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성 전 칼라일 CEO 직원들에 조직문화 비판
세계적인 사모펀드 칼라일그룹에서 최고경영자(CEO)로 일했던 한인 이규성(58·사진·로이터)씨의 사임은 창업자들과의 알력 때문인 것으로 확인됐다.
뉴욕타임스(NYT)는 29일 연임이 유력시됐던 이씨가 지난 7일 돌연 사임한 배경을 보도했다. 빌 콘웨이와 대니얼 다니엘로, 데이빗 루벤스타인이 1987년 공동으로 설립한 칼라일은 KKR, 블랙스톤 등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사모펀드다.
1990년대 들어 방산업체에 대한 적극적인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불린 칼라일은 조지 H.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존 메이저 전 영국 총리를 영입하는 등 정·재계에 다양한 인맥으로도 유명하다.
대학교수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 온 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한 이씨는 매켄지와 사모펀드 워버그 핀커스를 거쳐 지난 2013년 칼라일에게 입사했다. 이씨는 칼라일 입사 후 4년만인 지난 2017년 글렌 영킨과 함께 차기 공동 CEO로 내정됐다. 30년간 칼라일을 이끌어 온 창업자들의 결정이었다. 이후 이씨는 영킨이 정계에 투신해 버지니아 주지사가 된 2020년부터 단독으로 CEO를 맡아왔다.
칼라일 안팎에서 이씨에 대한 평가는 후한 편이었다. 경쟁업체인 KKR이나 블랙스톤보다 성과가 좋지 않았지만, 이씨가 CEO 자리에 오른 뒤 칼라일의 자산은 3,760억 달러로 93% 증가했다. 젊은 인재들의 기용과 여성과 유색인종에 대한 적극적인 포용 정책으로 사내 평가도 좋았다.
이 때문에 칼라일 이사회는 올해 2월 이씨에게 6,000만 달러의 인센티브를 지급하기도 했다. 또한 이씨도 CEO 재계약을 위해 5년에 3억 달러라는 초대형 계약을 제안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씨가 칼라일의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 사내 불만도 함께 커졌다. 현재 성과와 관련 없이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보수를 챙기는 관행의 문제점을 지적한 이씨에 대해 일부 경영진이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일부 직원은 회사를 그만두기도 했다.
이씨는 창업자인 루벤스타인이 개인자산을 관리하는 회사를 운영하는 데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칼라일이 고객 자산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루벤스타인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도록 먼저 신경을 쓰는 것이 불문율이 됐다는 것이다.
이씨와 창업자들과의 관계가 결정적으로 틀어진 것은 지난 6월이었다. 이씨는 칼라일 간부뿐 아니라 직원들까지 참석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과거 칼라일의 경영 행태와 사내 문화를 비판했다. 한때 업계 최고였던 칼라일이 보수적인 사내 문화로 뒤처지게 됐다는 발언도 했다.
창업자들은 2개월 후인 이달 초 화상회의를 통해 이씨에게 칼라일의 경영과 투자전략 수립 과정에 더 적극적으로 관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같은 창업자들의 통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힌 이씨는 “인생은 짧다”며 차라리 회사를 떠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