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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의 시선] '호모 플라스티쿠스'

지역뉴스 | | 2024-04-24 13:48:22

정숙희의 시선, LA미주본사 논설실장, 호모 플라스티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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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 깻잎, 고추, 감자, 오이, 상추, 토마토, 각종 과일… 마켓에 가면 가장 먼저 돌게 되는 야채부에서 일상적으로 집는 식재료들이다. 모든 야채는 따로따로 비닐봉지에 담아야한다. 한번 장을 보면 최소 10개 이상의 플라스틱 봉지가 생긴다. 집집마다 부엌서랍이나 수납장 한구석에 봉지더미가 잔뜩 쌓이게 되는 이유다.

더 귀찮은 애물단지는 일회용 얇은 봉지보다 훨씬 두꺼운 마켓 플라스틱 백들이다. 캘리포니아주는 2014년부터 일회용 플라스틱백의 무료제공을 금지하고, 원하는 사람은 10센트를 내고 재활용 백을 사도록 했다. 문제는 125회까지 재사용할 수 있도록 튼튼하게 만들어진 이 봉지를 다시 사용하는 가정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많은 업소에서 홍보용으로 더 크고 견고하게 만든 쇼핑백들을 공짜로 나눠주는데 굳이 마켓봉지를 재사용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 어떻게 됐을까? 이 법이 시행된 지난 10년 동안 일인당 플라스틱쓰레기의 양이 무려 47%나 증가했다(캘리포니아 재활용국 통계). 쓰레기를 줄이자고 만든 법이 오히려 반대효과를 낸 것이다. 지난주 가주 상원이 2026년부터 모든 플라스틱봉지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승인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곧 주하원에서도 통과될 것이 확실한 이 법안이 시행되면 소비자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장바구니를 사용할 것이고, 마켓들은 재활용 재질로 만든 종이 백만을 제공해야 한다.

진즉에 이런 규제가 있었어야 했다. 바라기는 이 참에 식당들이 사용하는 플라스틱 일회용기에 대해서도 제재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음식을 투고해 먹을 때마다 ‘죄책감’이 크다. 특히 한식은 밥, 국, 김치, 각종 반찬은 물론 파, 소금, 다대기, 식초, 겨자까지 모두 일인분씩 낱개 포장해주니 2~3명이 함께 먹는데 식탁이 수십개의 일회용기들로 가득 차버린다.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이래도 되는 걸까하는 생각에 늘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다.

미국은 플라스틱쓰레기 배출량이 압도적 세계 1위다. 연방 환경청에 의하면 미국인들은 매년 3,600만톤의 플라스틱쓰레기를 버리는데 리사이클링 비율은 수십 년째 10% 이하를 맴돈다. 가정에서 아무리 열심히 리사이클링을 해도 실제로는 대부분 매립지로 향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기업들과 재활용업계가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직까지 기술과 재정의 한계로 큰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자연 분해되지 않는 그 많은 플라스틱 쓰레기는 모두 어디로 갈까. 대부분 바다와 자연환경으로 배출되고 먹이사슬에 편입된다. 고래와 거북이 등 바다생물의 몸에서 나온 수십개의 플라스틱 사진을 보았을 것이다. 북태평양 한가운데 떠다니는 ‘쓰레기섬’을 모르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환류를 타고 쓰레기가 한곳으로 모이는 쓰레기섬은 한두 개가 아니고, 사이즈는 웬만한 대륙 크기라고 한다. 쓰레기들은 파도와 조수에 의해 작은 조각으로 쪼개지고 나중에는 가루처럼 작은 미세플라스틱으로 분해된다. 잘게 부서진 플라스틱을 물고기들이 먹고, 그 물고기를 잡아서 결국 우리가 먹는다.

바다에 떠다니는 것뿐 아니다. 이달 초 호주의 과학산업연구기구(CSIRO)가 바다 밑에 가라앉은 플라스틱 양과 분포를 추정하는 예측모델을 분석한 결과 심해 바닥에 300만~1,100만 톤의 플라스틱쓰레기가 쌓여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수면에 떠다니는 것보다 최대 100배 많은 양이다. 연구팀에 따르면 현재 지구에서 1분마다 트럭 한 대 분량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로 흘러들어간다. 그리고 2040년까지 그 양이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학자들은 우려한다.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폴란드 등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플라스틱 사용에 세금을 매기고 있다. 나라마다 내용이 조금씩 다르지만 일회용이나 재활용 불가능한 플라스틱포장에 대해 킬로 당 혹은 포장 당 0.30~0.45 유로를 부과한다. 캐나다도 2028년까지 비슷한 규정을 도입할 예정이다. 그런데 ‘쓰레기 천국’ 미국에서는 세금은커녕 플라스틱 백 사용을 규제하는 주가 캘리포니아를 포함해 12개주에 지나지 않는다.

가볍고 잘 찢어지지 않고 뭐든지 담기 좋은 플라스틱 백은 스웨덴 공학자 스텐 구스타프 툴린이 석유가 원료인 폴리에틸렌을 이용해 처음 만들었다. 그가 비닐봉지를 만든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당시엔 대부분 종이봉투를 사용했는데 툴린은 수많은 나무를 베어내는 게 문제라고 생각해 종이보다 오래 쓸 수 있는 비닐봉지를 고안해낸 것이다. 1965년 특허가 승인됐으니 불과 60년 만에 세계를 지배한 발명품이다. 현재 지구인들이 쓰고 버리는 플라스틱 백은 매년 1~5조개에 달한다. 비닐봉지뿐인가. 이제 인류는 각종 플라스틱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현세 인류를 ‘호모 플라스티쿠스’라 부르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4월22일은 지구의 날이었다. 아픈 지구를 위해 정부가 할 일이 있고, 기업이 할 일이 있고, 개인이 해야 할 일이 있다. 나와 자녀와 후손들을 위해 내가 지금 여기서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쓰레기를 적게 배출하고, 과도하게 포장하는 온라인 샤핑을 줄이고, 에어컨과 히터를 조금 덜 켜고, 샤워할 때 외에는 온수를 사용하지 않고, 유제품과 육류 소비를 줄이고, 옷을 오래 입고, 텀블러와 손수건과 장바구니를 지참하고 다니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모두가 일상에서 조금 구식으로, 조금 불편하게 사는 것이 필요하다.               

<정숙희 LA미주본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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