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발병 15~20%가 만성염증 등 감염과 관련
일부 바이러스, 유전자 주입해 세포 이상증식
예방접종·약물치료 등으로 충분히 예방 가능
49세 남성이 정기검진에서 간암을 진단받고 온 가족이 슬픔에 빠졌다. 이 남성의 가족 중에서 어머니, 형에 뒤이어 세 번째 발생한 간암이었기 때문이다. 이 가족에서 간암이 반복되는 이유는 B형 간염 보균자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날 때 두 형제 모두 B형 간염에 수직 감염된 탓이었다.
지난해 말 보건복지부와 중앙암등록본부에서 발표한 2019년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2019년 신규 발생한 암 환자는 25만여 명으로, 2018년 대비 3.6% 증가하였다. 우리나라 국민이 기대 수명인 83세까지 생존할 경우 암에 걸릴 확률은 37.9%로 추정되었다. 그런데 이들 암 중 상당 부분은 바이러스, 세균 또는 기생충 감염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암 가운데 15~20%가 감염과 관련돼 있다. 일부 바이러스는 자신의 유전자를 세포 안으로 주입해 세포가 이상 증식하게 만들어 암을 일으킨다. 감염이 세포의 만성 염증을 유발해 암이 생기기도 한다. 일부 감염은 암 발생을 억제하는 면역 체계를 무력화해 암을 일으킨다.
인유두종 바이러스(HPV)는 자궁경부암의 주원인이며, 남녀 성기와 항문 주변의 암 그리고 구강암과 인후암도 일으킬 수 있다. 우리나라의 자궁경부암 발생률은 2019년에 10만 명당 4.8명으로 최근 10년간 50% 이상 감소하였다. 주요 전파 경로는 성 접촉이지만 드물게 다른 신체 접촉 부위에 암이 생기기도 한다. 성 경험이 있기 이전인 10대에 자궁경부암 예방접종을 하면 90% 이상 막을 수 있다.
B형 간염 바이러스는 이전에는 출산 시 어머니에게서 태아에게 이어지는 수직 감염이 주요 전염 경로였다. B형 간염 바이러스와 C형 간염 바이러스는 주로 혈액을 통해 전파되므로 바이러스에 오염된 면도날·주삿바늘·칫솔 등을 함께 사용하는 경우나 성관계를 통해 감염될 수 있다.
B형 간염 바이러스나 C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간의 만성 염증이 진행되면서 간경화로 이행되고 이 과정에서 받은 손상이 간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B형 간염 바이러스는 예방접종으로 미리 막을 수 있다. 하지만 C형 간염 백신은 아직 개발되지 않아 개인 위생을 제대로 관리해 예방해야 한다.
인체 면역 결핍 바이러스는 면역세포가 파괴돼 면역 기능이 떨어짐으로써 기회 감염이 생기는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AIDS)을 유발하지만, 면역이 떨어진 상태에서 헤르페스 바이러스 8 감염에 의한 카포지 육종의 발생 위험을 높인다.
헬리코박터균이 위 속에 장기 감염되면 궤양이 생기는데, 염증과 점막 손상으로 인해 위암이 발생할 수 있다. 기생충도 암을 유발할 수 있다. 간흡충은 담도암 발생 위험을 높이며, 방광주혈흡충은 방광염 발생과 연관되어 있다.
모든 암은 아니지만 감염에 의해 발생하는 암은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B형 간염과 HPV는 예방접종하면 각각 간암과 자궁경부암 발생 위험을 크게 낮출 수 있다. 헬리코박터균, 간흡충, 방광주혈흡충에 의한 암 발생은 약물 치료하면 예방할 수 있고, C형 간염 바이러스에 의한 간암 발생은 개인 위생 관리로 바이러스 감염을 피하면 예방 가능하다.
<강재헌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