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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 아침] 흔적이 남겨진 수첩

지역뉴스 | | 2019-01-12 18:18:29

칼럼,김정자,행복한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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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새해를 맞으면 간직해온 수첩의 묵은 흔적들을 꼬박꼬박 새 수첩으로 옮겨적는다. 딸네의 생일,약혼, 결혼기념일에 손주들의 생일이며, 지인들을 비롯해 기억에도 가물거리는 분들의 연락처까지. 심지어 한 해가 다하도록 사용치않은 전화번호, 주소까지 빠뜨리지 않고 옮겨 적는다. 아마 내년에도 새 수첩으로 옮겨적은 번호들 가운데 한 번도 눌러보지 않은 전화번호들을 그대로 방치 해 둘 것 같은 예감이 적중할 것 같다. 옮겨적지 않으면 영원히 만나 볼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한 번 쯤은 만나 질 것 같은 기대감을 갖고 살아가고 싶기 때문일게다. 어쩌면 전화의 주인이 바뀌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어쩌면 흔적이 바래질 것 같은 기우와, 지우고 싶은 흔적들이 혹여 눈에 띠일까하는 군걱정 탓일 수도 있겠다 싶다. 한번은 한국으로 역이민을 떠나신 분의 전화 번호를 다시 옮겨 적으면서 어쩌면 다시 돌아 오실 것 같은 그리움 탓에 아직껏 그 번호를 수첩에 달아 두고있다. 수첩에 이름이 적혀있는한 그 이름과의 인연은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도 한 몫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수첩 속에서 서로를 교감하며 각기 다른 기억들을 품고있는 많은 이름들이 차츰 그 수가 줄어들기 시작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두루두루 만남을 보다나은 세상살이라 여기며 함께 가는 것을 바람직한 것으로 빠짐없이 골고루 손을 잡고 걸어왔지만 나이가 깊어갈수록  면적이 넓은 만남보다 농도 깊은 만남이 형성되고 긴 세월을 어울려도 가감없는 순전함을 잃지않은, 변함없는 소수의 어울림이 더욱 소중하고 편안한 것으로 다가오더라는 것이다. 세월의 덧옷을 껴입는 동안 인연의 소중함을 깨달아가며, 소중하지 않은, 소홀해도 되는 인연이란 없음을 일찌기 눈치 챈 것이 행운이었다. 인연이란 게 그리 손 쇱게 만들어지지도 않으려니와 한번 만들어진 만남들을 소홀치않으며 간직해가고 싶지만 일방적 애착만으론 쉬운 일이 아니더란 것이다. 매일 매일 감당해내야하는 일들이며 끝없이 밀려드는 크고작은 일들을 처리하기에도 바쁜 세상인데 이미 소실된 인연에까지 연연하며 붙들고있는 모습이 코미디 한장면으로 치부받을 수도 있겠다 싶지만, 새 수첩으로 옮겨놓는 묵은 지인들을 놓아버리지 못하는 것은 삶 속에 오래도록 잡리잡은 숨통같은 것이라 하고 싶다. 흔적이 남겨진 수첩이 생태계의 습지대 같은 어찌보면 버려진, 하잘것 없는, 쓸모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늪과 갯벌의 기능과 비견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쪽으로 마음을 모으게 된다.  

바닷가 갯벌, 하구와 하천, 자연호수나 논, 인공저수지등이 습지로 자연계에 이바지하고 있다. 비가 많이 오게되면 홍수 피해를 줄여주기도 하거니와 습지의 흙은 숱한 자양분을 품고 있어 다양한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도록 귀한 환경을 공급해주고 있다. 토사를 고정시켜 항구나 수로를 보호하며 해일로 부터 육지를 보호하는 일들이며 철새 도래지가 되어주는 자연계의 숨통 같은 존재라서 습지의 존재성이 지구의 자궁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늪 식물들 또한 오염된 물질을 정화해주는 통로가 되어주는 소중한 일을 감당해내고 있다. 묵혀진 세월의 흔적들이 남겨진 수첩을 내 생의 습지와 같은 존재라 우기며 넘보고 싶음을 숨길 수 없음이다. 인생 여정을 지나가면서 일일이 거두지 못하고 버려두고갈 수 밖에 없는 일들이며, 스치움으로만 만족해야할 사람들이며, 깊게 맺어진, 어쩌면 영원으로 이어질 이 모든 일들과 관계들이 지금의 나를 있게만든 것이요 인생의 자양분이 되어준 것이라는 지론 때문에 습지와 수첩은 긴밀한 공통분모를 보유하고 있다고 헤아려진다. 

수첩에는 묵은 흔적들이 농축된 나머지 해가 갈수록 비축될 양은 늘어날 수 밖에 없음인데, 수첩을 정리하며 아쉬운 것은 한 때 소중했던 이름들이 하나 씩 버려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시간이란 늘 그랬듯이 소중한 사람들의 기억들을 내마음과 내 수첩 속에서 조용히 사라지게 만들어 가고 있다. 소중한 이름들과 말소리들이 미세한 단위로 흐려져간다는 것이 슬프다. 사람들과의 간격을 염려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를 조심스레 누비고 다녀야하고 필요한 만큼의 속도를 제어하기도 해야하고 때론 못견뎌 하기도 하면서 버려지거나 낙오하지 않으려는 발버둥으로 허우적대는 것 조차도 함께 마주보며 살아가게 된다. 사람도 나무 처럼 잘 심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을 심고 정성을 다해야 만 쉴만한 그늘도 생기는 것. 하루를 다하고 일과를 접는 고즈넉한 시간이면 습지 같은 삶의 여정을 담은 일기장을 열고 닫는 평범한 여인이 되어있는 내 모습이 반갑다. 더 무엇을 바램할까 싶다. 수첩 속에 간직 된 습지의 테두리가 그 부피의 범위를 갈수록 더해갈 것이라서 그 반경의 자양분을 누리게 됨을 생의 상여금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기대와 설램을 안고 시작한 한 해가 흥분과 기쁨으로 보람과 환희의 날들을 보내었다고 자부할 수 있기를 기원드린다. 새해를 위해 지난 날들의 흔적을 습지의 늪처럼 간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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