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전분 추출물로 만든 지혈 파우더가 소화성 궤양으로 발생한 출혈을 치료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소화성 궤양은 음식물을 소화하는 위산이 음식이 아닌 위·십지이장 등 소화기관의 벽을 녹이는 질환이다. 박준철·정다현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연구팀은 소화기관 벽이 녹는 소화성 궤양으로 인한 출혈 치료에 식물 추출물로 만든 지혈 파우더를 사용하면 기존 치료법과 비교해 초기 지혈 성공률이 높을 뿐만 아니라 사용도 쉽다고 밝혔다.
소화성 궤양이 악화하면 출혈이 발생한다. 지혈해도 출혈이 다시 생길 때가 많다. 65세 이상 환자에게서 소화성 궤양 출혈이 생기면 사망률이 10%에 이르고, 장기의 벽이 녹아 구멍이 뚫리는 천공(穿孔)이 생길 위험이 있어 초기 지혈이 매우 중요하다.
연구팀은 2017~2021년 소화성 궤양 출혈로 세브란스병원 등 병원 4곳의 응급실을 찾은 216명을 대상으로 지혈 파우더 효과를 확인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지혈 파우더는 식물 전분에서 추출한 다당류 물질로 상처 부위의 빠른 재생과 지혈을 돕는 흡수성 폴리머(AMP)가 함유돼 있다. 분석 결과, 지혈 파우더를 도포한 그룹(105명)에서의 초기 지혈 성공률은 87.6%로, 혈관 클립 결찰술 등 기존 방법으로 지혈한 그룹(111명)의 성공률(86.5%)보다 높았다.
특히, 소화기관 벽이 녹는 궤양 진행도가 높은 나머지 동맥 혈관이 드러나 출혈이 시작되는 환자에서 지혈 파우더를 도포한 그룹의 초기 지혈 성공률은 100%였다. 반면 기존 지혈법을 사용했을 때의 초기 지혈 성공률은 86.4%에 그쳤다.
지혈 시행 30일 후 출혈이 다시 발생한 비율은 지혈 파우더와 기존의 치료법 간 차이가 없었다.
박준철 교수는 “최근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는 소화성 궤양 출혈은 천공으로 이어지거나 이로 인해 사망할 수 있어 빨리 치료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며 “식물성 지혈 파우더의 치료 효과를 전향적 무작위 배정 방법으로 처음 확인한 이번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초기 지혈을 통한 예후(치료 경과) 개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최근 고혈압·당뇨병 등 기저 질환자가 늘어나면서 심·뇌혈관 질환자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심·뇌혈관 치료제인 아스피린·항혈전제 등의 섭취율도 늘고 있는데, 이 약들이 소화성 궤양을 일으킬 수 있다.
기존에는 혈관 클립 결찰술, 열응고술 지혈, 전기 응고 소작법 등으로 치료했다. 이런 치료법은 빠른 지혈이 필수적인 상황에서 시간이 많이 걸리고 높은 숙련도가 필요하다는 등의 단점이 있다.
최근 파우더를 환부에 뿌리는 방식의 치료가 시간이 단축되고 사용이 편해 집도의의 숙련도에 의해 치료 결과가 크게 좌우되지 않고, 식물 추출 성분으로 부작용이 거의 없어 많이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치료 효과를 명확히 확인한 연구는 없었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임상 위장병학과 간장학(clinical gastroenterology and hepatology)’ 최신 호에 실렸다.
◇소화성 궤양, 한국인 10%가 겪는 국민 질환
소화성 궤양은 한국인 10명 가운데 1명이 겪을 정도로 흔한 질환이다. 위궤양과 십이지장궤양도 포함한다. 위와 십이지장의 점막 속에서 위산으로 대표되는 공격 인자와 점액 성분의 방어 인자 사이 균형이 깨질 때 발생한다.
소화성 궤양이 생기면 식후에 속 쓰림이나 복부에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낄 때가 많다. 식사 여부와 관련 없이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십이지장궤양은 악화해 협착되면 소화불량이나 구토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소화성 궤양이 악화하면 출혈로 인한 흑변이나 토혈이 생기기도 한다. 증상이 심하면 위ㆍ십이지장 벽에 구멍이 생기게 된다.
소화성 궤양 발병 원인의 하나는 헬리코박터파일로리균이다. 헬리코박터균은 위장 점막에 살면서 위궤양ㆍ십이지장궤양 등 소화성 궤양과 위염ㆍ위암과 같은 위장 질환을 일으키는 세균이다.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암연구소(IARC)는 헬리코박터균을 1급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소화성 궤양을 예방하려면 위산 분비를 촉진하는 환경을 피해야 한다.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됐다면 제균 치료를 우선 시행해야 하고 다시 감염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음주ㆍ흡연ㆍ커피ㆍ초콜릿ㆍ탄산음료를 비롯해 자극이 강한 조미료 사용을 줄이는 것이 좋다. 위점막을 손상할 수 있는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면 소화성 궤양 예방을 위해 위산 억제제나 위점막 보호제를 추가로 처방받아 위험을 줄여야 한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