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학술지 게재, 제주서 가져간 옹기로 연구해 발표
김치 발효를 촉진하는 전통 옹기의 비밀이 미국서 공부 중인 한인 유학생에 의해 과학적으로 규명돼 국제 학술지에 게재됐다.
조지아공과대학교(Georgia Tech)에 따르면 이 대학 조지 W. 우드러프 기계공학부 2년 차 박사과정 대학원생인 김수환 씨가 옹기가 가진 이산화탄소(CO₂) 투과성이 김치 발효를 가속한다는 점을 규명해 영국 '왕립학회 인터페이스 저널'(Journal of the Royal Society Interface)에 발표했다.
서울대 공대를 졸업한 김 씨는 지도교수인 데이비드 후 박사와 함께 고향인 제주에서 가져간 전통 옹기를 이용해 연구를 진행했다.
김 씨는 김치 발효 과정에서 발생하는 CO₂를 측정하고, 이 가스가 어떻게 생성되고 구멍이 많이 난 옹기의 다공질 벽을 통과하는지를 보여주는 수리모델을 접목해 전통 옹기가 김치의 질을 높이는 연결고리를 과학적으로 제시했다.
전통 옹기의 다공질 구조는 유산균이 살 수 있는 푸석푸석한 토양을 모방한 것으로, 옹기에서 숙성된 김치가 더 많은 유산균을 가진다는 점은 이전 연구를 통해 이미 밝혀져 있다. 하지만 옹기의 어떤 성질이 작용한 것인지는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우선 제주에서 장인이 직접 만든 전통 옹기에 물을 담고 증발량을 통해 투과성을 시험했다.
그런 다음 옹기와 유리병에 각각 소금에 절인 배추를 넣고 압력 센서를 이용해 발효과정에서 나오는 CO₂ 양을 측정해 비교했다.
이와 함께 옹기의 다공질 벽 구조를 토대로 수리 모델을 개발해 벽을 통해 사라지는 양까지 고려한 CO₂ 발생량을 추산했다.
연구팀은 이런 과정을 통해 옹기의 다공질 벽이 김치 숙성 과정에서 나오는 CO₂를 서서히 밖으로 빠져나가게 함으로써 김치의 숙성 속도를 높이는 것으로 분석했다.
옹기의 다공질 벽은 '안전밸브' 역할을 해 외부 입자가 들어오지 못하게 차단하면서 유리병보다 더 느린 속도로 CO₂를 증가하게 해주는 것도 확인했다.
이 실험에서 옹기 안 CO₂ 수치는 유리병의 절반도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또 옹기에서 숙성된 김치의 유익균이 유리병에서보다 26%나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밀폐된 유리병 안에서는 유산균이 자신들에게서 나온 CO₂에 질식해 죽지만, 옹기에서는 적은 비율로 밖으로 배출됨으로써 더 살기 좋은 환경이 돼 증식이 활발하게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후 교수는 "사람들이 수천년간 흙으로 많은 면에서 아주 첨단화된 기술을 가진 이런 특별한 용기를 만들어왔다는 것이 놀랍다"면서 "우리는 적당한 양의 다공성이 김치의 숙성을 빠르게 하고, 옹기가 이를 제공했다는 점을 발견했다"고 연구 결과를 설명했다.
김 씨는 "옹기는 화학이나 미생물학, 유체역학 등에 대한 현대적 지식 없이 만들어진 것이지만 놀라울 만큼 잘 작동한다"면서 "유체역학의 렌즈를 통해 전통 기술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얻게 된 것은 아주 흥미롭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연구가 전통 옹기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 에너지 효율적인 식품 발효와 저장 방법의 개발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