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대는 '평화' 가리키는데...
냉전시대 사고방식 변화 필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애틀랜타협의회 김형률 회장은 지난 몇 년 사이에 애틀랜타 한인사회에서 활발한 봉사 및 사회활동으로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인물이다. 그가 맡은 단체는 대체로 사업을 활발하게 그리고 성공적으로 펼쳐 회원들과 한인사회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지난 19일 김 회장이 운영하는 빌딩관리업체 클린넷 USA 오브 애틀랜타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그의 이민 인생, 사업, 그리고 한인사회 봉사활동 등에 대해 들어봤다.
미주 평통 유일 훈장..."위원들 덕"
김 회장은 지난해 12월 20일 서울 백범김구기념관 컨벤션홀에서 열린 국민훈장 수여식에서 평화통일 기반 구축과 국민통합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상했다. 미주지역 지역협의회장으로는 유일했다. 축하의 말을 건네자 김 회장은 지역 위원들과 동포들의 호응 덕분이라며 공을 돌렸다.
“제가 잘해서 받은거라기 보다는 97명의 애틀랜타 평통위원들을 대표해서 받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애틀랜타 동포들이 평통 사업에 적극 호응한 덕분입니다”
김 회장은 처음 평통 회장이라는 중책을 맡았을 때 어깨가 무겁고 눈앞이 캄캄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마침 문재인 촛불정부가 들어서 정부정책 방향이 김 회장의 평소 성향과도 맞았고 마침 평창올림픽 개최,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등의 굵직한 행사 등으로 할 일도 많았다. 그래서 열정적으로 평통 일을 하다보니 미주지역 평통 가운데 가장 훌륭한 단체활동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운이 좋았습니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화해 분위기가 조성됐고 이어진 남북 및 북미회담 등이 열려 동남부지역 17개 주정부 및 카운티, 시 등의 올림픽 지지결의안을 지역 한인단체 등과 협력해 받아냈습니다. 남북 및 북미정상회담 때도 워싱턴으로 날아가 랍 우달 연방하원의원의 지지결의안을 받아낸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평통은 '사교클럽' 오명 어느정도 탈피"
김 회장은 취임 초 한인사회에 만연한 '하는 일 없이 친교만 하는 사교클럽'이라는 평통에 대한 인식을 깨고 평통의 위상과 역할을 재정립하고 평화통일 공감대 형성, 동포들에게 다가서는 봉사하는 평통을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임기를 6개월 정도 남겨놓은 시점에서 공약이 어느 정도 이행됐는지 질문했다.
“위촉장만 받고 명함만 만들어 일하지 않고 세월만 보내는 평통에서 벗어나 실제 일하는 평통을 만들기 위해 나름 노력했습니다만 평가는 한인사회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동포사회의 보수성향 때문에 과거에는 초청되기 어려웠던 정세현 전 장관, 박한식 조지아대(UGA) 교수 등 전문가들을 초청해 동포들의 인식을 바꾸려는 노력도 일정 성과가 있었다고 자부합니다”
평통 회장으로서 임기 동안 아쉬운 점이 있었는지 물었다. 그는 스스로 신청서를 제출해 임명장을 받아놓고 전혀 활동하지 않는 위원들, 지위를 이용해 득세하거나 과시하려는 위원들, 현 정부 임명장을 받고서 현 정권을 비난하는 위원들이 일부 있어 아쉬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본국 정부는 해외 평통위원 수를 현재 3,600여명에서 3,000명 정도로 줄일 방침임을 밝혔다면서 애틀랜타도 차기 19기 위원은 10여명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평통위원들은 참 열심히 일했습니다. 특히 임원들의 수고가 어느 기보다 많았습니다. 특히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7-8시간을 운전해 행사때마다 제일 먼저 달려오는 정원탁 부회장 같은 분은 참 고마운 분입니다. 그리고 일하는 평통을 만들기 위해서는 위원 연령의 하향화가 필요합니다”
김 회장은 한인사회의 보수적인 냉전시대 사고방식 성향에 대해서도 선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안보도 중요하지만 시대정신은 평화를 가리키고 있는데 아직도 냉전적 대결을 주장하고 평화를 추진하는 세력을 빨갱이 등 입에 담지 못할 용어로 비난하는 분들을 보았다면서 “안보는 책임을 맡은 군인들과 정부 관계자 등이 충분하게 역할을 하면 되는 것이고, 더 나은 안보인 평화통일과 남북화해를 추구하는 것이 바른 방향이라고 확신한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유학생서 전국체인기업 오너로
김 회장은 25세 때인 1987년 도미했다. 건축학도였던 그는 서던일리노이 대학에서 파괴공학을 공부한 뒤 한국에 돌아가려는 생각으로 미국에 유학 왔다. 그리고 애틀랜타에 거주하던 친지가 빌딩 매니지먼트 회사 일을 도와달라고 요청해 애틀랜타로 와서 머서대에서 공부하며 일하기도 했다.
일을 하려면 제대로 알아야 하겠다 싶어 6개월 동안 청소전문학교를 다니며 전문성을 높였다. 학교졸업 후 플로리다 잭슨빌에 파견 나가 실제 현장을 경험하고, 이후 다시 애틀랜타로 돌아와 벅헤드 빌딩을 맡아 슈퍼바이저로 일하며 여러 사람으로부터 신용을 얻었다.
남의 밑에서 일하는 것보다 내가 회사를 차려야 하겠다는 생각에 회사를 설립했으나 재정관리에 실패해 곧 폐업했다. 일한 대금을 결제받는데 보통 3~6개월 걸리는 현실때문에 회사를 운영하려면 뒷돈이 있어야 했는데 모아둔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삐삐, 프리페이폰 사업에도 손댔지만 결국 실패했다.
다시 청소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번에는 캔자스시 학교건물을 청소하는 일이어서 가족이 이주했지만 겨울철 눈길에서 사고를 당해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고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애틀랜타로 다시 돌아온 그는 미국회사 하청을 받아 빌딩 1천만 스퀘어피트(sqf)를 혼자 관리하면서 밤낮으로 일만 했다. 1천만 스퀘어피트는 보통 다운타운 20층 빌딩 10채가 넘는 규모다. 은행건물 300개를 혼자 관리하기도 했다.
그는 지역, 학교, 인종 등 모든 면에서 미국에서는 마이너리티 출신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류사회 진입을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한다는 목표를 갖고 열심으로 앞만 보고 전진했다. 그리고 이후 클린넷 USA 애틀랜타라는 전국적인 체인망을 가진 기업의 오너가 됐다. 회사는 김 회장 없이도 잘 돌아갈만큼 시스템이 잘 갖춰졌고, 이익은 하청업체 시절보다 덜 남지만 미국직원들의 복리후생을 잘 챙겨주면서 건실하게 회사를 운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미국 직원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면서 절제하고 신중하게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돈을 벌면 자유도 생기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한인들도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변화에 대처하며 목표를 갖고 도전하면 무슨 분야에서든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한인회장... 60세 이후에"
김 회장은 한인골프협회장, 한인회 이사장, 한인상공회의소 이사장 등을 거쳐 현재 평통 회장으로 한인사회를 위해 일하고 있다. 그는 한인사회에 나온 뒷얘기를 들려줬다.
“오영록 한인회장이 3번이나 찾아와 1년에 4회 열리는 이사회만 주재하면 된다며 세 번이나 찾아와 설득하는 바람에 한인회 이사장직을 수락했어요. 그런데 웬걸 마침 불타 없어진 도라빌 한인회관을 대체할 새 한인회관을 건립하는 시절인지라 처리하고 중재하고 협의할 일이 너무 많아 일주일에 4일은 한인회에 나와 일해야 했어요.”
그는 한인골프협회장을 맡아 협회 활성화에 기여했다. 미주 한인 역사상 골프장 36홀을 빌려 연속해서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른 것은 그가 처음이다. 31세에 골프에 입문해 한때 세미 프로 정도의 실력이라는 평을 들었던 그는 골프를 통해 인생의 의미를 많이 깨닫기도 했다. 각 홀마다 설계자의 의도가 담긴 난관이 있고, 이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인생사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골프협회를 잘 운영하니 입소문이 나 주변에서 오 회장이 한인회 이사장 자리를 추천했던 것이다. 51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이사장 일을 했지만 그는 경륜없다는 소릴 듣지 않으려고 내 사업처럼 한인회 일을 했다. 이사들의 협조도 좋아 이사회비 100% 완납은 전설이 됐다.
그는 한인사회 리더의 자질에 대한 생각이 확고했다. “한인단체장은 혼자가 아닌 함께 일할 수 있고, 평소에 주변인들에게 덕을 많이 베푼 사람이 나서야 합니다. 의사결정 및 재정관리도 투명하게 집행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인단체는 홍보가 제일 중요합니다. 또한 전문적인 사무체계를 위해 회장은 바뀌어도 사무총장은 연속성을 가진 인물이 맡아 일관성 있게 운영이 돼야 합니다. 아울러 단체장 주변에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싱크탱크를 둬 단체의 방향에 지속인 조언과 제안을 받아야 합니다.”
인터뷰 말미에 김 회장에게 평통회장 연임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한참을 생각한 그는 “회장은 한국정부의 지명을 받는 자리이기 때문에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는 자리”라는 사실을 전제하면서 “박수받을 때 떠나라는 말이 있듯이 다시 한다면 더 잘할 자신이 없어서 연임 의사는 요청이 와도 고사하겠다”고 말했다.
김 회장에게 또한 한인회장을 맡고 싶은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쉴새없이 한인단체장을 연속해서 맡다보니 체력도 보강해야 하고, 회사도 새 목표를 정해 확장해야 해서 몇 년은 준비하고 내실을 다지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며 “나중에 60세 정도 돼서 한인사회가 요청한다면 한인회장을 맡아 멋있게 봉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현재 만 56세다.
조셉 박 기자
지난해 12월 20일 서울 백범김구기념관 컨벤션홀에서 열린 국민훈장 수여식에서 수상 직후의 김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