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잔류’ 정책 폐기, 5대4로 1·2심 뒤집어
연방 대법원이 이민 희망자가 관련 절차를 밟을 동안 멕시코에 머물도록 한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의 강경 이민정책 ‘멕시코 잔류’에 제동을 걸었다.
연방 대법원은 지난달 30일 조 바이든 정부가 트럼프 시절의 ‘멕시코 잔류’ 정책을 폐기해도 좋다고 5대 4로 판결했다. 보수 성향 존 로버츠 대법원장과 브렛 캐버노 대법관이 진보 성향 대법관 3명과 함께 폐기 방침에 손을 들어줬다.
‘멕시코 잔류’ 정책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민자들의 미국행을 저지하기 위해 도입한 것으로 미국에 망명을 신청한 이민자가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멕시코로 돌아가 기다리도록 했다. 판결의 쟁점은 1996년 이민법에서 미국 정부가 이민 절차를 밟을 동안 이민자를 멕시코 영토로 돌려보낼 수 있다고 언급한 조항이었다.
로버츠 대법관이 작성한 다수 의견문에서 미국 대통령은 이민법에 따라 육로로 미국에 도착하는 이민자를 돌려보낼 재량권을 지니긴 했지만 이는 반드시 의무사항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대법원은 봤다. 그러면서 이민법의 조항에 나온 단어가 단정적인 표현인 ‘shall’(~할 것)이 아니라 ‘may’(~할 수도)임에 주목하면서, 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고 봤다.
동시에 이민법에는 안보 위협을 가하지 않는 이민자는 인도적 사유나 공공 이익에 따라 미국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조항도 들어 있다. 캐버노 대법관은 보충 의견에서 1990년대 말 이후 모든 미국 대통령이 이민자가 미국에 들어와 이민 절차를 기다릴 수 있도록 했다고 언급했다.
이날 대법원의 판결은 앞서 바이든 행정부가 ‘멕시코 잔류’ 정책을 유지하라고 판결한 하급심 판결을 뒤집는 것이다. 공식적으로 ‘이민자 보호 협약’(MPP)으로도 불리는 이 정책은 트럼프 정부의 도입으로 2019년 1월부터 시행됐으나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 이후 폐기 처지에 놓였다. 이민 희망자가 치안이 불안한 지역에 묶여있으면서 범죄에 노출되는 등 부작용이 크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공화당이 장악한 텍사스주와 미주리주가 반발해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 주는 바이든 정부의 폐기 방침이 이민법 위반과 수용공간 부족, 행정·복지부담, 인신매매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내세웠다.
지난해 8월 텍사스 북부지법은 해당 정책을 부활하라고 판결했고, 제5 연방항소법원도 1심 판결을 유지하면서 결국 바이든 정부는 같은해 12월 해당 정책을 부활시켰다. 바이든 정부는 작년 12월 말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 허가 신청을 냈고 대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심리가 이뤄졌다.
이와는 별도로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시절의 또 다른 대표적인 이민자 억제 정책인 이른바 ‘타이틀 42’로도 법정 다툼에 휘말린 상태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정책에 의거해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근거로 미국 육로 국경을 무단으로 넘은 이민자들을 즉시 추방해왔다.
바이든 정부는 이 정책을 5월23일 종료한다고 밝혔지만 법원이 제동을 걸면서 계속 효력을 유지 중이다. 바이든 정부는 이에 항소 방침을 밝힌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