을 낮추고 재화·서비스의 산출을 늘려 경제성장을 이끌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해 12월 관련 논문을 통해 “대규모 이민은 단기 및 중기적으로 생산량과 생산성을 높여 경제에 큰 이익을 가져다 준 것으로 분석됐다”면서 “원주민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미 의회예산국(CBO)도 미국의 이민자 유입 증가에 힘입어 2033년까지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이민자 유입이 없을 경우에 비해 7조 달러 더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경제는 제로섬게임이 아니다”라면서 “이민자 통제를 강화하면 인플레이션이 악화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 이완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