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첫광고
엘리트 학원
경동나비

[뉴스의 현장] 증오범죄, 가만 있으면 안 된다

지역뉴스 | | 2024-03-13 14:19:15

뉴스의 현장, 황의경 LA미주본사 사회부 기자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누가 스킨 케어

얼마 전 아시안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법률적인 문제를 도와주는 비영리단체 주최로 한인 언론인들을 초대한 자리에 참석했다. 실제 한인들이 겪는 고충을 가장 가까이서 보고 듣는 취재 담당자들에게 그들이 가장 필요한 서비스가 무엇일까에 대해 의견을 묻는 자리였다.

단체 관계자는 주택퇴거 문제, 노인학대 문제, 신분문제, 노동법 문제, 가정폭력 등 여러 가지 사안을 설명하면서 자신들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묻고 답했다. 가만히 경청하며 발표자들의 의견을 듣던 나는 대화의 주제가 아시안 증오범죄로 넘어간 순간부터 말이 많아졌다. 기자가 아닌 증오범죄를 직접 겪었던 피해자로서 말이다.

2022년 어느 여름날 나는 LA 한인타운에서 증오범죄와 함께 집단 폭행 피해를 당한 적이 있다. 야심한 새벽시간 집앞 골목에서 이웃의 고성방가가 긴 시간 이어졌고, 참지 못하고 창문에 서서 조용히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은 나의 출신국가와 성별을 들먹이며 조롱했다. 지역 경찰서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조롱이 도를 넘자 남편은 그러지 말고 대화를 하자며 집을 나섰다. 술에 취한 그들은 욕을 퍼부으며 남편을 먼저 때렸고 남편이 폭행당하는 모습을 보고 남편을 도우러 나간 나에게도 폭행을 가했다. 온 가족이 모여있던 그들의 숫자는 20명이 훌쩍 넘었고 우린 단 둘이었다.

폭행을 당하며 경찰을 불러달라 울부짖었다. 목격자 중 한명이 경찰에게 전화를 했고 경찰이 현장에 도착하자 가해자들은 모두 집 안으로 숨어들어 불을 껐다. 우리 부부는 입과 코에서 피를 흘리며 경찰에게 피해 상황을 진술했지만 경찰은 가해자들에게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고 그냥 가버렸다.

굳건하게 믿었던 공권력이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패닉이 왔다. 우리가 다시 두들겨 맞아도 경찰이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는 공포감은 생각보다 컸다. 우리는 도망치듯 이사했다. 사건이 일어나고 두 달 정도 후 경찰서에서 우리를 불렀다. 우리는 그들이 뱉었던 모욕적인 말들을 진술하며 증오범죄를 주장했지만 담당 형사는 증오범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수사당국은 우리 쪽 목격자도, 우리가 제출한 동영상도, 우리의 진술도 모두 무시하고 증거불충분이라며 케이스를 종료시켰다.

얼마전 기자 선배와 가진 점심식사 자리에서 이민자들이 겪는 정신적 충격에 대한 대화를 한 적이 있다. 태어나서 살던 곳이 아닌 전혀 다른 세상으로 이주해 느끼는 터부 같은 것 말이다. 내가 소속돼있다고 믿었던 이 사회가 나를 밀어내는 것 같을 때 느끼는 상처, 이민자로서 내가 겪었던 가장 큰 정신적 충격은 아마 앞서 얘기한 사건일 것이다. 

지난해 말 워싱턴 DC에서 길을 걷던 한인 남성 이모씨는 괴한에 의해 기절할 정도로 목이 졸리고 폭행을 당해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별다른 대처를 하지 않았다. 보다 못한 피해자가 직접 인근의 감시 카메라를 확인해 용의자를 확인했지만 경찰은 사실상 체포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증오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날로 높아지고 있지만 ‘아시안’ 증오범죄에 대한 처벌 법규는 여전히 미비한 수준이다.

내가 속해 있는 이 사회가 공평한 잣대로 범죄를 다뤄주길 희망한다. 피해자가 백인이어서 흑인이어서 아시안이어서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가 행한 행위에 대한 책임을 동일하게 지게 하는 그런 사회 말이다. 그런 세상을 만드는 것은 결국 우리가 되어야 한다. 피해를 당했을 때 아프다고 크게 울고 반항해야 한다. 밟혔을 때 크게 꿈틀거려야 한다. 우리의 꿈틀거림이 커질수록 이 땅에서 뿌리내려 살아갈 후손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편해진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황의경 LA미주본사 사회부 기자>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미시민과 결혼 서두르고 망명 신청…트럼프 대비하는 이민자들
미시민과 결혼 서두르고 망명 신청…트럼프 대비하는 이민자들

불법 이민자 대거 추방 공약에 패닉…영주권자도 불안해 시민권 신청대학들, 방학에 본국 가는 유학생에 "트럼프 취임 전 재입국" 권고 불법 이민자 대거 추방을 약속한 도널드 트럼프

주택시장 슈링크플레이션… 집 작아지는데 분양가 껑충
주택시장 슈링크플레이션… 집 작아지는데 분양가 껑충

소매업계에서‘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 행위가 논란이다. 슈링크플레이션은‘줄어들다’라는 뜻의‘슈링크’(Shrink)와‘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의 합성어로‘

2025년 주택시장, 올해 최악 상황 벗어난다
2025년 주택시장, 올해 최악 상황 벗어난다

모기지 이자율(30년 만기 고정)이 약 두 달간 상승을 이어간 끝에 11월 셋째 주(14일 발표 기준) 드디어 하락했다. 그런데 하락 폭은 전주 대비 0.01%포인트로 매우 미미한

졸업 후 취업난 걱정 없다… 다양한 특화 전공들‘주목’
졸업 후 취업난 걱정 없다… 다양한 특화 전공들‘주목’

대학을 선택하는 것만큼 전공을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다. 어느 전공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인생 진로가 결정된다. 적성과 맞지 않는 전공을 선택했다가 중간에 학업을 포기하는 경우도 흔하

병원 돌고 돈 후에야 판정…‘진단 사각지대’강직성척추염
병원 돌고 돈 후에야 판정…‘진단 사각지대’강직성척추염

허리 통증 외 다양한 증세 디스크와 통증 달라 주의수영은 증상 완화에 도움  “무릎이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무릎에 물이 찼다고 진통제와 물리치료를 받았죠. 어느 날부턴 오른쪽 눈이

“가을단풍 놀이 좋지만, 무릎·발목 부상 주의하세요”
“가을단풍 놀이 좋지만, 무릎·발목 부상 주의하세요”

하산 시 무릎 가해지는 하중 4배 이상 증가반월상 연골판 손상·발목 염좌 가능성 높아 단풍과 함께 등산의 계절이 한창이다. 하지만 일교차가 커지는 이 시기에 호기롭게 등산에 나섰다

10억달러 '조지클루니 테킬라'… 3대 멕시코 술'에 취했다
10억달러 '조지클루니 테킬라'… 3대 멕시코 술'에 취했다

테킬라, 메즈칼, 풀케… 멕시코 전통주의 역사할리우드 배우 조지 클루니(63)는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영화에 한 편도 출연하지 않았다. 요즘도 별 활동이 없다. 물론 그는

헬스장 안 가도…‘케틀벨’ 하나면 운동효과 만점
헬스장 안 가도…‘케틀벨’ 하나면 운동효과 만점

빠르고 간단한 홈트레이닝 법으로 인기근력 훈련에 심폐 운동까지 병행 효과너무 무겁지 않게… 적절한 자세 중요 시카고에 사는 34세 내과의사인 토드 반커코프는 운동을 할 시간이 많지

2세들 족쇄 ‘선천적 복수국적법’ 개정 재시동
2세들 족쇄 ‘선천적 복수국적법’ 개정 재시동

‘해외출생·거주 2·3세 한국 국적 자동상실’규정 신설된 개정안 국회입법조사처 제출 한인 2·3세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한국 국적법의 독소 조항 ‘선천적 복수국적’ 문제를 해결하기

추수감사절 연휴 8천만 떠난다
추수감사절 연휴 8천만 떠난다

AAA, 사상 최다 전망 올해 추수감사절 연휴 장거리 여행객이 전국에서 사상 최다가 될 것으로 전망됐다. 이에 따라 추수감사절 이틀 전인 오는 26일부터 연휴 교통체증이 시작될 것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