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불경기 장기화로 임대 갈등 잦아
캄튼에 웨어하우스를 갖고 있는 남모씨는 최근 황당한 일을 당했다. 자신의 건물을 장기 리스해 모자 영업을 하던 테넌트가 렌트비를 몇개월째 못낸 상황에서 스스로 나가겠다고 통보하고는 자신들이 재고로 갖고 있던 모자 수만여점을 그대로 놓고 나가 버린 것이다. 게다가 20개 팔렛 분량의 손세정제 마저 찾아가지 않아 짐 처리에 고심하고 있다.
남씨는 “모자는 그렇다 치고 이미 유효기간이 넘은 그 많은 손세정제는 학교나 자선기관에 기부할 수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장기화로 아파트 혹은 주택에서 렌트비 미납 문제를 둘러싸고 세입자와 집주인 사이에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웨어하우스와 오피스 등 상업용 건물에서는 테넌트들이 챙겨가지 않은 물건 처리를 두고 건물주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이같은 상황은 임대용 아파트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글렌데일에 위치한 투자용 타운하우스 유닛을 렌트했던 한인 김모씨도 미국인 테넌트가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지난 1년 6개월 동안 렌트를 내지 않았다. 결국 장기간의 소송을 거쳐 최근 퇴거를 했지만 집안과 차고에 쌓여있는 물건들을 버리지도 못하고 있다.
김씨는 “집안 곳곳이 많이 파손되면서 다시 렌트를 하려면 10만달러가 넘는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해야 하지만 짐들 때문에 공사가 지연되고 있다”며 “거듭된 독촉에도 전 테넌트가 고의적으로 물건들을 회수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LA한인타운 내 3층짜리 오피스빌딩 지하에 입주해 있던 한 회사는 6개월 이상 렌트비를 내지 않고 버텼다. 건물주가 퇴거소송을 진행하자 테넌트는 밀린 렌트비의 일부를 납부하는 조건에 합의하고 퇴거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테넌트가 남겨 놓은 가구류다.
건물주 측은 “책상과 의자, 진열장 등 대부분의 가구류를 남겨 놓고 사라져 버린 테넌트에게 짐을 치워달라고 요청했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며 “그동안 테넌트의 행태를 보면 우리가 임의대로 물건을 치울 경우 의도적으로 소유권을 주장할 가능성이 커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렌트비를 내지 않은채 ‘야반도주’를 감행하는 일부 테넌트들을 건물 CCTV를 훼손시키거나 일부러 벽이나 바닥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기 일쑤다.
애너하임의 한 건물주는 “영업이 안돼 렌트비를 못내 도망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지만 고의로 시설을 훼손하거나 망가뜨리는 행위는 절대 묵과할 수 없어 경찰 고발을 준비 중”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동산 브로커 민동규씨는 “심지어 RV팍에 장기간 세워 놓았던 차량 소유주들이 경기가 나빠지자 차를 포기하고 나가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면서 “건물주들에게는 쓰레기에 불과한 물건들이 테넌트의 재산으로 간주돼 함부로 처분하지 못하고 골머리를 앓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승호 상법 전문변호사는 테넌트가 놓고 나간 물건을 처리하기 위해선 최소한 15일 기간을 주고 물건을 찾아가지 않으면 보관비용 청구와 함께 물건을 처분하겠다는 서면통보(Notice of Abandonment)를 보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변호사는 그러나 “건물주에게 물건 처분 권한이 생긴다 하더라도 2,500달러 이상의 재산가치가 있으면 임의 처분이 아닌 경매를 통해서만 처분이 가능하다”며 “이 과정이 완료되기까지 건물주는 새 테넌트를 들이기가 힘들어 이중고를 겪게 된다”고 설명했다.
<노세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