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성향 판사, 11%p차로 압승
“스윙 스테이트(경합주)뿐 아니라, 차기 대선에서 민주당이 우위를 잡았다.”
5일 뉴욕타임스(NYT)를 비롯한 미 주요 언론들은 전날 위스콘신주(州) 대법관 선거 결과의 의미를 이같이 분석했다. 진보 진영 후보였던 재닛 프로터세이위츠 판사가 위스콘신주 새 대법관에 당선됐기 때문이다. 미국 진보 진영의 상징적 가치가 된 ‘임신중지(낙태) 금지법 폐지’를 내세워 얻은 승리였다는 이유다. 특히 15년간 유지돼 온 위스콘신주 대법원의 보수 우위 구도가 깨졌다는 점에 비춰, 경합주에서의 민주당 영향력이 커졌음을 보여 줬다는 해석도 나온다.
4일 치러진 위스콘신주 대법관 선거 결과를 뜯어보면, 실제로 민주당으로선 환호성을 지를 이유가 충분하다. 민주당 지지를 받았던 재닛 프로터세이위츠 현 밀워키 카운티 순회법원 판사는 득표율 55.5%를 기록해 보수 성향인 댄 캘리 전 위스콘신주 대법관(44.5%)을 이겼다. 무려 11%포인트나 앞서는 완승이었다.
이러한 결과는 꽤 의미심장하다. 2020년 대선 당시 위스콘신주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49.45%)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48.82%)의 득표율 격차는 0.63%포인트에 불과했다. NYT는 “임신중지 금지에 대한 반발이 민주당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무소속 중도층까지 끌어모아 거둔 압승”이라며 “공화당의 차기 대선 후보도 낙태를 공공연히 반대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로써 위스콘신주 대법원은 15년 만에 ‘진보 우위’로 재편되게 됐다. 지금까지는 ‘보수 성향 대법관 4명·진보 성향 3명’이었으나, 보수적 색채가 짙었던 팻 로건색 대법관이 물러난 자리를 프로터세이위츠 판사가 채우게 된 탓이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일개 주의 대법관 선거 결과일 뿐이지만, 실질적 의미는 그 이상이다. 위스콘신주는 미국 대선에서 대표적인 ‘스윙 스테이트’로 꼽힌다. 최근 6차례의 대선 중 4번의 승패가 1%포인트 미만의 득표율 차이로 갈렸다. 유권자들의 정치적 성향이 고정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이번 위스콘신주 대법관 선거는 내년 11월 대선을 앞두고 민심을 확인할 기회이자, 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 모두 대선 전략을 점검할 계기로 인식돼 왔다.
이번 선거의 당락을 결정한 변수는 ‘임신중지권’ 논쟁이었다는 게 외신들의 평가다. 위스콘신주는 1849년 산모 생명이 위급한 경우만 예외로 두고 주법률로 낙태를 전면 금지했다. 이는 1973년 임신중지권을 인정한 연방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판결로 무효가 됐다. 그런데 지난해 6월 보수 우위의 연방대법원이 해당 판례를 뒤집었고, 위스콘신주는 다시 낙태금지법을 부활시켰다.
민주당은 ‘임신중지’를 대법관 선거 운동의 핵심 쟁점으로 삼았다. 프로터세이위츠 판사는 “낙태 결정은 주의원이 아니라, 여성과 의사에게 맡겨야 한다”고 외쳐 왔다. 켈리 전 대법관은 공개석상에선 관련 언급을 피했으나, 낙태 반대 단체의 지원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의 선거 전략이 제대로 먹힌 셈이다.
민주당으로선 공화당의 ‘게리맨더링(선거구를 특정 정당에 유리하게 획정하는 행위)’도 저지할 수 있게 됐다. 2010년 위스콘신 주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이 게리맨더링에 나서자, 민주당은 2017년 연방대법원에 소송을 냈고 이 사건은 주대법원으로 관할이 넘어갔다. 워싱턴포스트는 “주대법원이 진보 우위 구도로 바뀌면서 위스콘신 게리맨더링 철폐가 탄력을 받게 됐다”며 “내년 대선은 물론, 그 이후 선거도 진보 진영 후보들에게 유리해졌다”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