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게 감기처럼 흔히 나타나는 질환의 하나가 질염이다. 질염은 말 그대로 감염으로 인한 질(膣)의 염증 상태를 말한다. 여성의 건강한 질(膣)은 90~95% 이상이 유익 균인 락토바실러스균이 살고 있다. 여성의 질에서 시큼한 식초 냄새가 나는 것은 이 균 때문이다. 이 유익 균은 산을 분비해 병균성 세균 감염을 예방하는 약산성(pH 4~5) 상태를 유지해주는 역할을 한다. 잦은 질 세정과 과도한 항생제 복용은 pH 농도를 중성으로 바꿔 세균에 쉽게 감염되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
질염이 발생하면 이를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산부인과 방문을 꺼려 병을 방치하는 이가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질염 증상이 나타나면 잘못된 인터넷 정보에 의존해 여성 청결제나 비의학적인 민간 요법 등으로 스스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질염 종류는 원인에 따라 다양하므로 정확한 진단에 따라 특화된 치료를 해야 완치할 수 있다. 스스로 해결하다가 잘못된 치료를 하거나 치료 시기를 놓치면 골반염, 자궁경부염으로 악화해 심하면 불임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런데 간지러움이나 분비물 증가, 냄새 등이 질염의 주증상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아프지 않고 단순히 간지럽기만 하거나, 다른 증상이 없이 분비물만 나온다고 모두 질염은 아니다.
홍연희 분당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가려움, 작열감, 분비물 등의 증상이 있을 때 질염일 가능성이 있지만 이런 증상만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했다.
가려움이나 작열감은 생리대 사용이나 휴지, 옷 등으로 인한 접촉성 피부염 때문에 생길 수 있고 다양한 회음부 피부 질환으로 인해 발생할 수도 있다. 또한 건조할 때에도 이런 증상이 나타난다.
홍연희 교수는 “질 분비물의 경우 여러 분비샘에서 분비물이 계속 나오므로 소량의 맑은 우윳빛 질 분비물은 정상적”이라며 “특히 생리 주기에 따라서도 질 분비물의 양과 양상은 달라질 수 있으며, 보통 생리 주기 중반 배란 시기에 양이 많아지고 끈적해질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질염을 일으키는 가장 흔한 감염은 크게 칸디다 질염, 세균성 질염, 트리코모나스 질염 등으로 나뉜다.
이 중 칸디다 질염은 진균(곰팡이)에 의한 감염으로 나타나는 질염으로, 여성의 75%가 적어도 한 번 겪는 흔한 질환이다. 외음부와 질 입구가 매우 가렵고 순두부나 치즈 같이 덩어리진 흰 분비물이 특징이다. 주로 면역력이 떨어지면 잘 발생한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있거나 특히 면역력이 떨어진 임산부나 당뇨병 환자에게서 잘 발생한다.
칸디다 질염은 보통 항진균제 복용 또는 항진균 질정제로 치료할 수 있다. 일단 치료하면 며칠 내 증상이 호전되고, 진균은 1주일 내에 박멸된다. 치료 도중 과도한 질 세정이나 다른 질환으로 복용 중인 항생제를 중단하는 것이 좋다.
세균성 질염은 주로 클라미디아, 마이코플라즈마균 등의 감염으로 발생한다. 약물 치료가 쉽지 않으며 재발률이 높아 골반염과 불임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질환이 진행되기 전에는 증상이 없어 치료 시기를 놓칠 때가 많다. 잦은 성관계나 과도한 질 세정이나 항생제 복용 등으로 잘 생기며 냄새를 동반한 다량의 분비물과 통증 등이 생긴다.
문종수 강동성심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주로 성관계로 전파되지만 남성에게는 증상이 없다”며 “완치하려면 증상이 없더라도 남녀 모두 약물 치료를 받아야 재발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세균성 질염의 주요 치료법은 항생제 복용이다. 하지만 지나친 항생제 투여는 질 내 유익 균인 락토바실러스균까지 죽여 다른 질염을 유발할 수도 있어 과도한 항생제 복용을 피해야 한다.
김탁 고려대 안암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질 내 유익 균인 락토바실러스는 한 번 사라지면 다시 서식하기 힘들기 때문에 질염 환자의 50% 이상이 재발한다”며 “질염이 만성이 되면 질 내 세균이 퍼지면서 골반염이나 방광염으로 악화하거나, 임신 시 위험할 수 있으므로 적절한 진단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트리코모나스 질염은 트리코모나스라는 원충에 의해 감염되는 질염이다. 보통 거품이 있는 초록색을 띈 분비물과 생선 비린내 같은 악취를 동반하며 매우 가려운 것이 특징이다. 외음부가 부어 오를 수 있으며 주로 성관계로 남성에서 여성으로 전파된다. 여성의 경우 심한 분비물과 가려움증이 있지만 남성은 증상이 심하지 않아 모르고 지낼 때가 많다.
문종수 교수는 “트리코모나스 원충은 물에서도 움직일 수 있어 목욕탕ㆍ수영장ㆍ깨끗하지 못한 변기ㆍ젖은 수건 등으로 감염될 수 있다”고 했다.
트리코모나스 질염은 메트로니다졸이라는 항생제를 투여해 치료할 수 있지만 재발률이 높아 치료 후 완치 판정을 받아야 하며 증상이 없더라도 반드시 남녀가 함께 치료를 받아야 한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