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주지사 선거 고배, 국정운영 동력 상실 우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10개월 만에 최대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텃밭으로 분류되던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열성 지지자인 공화당 정치신인에게 패배하면서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 피로감, 기름값을 비롯한 물가 상승, 아프가니스탄 철군 혼란 같은 바이든 행정부 실정에다 교외 중산층을 겨냥한 공화당의 ‘문화전쟁’ 선거 프레임이 먹혔다는 분석이다.
민주당은 당장 내년 11월 중간선거 전망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안 그래도 최근 지지율 하락에 시달리던 바이든 대통령은 남은 3년 국정 운영 동력 상실이 불가피해졌다. 반면 공화당은 내년 중간선거에 희망을 갖게 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공화당 내 영향력이 확인되면서 2024년 대선 재도전 가능성도 높아졌다.
지난 2일 실시된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사모펀드 칼라일그룹 최고경영자(CEO) 출신 글렌 영킨 공화당 후보가 50.9%를 득표, 48.4%에 그친 전 주지사 출신 테리 매컬리프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새 주지사로 당선됐다.
이번 선거는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첫 주요 지방선거다. 내년 하원의원 전체와 상원의원 3분의 1이 교체되는 중간선거 ‘풍향계’이기도 했다. 특히 버지니아주는 지난해 대선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10%포인트 차이로 이기는 등 2009년 이후 민주당이 진 적이 없던 곳이라 표심 변화 여부가 관심사였다.
결과는 공화당 낙승이었다. 8월만 해도 여론조사 상 매컬리프 후보가 영킨 후보를 8%포인트 이상 앞섰지만 격차가 좁혀지다 급기야 지난달 하순 역전 분위기로 반전됐다. 개표에서도 초반부터 공화당 영킨 후보가 앞서간 뒤 한 번도 역전을 허용하지 않으며 승리를 거뒀다.
이탈리아 로마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영국 글래스고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 참석을 마치고 3일 새벽 귀국한 바이든 대통령은 국정 운영에 더 부담을 안게 됐다. 당장 연방의회에 계류 중인 사회안전망(1조7,500억 달러), 사회기반시설(1조2,000억 달러) 예산안 통과가 문제다. 민주당 내 중도·진보그룹 간 대결이 계속될 경우 상황은 더욱 어려워진다. 뉴욕타임스는 “영킨의 기습적인 승리는 민주당이 위험에 처했다는 가장 엄연한 경고”라고 했다.
지난해 11월 선거에서 대통령은 물론 연방 상·하원 모두 다수당 지위를 차지했던 민주당은 여론 변화에 긴장한 모습이다. 강세지역 버지니아에서의 충격적 패배는 중간선거는 물론 향후 대선 ‘스윙 스테이트(민주·공화당을 번갈아 지지하는 주)’에서 민주당 고전을 예고하는 신호탄이기 때문이다. 당내 갈등 수습이 관건이다.
공화당 영킨 후보를 지지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은 숨은 승자 중 한 명이다. 내년 중간선거에 출마하는 공화당 후보들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를 얻기 위해 경쟁할 가능성이 높고 자연스레 그의 당 장악력이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날 치러진 뉴욕·보스턴·애틀랜타 등 주요 지역 시장선거에서는 민주당 후보들이 강세를 보였다. 뉴욕은 경찰 간부 출신인 뉴욕 브루클린구청장 에릭 애덤스 후보가 역대 두 번째 흑인 뉴욕시장이 됐다. 보스턴에서는 36세 대만계 미셸 우 후보가 199년 만의 첫 유색인종 여성 보스턴시장 기록을 세웠다.
<워싱턴=정상원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