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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아이러니’… 아프간 탈레반 포로협상 물꼬 틔워

글로벌뉴스 | 사회 | 2020-04-06 09:09:56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누가 스킨 케어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은 지난달 21일(현지시간) “아프간 난민들이 ‘코로나19 사태’ 발발 등 여러 어려움에 직면하면서 이웃 국가로부터 귀국이 잇따르고 있다”는 이색적인 논평을 발표했다. 탈레반은 “이들이 우울한 귀국길에 있는 만큼 모든 운송업체들은 필요한 편의를 기꺼이 제공하고 가능하다면 버스요금도 낮추거나 적어도 기존 요금에서 인상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탈레반 연초 합의 이후

   포로 석방 놓고 첨예한 대립

“감옥에 집단 감염 덮친다”에

   탈레반 호응·교착해소 가능성

 

탈레반이 지칭하는 ‘이웃 국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심각한 이란이다. 탈레반은 귀환 난민들을 소재로 일주일 새 3차례나 논평을 냈다. 18일 논평에서는 “부당이득을 취하는 업체는 법적 처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는가 하면 “탈레반 통치 영토 내 관료들은 귀국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모든 편의를 제공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국제 비정부기구(NGO)를 향해서도 탈레반 통치 영토로 필요한 장비와 의약품, 구호물자 등을 보내고 필요한 의무를 다할 것을 주문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사태를 맞아 귀국하는 자국민들을 챙기는 여느 정부의 화법과 다르지 않다.

 

흥미롭게도 탈레반은 19일자 또 다른 논평에서 “우리 ‘이슬람 에미레이트’는 이란 지도자들과 국민들에게 진심어린 위로의 말을 전한다”며 외교적 수사를 잊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란 지도자들이 아프간 난민들을 강제추방하지 말고 이들에게 의료적 지원을 제공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란에 있는 아프간 난민들에게는 “주재국의 법과 코로나19 관련 가이드라인을 엄격히 준수해달라”고 부탁했다. 탈레반이 난민들을 중심에 놓고 관료, NGO, 이란 정부 등 관련 당사자들에게 빠짐없이 메시지를 전한 것을 두고 ‘코로나 정치’를 그럴 듯하게 펴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란에는 근 40년간 분쟁을 겪어온 아프간 난민들이 300만명 가량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아프간 정부는 이란 정부에 “국경을 닫아달라”고 요청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경은 닫히지 않았고 이란과 인접한 아프간 서부 헤랏 지방엔 3월 초 기준 하루 평균 1,200~1,400명의 아프간 난민들이 귀환 행렬을 이뤘다. 

국제이주기구(IOM)의 지난달 10일 발표에 따르면 3월1일부터 1주일간 헤랏 지방과 님로즈 지방 두 국경을 통해 귀환한 난민 수는 1만9,562명이다. 평소보다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이들 모두 이란에서 미등록(undocumented) 신분이었다. 미국의 경제제재 여파로 이란이 고전하는 가운데 이란이 미등록 난민까지 검사와 치료를 했을 리 만무하다. 중동 전문 온라인매체 미들이스트아이(MEE)는 20일 “이란 일부 병원들이 자국 환자도 감당 못한다며 아프간 난민들의 치료를 거부하는 사례가 있다”고 보도했다.

다방면으로 패닉에 빠진 아프간 난민들이 서둘러 귀환한 헤랏 지역은 지금 아프간 코로나19의 진앙지가 되고 있다. 급기야 지난달 25일 아프간 정부는 헤랏 봉쇄에 돌입했다. 아프간 정부는 이날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람은 총 79명이며 이 가운데 2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확진자 대부분은 헤랏 지역에서 나왔다. 이에 더해 아프간 코로나19 첫 사망자가 서부 헤랏이 아닌 북서부 발크에서 나왔다는 건 또 다른 우려다. 사망자는 이란에서 돌아온 귀환 난민도 아니고 해외여행 이력도 없는 40세 남성이다. 이미 지역 내 감염이 현재진행형일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WHO)의 24일자 일일 상황보고서를 보면 아프간 내 확진 사례는 여전히 ‘해외유입’으로만 기록돼 있다.

아이러니한 상황도 있다. 코로나19 사태의 악화가 되레 3월 내내 교착 상태에 빠져 있던 ‘아프간 평화협상’의 돌파구가 될지 모른다는 실낱 같은 희망이 그것이다. 

익히 알려진 대로 탈레반은 지난달 29일 미국과 우선협상으로 합의에 이르렀다. 합의에 따르면 아프간 주둔 미군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다국적군은 14개월 이내에 완전 철수하게 된다. 문제는 다음 단계, 즉 ‘아프간 내부 구성원들 간 평화협상’이다. 이 내부 협상으로의 진입을 앞두고 탈레반 수감자 석방 문제가 첨예한 대립을 낳았다. 미국과 탈레반의 합의문 제1장 C항에는 “전쟁포로와 정치범 석방 문제는 관련 당사자 모두의 승인과 협력으로 신뢰를 구축하고자 하는 조치”이며 “3월 10일 아프간 내부 협상 개시 첫날 이전에 탈레반 포로 및 정치범 5,000명, 아프간 정부 포로 1,000명을 석방할 것”이라고 적혀 있다.

문제는 이 합의의 주체는 미국과 탈레반인 데 비해 탈레반 수감자 석방을 결정하는 건 아프간 정부의 몫이라는 사실이다.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 수감자를 점진적으로 석방하겠다는 입장에서 이 문제를 내부 협상 의제로 하자고 주장하는 반면 탈레반은 내부 협상이 본격화되기 전에 전원을 석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열악한 감옥 환경이 집단감염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감염병에 대한 지극히 상식적인 우려가 점점 힘을 얻으면서 수감자 석방에 명분이 더해지고 있는 것이다. WHO도 감옥을 비롯한 각종 구금시설에서의 코로나19 발발을 막기 위한 특별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상태다.

아프간 평화협상의 미국 측 단장인 아프간계 미 외교관 잘마이 칼릴자드는 19일 트위터를 통해 “코로나19 사태로 포로 석방 문제가 더 시급해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면 좋겠지만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여행 제한 문제가 있으니 인터넷으로 화상대화를 하자”고 운을 뗐다. 이후 수하르 샤힌 카타르 도하 소재 탈레반 정치국 사무소 대변인은 지난달 22일 밤 트위터에 “오늘 오전 10시 ‘이슬람 에미레이트’ 팀은 미국ㆍ카타르 중재단이 배석한 가운데 카불 정부와 정치범 석방 문제에 대한 화상협상을 했다”고 썼다. 지난달 25일엔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까지 참여한 5자간 2차 화상협상도 진행됐다. 이 회의에선 카불 외곽 바그람 군기지에 구금중인 탈레반 수감자들의 신분증 대조부터 시작해 양측 수감자들에 대한 석방을 개시하기로 했다. 코로나 위기가 포로 석방에 물꼬를 틔운 셈이다.

권력기반이 취약해진 아슈라프 가니 정부에 코로나19 사태는 정부의 무능함을 부각시키면서 정치적으로 크나큰 악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되레 정치적 호재를 만난 건 탈레반 쪽이다. 탈레반은 이미 15일 논평에서 코로나19 확산과 수감자 이슈를 엮어서 논평하는 기민함을 보인 바 있다. 논평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카불 정부 하 구금시설에는 기본적인 위생시설이 없어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가장 심각한 위험에 직면해 있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코로나19의 아이러니’… 아프간 탈레반 포로협상 물꼬 틔워
마이크 폼페이오(왼쪽) 미 국무장관과 아슈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이 지난달 23일 아프간 수도 카불 대통령궁에서 교착 상태에 빠진 평화안 합의 이행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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