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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의 세상읽기] 황혼 그리고 이혼

지역뉴스 | | 2021-05-07 09:09:39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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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 부부의 이혼 소식이 이번 주 지구촌을 흔들었다. 빌(65)과 멀린다(56) 부부의 개인사를 넘어 차후 초래될 파장과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의 사립 자선단체인 빌 & 멀린다 게이츠 재단의 앞날은 어떻게 될지, 재단이 추진하던 질병과 가난, 코비드-19, 기후변화 등 글로벌 프로젝트들에는 어떤 변화가 올지, 1,400억 달러가 넘는 게이츠의 재산은 어떻게 분할될지, 주식시장에는 어떤 영향이 미칠지 … 호기심 섞인 전망들이 무성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인의 관심이 쏠린 것은 그들의 이혼 사유. 천문학적 부를 일구고 범지구적 프로젝트로 사회환원을 하며, 도무지 부족할 것 없어 보이던 그들이 왜 갈라서는 걸까 - 평소 안정감 있는 모범부부 이미지가 강했던 만큼 이들의 결별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이다.

 

이혼을 주도한 것은 멀린다였다. 혼전 성인 ‘프렌치’가 들어간 ‘멀린다 프렌치 게이츠’ 명의로 이혼신청서가 지난 3일 워싱턴 주 킹 카운티 법원에 접수되었다. 이어 부부는 트위터 공동성명을 통해 “인생의 다음 장에서 부부로 같이 성장할 수 있으리라고는 더 이상 생각지 않는다”고 밝혔다. ‘빌의 일중독이 너무 심했다’ ‘멀린다가 빌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려 했다’ ‘빌이 옛 여자친구와 너무 오래 친분을 유지했다’ 등 이혼 배경과 관련한 보도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부부 사이의 일은 부부만이 아는 것. 추측이 있을 뿐이다. 확실한 것은 이들이 세 자녀를 성인으로 잘 키우고, 함께한 27년 세월을 뒤로 하고, 각자 자기 길을 가기로 했다는 사실이다. 5060 나이, 근 30년 결혼생활, 그리고 이혼 - 바로 황혼이혼이다. 미국에서는 백발이혼(Gray porce)이라고 불린다.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살다가, 뒤늦게 부부가 갈라서는 이런 이혼이 요즘 너무 늘고 있다.

 

근년 미국도 한국도 이혼율이 낮아지는 추세이지만 50세 이상 부부의 이혼은 예외다. 2019년 기준, 미국의 이혼율은 결혼 1,000건 당 14.9건 꼴로 50년래 최저수준. 하지만 황혼이혼은 전체 이혼하는 사람 4명 중 한명 꼴로 1990년(10명 중 한명 꼴) 이후 2배 넘게 뛰었다. 한국에서 역시 지난해 코비드 사태로 결혼 이혼 모두 줄었지만 유독 황혼이혼만 늘었다. 황혼이혼은 현재 전체 이혼 3건 중 한건 꼴. 오래 같이 산 부부들이 왜 줄줄이 헤어지는 걸까.

 

결혼생활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를 토대로 유지된다. 부부가 같이 할 일과 같이 나눌 사랑, 같이 하는 시간. 그리고 빠질 수 없는 현실적 조건인 돈.

 

바라만 보아도 행복하던 연인들은 결혼식을 기점으로 생활의 최전선에 던져진다. 생활비 벌고, 아이들 낳아 기르고, 다운페이 모아 집 장만하고, 아이들 교육시키고 … 그렇게 20여년 정신없이 뛰면서 아이들 모두 대학에 보내고 나면 부부 앞에 놓이는 현실은 ‘빈 둥지’ - 흰머리 듬성듬성해진 부부가 텅 빈 집에서 마주 앉는다. 부부를 묶어줬던 자녀양육 프로젝트는 끝나고, 젊은 날 뜨거웠던 사랑은 기억에서 가물가물하고, 아이들 없이 지내본 적이 없으니 둘이서 뭘 해야 할지 모르는 난감한 시간이 펼쳐진다.

 

황혼의 이 낯선 시간에 찾아드는 것은 홀가분함과 허전함. ‘부모로서의 의무를 다했으니 이제 자유’라는 홀가분함, ‘아이들이 다 떠났다’는 허전함이다.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지면서 찾아드는 것은 ‘앞으로의 내 인생’에 대한 상념. 오랜 세월 잊고 있던 ‘나’를 돌아보게 한다.

 

여성이 남성보다 황혼이혼에 적극적인 이유는 ‘잃어버린 나’와 상관이 있다. 평생 ‘나’를 죽이며 살아야 했던 여성들, 남편에 대한 불만이 컸던 여성들이 ‘아이들 대학에 보내면’ ‘아이들 결혼시키면’ 하며 벼르다가 결단을 내리는 것이 이때다. 여성의 경제적 자립능력이 커진 만큼 “더 이상 참고 살지 않겠다” “내 인생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는 의지가 강하다.

 

황혼이혼이 늘어나는 근본적 이유로는 길어진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이 꼽힌다. 환갑이면 노인이던 이전 세대와 달리 요즘 60은 너무 젊고 건강하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대략 30년. 그래서 50~75세는 인생 제3막으로 분류된다. 성장기와 성년기의 1~2막을 거쳐 노년기로 들어가기 전, 재미있고 의미 있게 새로운 삶을 추구할 수 있는 중간단계라는 것이다. 미국의 베이비부머들이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않을 경우 부부 합의 하에 사이좋게 결별하는 추세, 그와 비슷한 한국의 졸혼 현상은 ‘인생 제3막’과 상관이 있다.

 

수마트라 섬 밀림지대에는 샤망이라는 큰긴팔원숭이가 살고 있다. 암수 한쌍이 새끼를 낳아 가족을 이루며 사는 유인원이다. 샤망부부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노래를 부르는데(자신들의 영역을 알리는 것) 연륜이 쌓이고 부부간 정이 깊어질수록 이중창 실력이 좋아진다고 한다. 한편 동물원에서 억지로 짝을 짓게 하면 샤망부부가 새끼는 낳아도 같이 노래를 부르지는 않는다고 한다. 부부간 교감이 없기 때문이다.

 

황혼에 같이 노래 부를 마음이 없는 부부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이중창이든, 골프든, 신앙/봉사활동이든 정서적으로 교감하며 인생 제3막을 함께 써나가겠다는 시도 혹은 의지가 필요하다. 부부가 소 닭 보듯, 원수 대하듯 하며 허비하기에 남은 세월은 너무 길고, 남은 인생은 너무 아깝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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