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상반기 이전에 내 집을 장만했다면 당분간 돌아오지 않을 행운을 잡은 셈이다. 아직 내 집을 보유하지 못했거나 내 집 마련을 계획 중이라면 당분간‘지옥’과 같은 주택 시장 상황을 각오해야겠다. 사상 초유의 팬데믹이 주택 시장 모습을 완전히 바꿔 놓았고 이전에 비정상으로 여겨졌던 상황이 이제‘뉴 노멀’로 당연시되고 있다.
경제 전문지‘인사이더’는 주택 시장에‘빙하기’가 찾아왔다고 선언했다. 팬데믹 이전의 매물 부족 현상이 팬데믹을 거치는 동안 여러 요인에 의해 사상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데 이를 표현한 것이다. 주택 시장에 찾아온 빙하기로 바이어, 셀러, 에이전트, 세입자 모두 현재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팬데믹 기점으로 주택시장에 두 번의 전환점
시장 여건 점점 악화… 사기도 팔기도 힘들어
◇ 2020년 7월 이전
주택 시장 타이밍을 정확히 예측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전문가는 물론 일반인도 각종 통계자료와 여러 뉴스를 분석해 나름대로 타이밍을 저울질 하지만 집값 등락 시기를 정확히 예측한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야 정확한 타이밍이 언제였는지 알 수 있는데 부동산 시장 전문가들은 2020년 7월을 그 시기로 꼽는다.
2020년 7월은 경제 활동 봉쇄령이 풀림과 동시에 내 집 마련에 굶주린 수요가 폭증한 시기다. 생애첫주택구입 세대인 밀레니엄 세대가 주택 수요를 주도한 가운데 ‘재택근무^원격 수업’이 만들어 낸 신규 수요까지 주택 시장에 물밀듯 쏟아져 나왔다.
한 부동산 시장 전문가는 2020년 7월을 기준으로 주택 시장은 ‘소유한 자와 소유하지 못한 자’로 나뉜다고 정의 내렸다. 2020년 7월 이전 주택을 구입한 사람은 과열 경쟁을 피할 수 있었고 곧이어 기대하지 않았던 주택 가격 폭등으로 자산 가치가 불어나며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이 절호의 타이밍을 놓친 이후 바이어들은 전쟁같이 치열한 경쟁에 승리해야만 내 집 마련이 가능했다.
◇ 2020년 7월, ‘첫 번째 전환점’
주택 수요가 갑자기 폭증했지만 주택 시장은 여전히 심각한 매물 품귀 현상을 겪은 시기다. 매물 부족 현상은 팬데믹으로 인해 발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10년 전부터 이어져 온 현상이다.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로 주택 시장이 붕괴하 면서 주택 건설 현장에서는 하루아침에 공사 음이 사라졌다.
주택 시장 붕괴 원인이 주택 과잉 공급으로 지적되자 주택 건설 업체들이 신규 주택 공급 규모를 앞다퉈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주택 수요가 서서히 살아나 공급을 늘릴 법도 하지만 주택 건설 업체들은 언제 닥칠 지 모를 침체에 대비해 공급량을 조절하며 지금까지 주택 재고 부족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주택 시장 분석 업체 알토스 리서치의 마이크 시몬슨 대표는 “팬데믹 이전에도 주택 재고는 사상 최저 수준이었는데 팬데믹을 거치며 더욱 악화했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팬데믹 이후 매물 부족 현상을 부추긴 요인은 크게 두 가지다.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도 모기지 이자율이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이에 ‘지금 아니면 집 못 산다’라는 공포감이 주택 수요를 크게 자극했다. 주택 대기 명령과 함께 ‘재택근무^원격수업’ 트렌드가 자리 잡으면서 ‘큰 집’에 대한 수요까지 가세했고 시장에 나온 집은 바이어간 ‘제 살 깎아 먹기’식 경쟁 끝에 불티나게 팔려 나가는 일이 빈번했다.
팬데믹이 주택 시장을 확 바꿔 놓은 2020년 7월은 ‘전국부동산중개인협회’(NAR) 2011년 집계를 시작이래 집이 가장 팔린 시기로 기록됐다. NAR은 주택 시장이 V자형 회복이 시작됐다고 공식 선언했고 이 같은 발표에 자극받은 첫주택구입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주택 시장에
뛰어들었다. 당시 첫주택구입자 비율은 전체 구입자 중 34%를 차지할 정도로 급증했고 2020년 3분기 주택 중간 가격은 33만 7,500달러로 전 분기 대비 5%나 폭등했다.
당시 주택 가격 상승세는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 모기지 이자율이 사상 처음으로 3% 미만으로 떨어지면서 주택 수요를 더욱 부추겼고 이후 지난해 상반기까지 2년 넘게 장기간 주택 가격 폭등세로 이어졌다. 국제신용평가기관 무디스 애널리틱스의 크리스천 디리티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2020년 7월은 저이자율과 재택근무로 수요가 폭증하면서 주택 시장이 전환점을 맞은 시기”라고 분석했다.
◇ 2022년 2분기, ‘두 번째 전환점’
주택 시장은 지난해 2분기에 또 한 차례 전환점을 맞이했다. 인플레이션 해소를 위해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고 이에 모기지 이자율도 덩달아 뛰기 시작한 시기다. 작년 4월 모기지 이자율은 바이어가 심리적 지지선으로 여겼던 5%를 처음 넘었고 주택 수요도 서서히 감소하기 시작했다.
올해 주택 시장은 이미 봄철 성수기를 지나 여름철 성수기를 앞두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면 주택 매물이 쏟아져 나오기 마련인데 올해는 그런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과거의 경우 봄철 성수기 주택 매물량은 평균 100만 채(단독주택 기준)에 달한다. 현재 주택 시장에 나온 매물은 40만 채로 과거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모기지 정보업체 블랙나이트에 따르면 3월 주택 시장에 새로 나온 매물은 팬데믹 이전보다 약 30%나 부족하다. 봄철 성수기가 시작되는 4월 매물량 역시 전년 동기 대비 23%나 감소한 수준으로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올해 3월과 4월 매물량은 경제 활동 중단으로 매물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던 2020년 봄과 비슷하다. 온라인부동산정보업체 리얼터닷컴의 대니엘 헤일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2019년 4월 매물량이 50만 채를 넘지 못할 것이라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았을 것”이라며 “그런데 현재 그런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라고 매물 부족 현상을 지적했다.
올해 최악의 매물 부족 현상은 사람들이 집을 내놓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주택 소유주 대다수가 매우 낮은 이자율을 적용받고 있기 때문에 높은 이자율로 새집을 구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블랙나이트에 따르면 모기지 대출로 집을 구입한 전체 주택 소유주 중 86%는 5%보다 낮은 이자율을 내고 있다.
이 중 절반은 3.5% 미만의 이자율을 적용받고 있는데 이들에게 ‘이자율 낮은데 집을 왜 팔아’란 생각이 지배적이다. 또 주택 소유주 5명 중 3명은 최근 4년 이내에 집을 구입한 경우로 높은 대출 수수료를 지불하면서 새집을 구입할 필요가 적다. 리디리트 이코노미스트는 “고이자율로 바이어들의 주택 구매 능력이 크게 낮아졌다”라며 “대출 자격이 있고 현금이 충분해도 살 만한 집이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준 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