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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의 세상읽기] 우리 아이들이 살게 될 환경

지역뉴스 | | 2023-06-26 14:19:24

권정희의 세상읽기, LA미주본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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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LA미주본사 논설위원)

‘몬태나~’ 라고 하면 소나무 향기가 느껴진다. 기억 속의 몬태나는 청량하고 싱그럽다. 20년 전쯤 옐로스톤 국립공원으로 여행가는 길에 잠깐 거쳤는데, 자연풍광이 인상적이었다. 숲이 깊고 하늘이 맑았다. 

이제는 거기도 바뀐 모양이다. 여름마다 산불로 “연기가 자욱하다, 세상이 불바다다”라고 클레어 블라시스라는 대학생은 법정 증언대에서 진술했다. 우리 가족이 몬태나를 스쳐갔을 당시 갓난아기였거나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젊은이 청소년 어린아이들이 지금 주정부를 상대로 싸우고 있다. 지난 12일부터 이번 주까지 몬태나에서는 특별한 재판이 열렸다. 기후위기 재판이다. 

‘헬드 대 몬태나’로 불리는 이 소송은 현재 5살에서 22살인 주민 16명이 3년 전 몬태나 주정부를 제소하면서 시작되었다. 정부당국의 친 화석연료 정책이 ‘깨끗하고 건강에 좋은 환경’을 보장한 헌법에 위배되며,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헌법적 권리를 침해했다는 주장이다. 

몬태나는 지하자원이 많은 주다. 석탄 생산량은 미국에서 5위이다.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가 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보니 주의회를 비롯한 정부당국은 정치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환경정책법을 제정해 에너지경제가 기후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정부는 고려하지 말라고 못 박았을 정도이다. 덕분에 왕성하게 추진되는 화석연료 프로젝트들로 대기는 오염되고 기후변화는 심해지면서 환경이 나빠졌는데, 이는 주 헌법이 명백하게 금지하는 것이라고 원고 측은 주장한다.   

몬태나 헌법은 주민들이 깨끗하고 건강한 환경에서 살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과도한 채굴과 벌목을 우려한 자연보호주의 시민들의 주도로 1972년 환경권이 기본권리로 주 헌법에 추가되었다. 

소송은 일면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싸움이다. 나이든 세대는 당장의 경제적 이득과 현실을 보고(혹은 발이 묶여있고), 젊은 세대는 당위와 이상, 미래를 본다. 기후는 그들이 앞으로 살 환경이라는 점에서 현실이기도 하다. 다가올 현실이다. 지난주 원고 중 한사람으로 증언에 나선 그레이스 깁슨-스나이더(19)는 “미래를 생각하면 두렵다”고 했다. “래프팅 하던 강은 잦은 가뭄으로 수심이 얕아졌고, 축구하다 숨을 들이쉬면 산불연기로 매캐하기 일쑤이고, 로키산맥 글래시어 국립공원에서는 빙하가 녹아내리고 있다”며 더 이상 어린 시절의 몬태나가 아니라고 했다. 장차 80년 쯤 몬태나에서, 지구에서 살 텐데 갈수록 건강과 삶이 위태로워질 거란 걸 알면서 살기에 80년은 너무 길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러니 주정부가 온실가스 배출을 단계적으로 감축해줄 것을 원고 측은 요구하고 있다. 

반면 피고인 정부 측 변호를 맡은 주검찰은 문제 축소로 일관하고 있다. 몬태나의 온실가스 배출은 전 지구적으로 볼 때 너무도 미미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3억 명이 사는 나라에서 우리는 100만명이다. 79억이 사는 지구에서 고작 100만이다. 지구의 기온에 영향을 주겠다고 주차원에서 할 건 정말이지 거의 없다.” 

모래사장에 바늘 하나 떨어트린 정도라는 입장이다. 그런데 엄마라면 어떨까. 그곳에서 내 아이가 뛰어놀게 된다면, 아무리 작은 바늘이라도 기어이 찾아내고 막아내고 싶지 않을까. 몬태나 청(소)년 소송은 알고 보면 아이들과 엄마들의 합작품이다. 너덧 살 어린아이들이 원고로 포함된 것은 엄마들이 자녀들을 모두 함께 소송에 참여하게 한 결과이다. 그리고 그들 뒤에는 소송을 지휘하고 변호하는 단체가 있다. ‘우리 아이들의 신뢰(Our Children‘s Trust)라는 환경문제 전문 비영리 로펌이다. 대표는 변호사이자 엄마인 줄리아 올슨. 우리가 망친 환경에서 살게 될 사람은 아이들인데, 그들은 의사를 표현할 기회가 없다, 아이들이 말할 기회를 주어야겠다며 그는 2010년 비영리단체를 만들었다. 

그가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다. 2006년 8월 늦더위가 몹시 심했던 날, 임신 8개월이던 그는 어딘가 시원한 곳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들어간 곳이 영화관이었고 마침 기후위기 다큐 ‘불편한 진실’이 방영되고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그는 엄청 울었다고 했다. ‘어떤 세상에 내가 지금 아기를 내어놓는 건가, 아기가 어떤 세상에 살게 될 건가’를 영화가 너무도 생생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원래 환경문제 변호사였던 그는 ‘환경’과 ‘아이들’을 묶는 프로젝트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세계적 기후학자인 제임스 핸슨 박사와 대화를 나누면서 젊은 세대를 전면에 내세우는 소송 아이디어를 갖게 되었다. 출범 후 ‘우리 아이들의 신뢰’는 50개 주, 연방정부를 대상으로 수십건의 소송을 추진했지만 줄줄이 실패했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었다. 이번 몬태나 소송은 법정재판까지 간 최초의 케이스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재판결과는 7월 초쯤 나올 전망이다. 원고 측이 승소한다면 기후소송에서 이정표적 사건이 될 것이다. 많은 문제가 그렇듯 기후대책은 선택의 문제이다. 당장의 현실을 볼 것인가, 보이지 않는 미래를 볼 것인가. 우리 아이/손주들의 삶이 걸려있다면 어느 쪽을 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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