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지 않는다. 이곳에 남아서 주장으로서 시작하는 새 시즌 개막이 기대된다.” 2015년 7월 11일, 애스턴빌라의 파비안 델프는 이렇게 공식 선언했다. 6일 뒤, 델프는 맨체스터시티로 이적했다. 유럽 축구 이적시장은 이렇게 예측을 불허한다.
최근 스페인 축구 매체 ‘돈발롱’이 손흥민(28ㆍ토트넘)의 레알 마드리드(스페인) 이적설을 보도했다. 소문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여름 리버풀의 사디오 마네가 본인의 레알 이적설 질문에 “레알은 손흥민을 좋아한다”라고 대답해 눈길을 끌었다. 이후 손흥민은 틈틈이 레알과 연결됐다. 국내 축구 팬들로서는 진위 여부를 떠나 상상만으로도 기분 좋은 소문이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적다.
토트넘과 손흥민의 현 계약은 2023년까지다. 2015년 첫 계약 후 토트넘은 2018년 여름 연봉을 64%나 인상해주면서 5년 장기계약으로 손흥민의 소유권을 다져 놓았다. 올 시즌을 끝내도 3년이나 남았다. 토트넘의 대니얼 레비 회장은 전략적 선수를 일정한 패턴으로 관리한다. 첫 계약 기간의 절반이 지나기 전에 연봉을 대폭 인상해주면서 장기계약으로 되받는다. 토트넘의 ‘3대장’이라고 할 수 있는 해리 케인(27), 델리 알리(24), 손흥민이 동일한 과정을 밟았다. 세 선수의 이적 관련 협상에서 구단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사업적 관점에서 손흥민은 ‘황금 카드’다. 구단은 대외적으로 꼭 필요한 선수임을 표방한다. 유럽 축구의 문법에 따르면, 이 말은 이적료 대박을 터트릴 전략적 카드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손흥민은 만 27세로 최전성기를 막 시작했다. 올 시즌 팀 성적 부진에도 32경기 16골로 경기당 0.5골을 기록 중이다. 측면공격수 포지션에서는 최상급에 속한다. 2018년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 문제를 해결했다. 한국 기업의 스폰서 유치를 기대할 수도 있다. 국제스포츠연구소(CIES)는 6월 3일 기준 손흥민의 이적료 가치액을 7,560만 유로(1,024억원)로 평가했다. 그나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소폭 하락한 몸값이다.
손흥민의 경기력, 마케팅 가치, 계약기간을 종합 검토할수록 레비 회장에게는 ‘팔려면 최대한 비싸게’라는 근거가 강해진다. 유럽 현지에서는 레비 회장이 손흥민의 몸값을 1억5,000만 유로(2,031억원)로 책정했다고 말한다. ‘적당한 가격에 넘길 생각 없음’이란 뜻이다.
손흥민의 이적을 어렵게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손흥민이 너무 잘나서’다. 현재 손흥민의 연봉은 약 98억원 수준으로 알려진다. 그 정도 연봉을 충당할 구단은 유럽 내에서도 많지 않다. 이적 추진은 명분도 중요하다. 토트넘을 떠나려면 객관적으로 한 단계 높은 팀을 골라야 한다. 레알, 바르셀로나(스페인), 맨체스터시티(잉글랜드), 리버풀(잉글랜드), 바이에른 뮌헨(독일) 정도다.
지난해 기존 에이전트와 결별한 후, 부친 손웅정씨가 손흥민의 이적 업무를 맡는다. 평소 손웅정 씨는 “행복하게 뛸 수 있는 환경이 최우선”이라는 지론을 고수한다. 조제 모리뉴 감독 체제에서 손흥민이 붙박이 주전에 합당한 대우를 받는다면 올 여름 레알행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다. 2021년 여름으로 예상되는 토트넘과 재계약 협상이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