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속 촬영 분석 결과, 두개골 충격흡수 역할 통념 뒤집어
벌레를 잡아먹기 위해 나무를 격렬하게 쪼아대는 딱따구리의 뇌는뇌진탕 없이 성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 때문에 딱따구리의 두개골이 충격을 흡수하는 안전 헬멧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게 통념이 돼왔지만 오히려 강한 망치와 같은 작용을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관심을 끈다.
벨기에 안트베르펜대학의 생체역학 교수 삼 반 바센베르크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행동을 초고속 촬영해 분석한 얻은 결과를 생물학 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 발표했다.
저널 발행사인 '셀 프레스'에 따르면 연구팀은 오색딱따구리(Dendrocopos major)와 댕기딱따구리(Dryocopus pileatus), 까막딱따구리(Dryocopus martius) 등 딱따구리과(科) 3종의 나무쪼기 중 '감속 충격'(deceleration shock)을 처음으로 정량화하고, 이 자료를 토대로 생체역학 모델을 만들어 분석했다.
그 결과, 두개골의 충격 흡수 작용은 딱따구리에게 나무쪼기의 효율만 떨어뜨리는 불리한 결과만 가져다 준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딱따구리가 나무를 쫄 때마다 생기는 감속 충격은 원숭이나 인간 등 포유류에게 뇌진탕을 일으킬 수 있는 선을 넘어서는 것이지만 딱따구리의 작은 뇌는 이를 견뎌낼 수 있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연구팀은 딱따구리가 나무가 아닌 금속을 있는 힘을 다해 쫀다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대개 나무의 몸통을 쫄 때는 두개골이 헬멧처럼 보호 작용을 하지 않아도 뇌진탕을 일으키는 한계점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서 이뤄진다고 밝혔다.
반 바센베르크 교수는 "충격 흡수 장치가 없다고 해서 뇌가 위험에 빠진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면서 "100회가 넘는 쪼기에서 분석된 가장 강한 충격조차도 딱따구리 뇌에 가해지는 부하는 인간이 뇌진탕을 겪을 때보다 낮은 것으로 계산돼 여전히 안전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런 결과는 오랫동안 통용돼온 딱따구리 두개골의 충격흡수 가설을 뒤집는 것이다.
그는 "동물원에서 딱따구리를 촬영하면서 부모들이 자녀에게 딱따구리는 뇌에 충격흡수 장치가 있어 머리가 아프지 않다고 설명하는 것을 봤다"면서 "이런 근거없는 믿음은 우리가 밝혀낸 결과로 파멸하고 말았다"고 했다.
연구팀은 진화적 관점에서 딱따구리가 왜 더 큰 머리와 강한 목 근육을 갖지 않았는지를 이번 연구 결과가 설명해 준다면서 머리가 크고 목 근육이 강한 딱따구리가 있었다면 더 강하게 나무를 쫄 수 있었겠지만 뇌진탕이 큰 문제가 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또 딱따구리의 두개골을 모델로 충격흡수 물질과 헬멧을 개발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딱따구리의 몸 구조가 충격 흡수를 최소화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점이 드러났다고도 했다.
반 바센베르크 교수는 또다른 최근 연구에서 딱따구리의 부리가 나무에 박히는 사례가 종종 있지만 위, 아래 부리를 번갈아 움직여 신속하게 빼내는 것이 확인됐다며 부리의 형태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