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에게는 누구나 고통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성경 말씀을 통해서 그리고 세상 경험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고통을 당하면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 이유를 알고 싶어하는 충동을 받습니다. 그것은 고통을 당하는 당사뿐만 아닙니다. 곁에서 그를 지켜 보는 사람들까지도 “저 사람이 왜 저런 일을 당하게 됐을까?” 하고 궁금증을 가집니다. 이렇게 이유를 알고 싶어하는 관심이 지나면 사람들은 함부로 남의 문제를 놓고 이러 쿵 저러 쿵 떠들다가 결국은 고통 당하는 사람의 상처에다 식초를 갖다 붓는 것과 같은 잔인한 짓을 저지르곤 합니다.
욥의 친구들을 보십시오. 처음에는 세 친구들은 “어떻게 하면 욥을 위로할 수 있을까?”하고 동정하는 마음으로 그를 찿아 왔습니다. 처음 동기는 너무나 아름 다왔습니다. 그러나 욥이 겪는 고통을 가까이서 자세히 주목하는 중에 그들의 마음에는 좋지 못한 호기심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고통 중에 있는 어떤 형제를 찿아 갔을 때 그가 당하는 고통이 하잖은 것이면 “세상을 살다 보면 이럴 때도 있지요. 조금만 고생하면 곧 좋아질 것입니다.” 하고 쉽게 위로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생각되던 사람이 엄청난 재난을 당한 것을 보면 그만 마음이 달라집니다. “왜. 저런 사람이 저런 일을 당하게 됐을까?” 하고 은연중에 그 이유를 알고 싶어하는 이상한 호기심이 일어 납니다.
욥의 친구들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상상을 초월할 만큼 엄청난 재난을 당한 욥을 보면서 “무슨 죄를 지었길래 저렇게 천벌을 받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그들의 마음을 꽉 사로. 잡았던 것입니다. 인간이니까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악한 것을 해서 손가락 질 받는 사람이 무슨 일을 당하면 별로 놀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법 없어도 살 수 있는 호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무슨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되면 “ 그 사람이 참 안됐어. 왜 그럴까?” 무언가 잘못 한게 있는 거 아냐?” 하는 식으로 생각을 돌려 버립니다. 이것이 인지상정인 것입니다. 우리는 욥의 세 친구를 통해서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보는 우리의 눈이 얼마나 잘못되기 쉬운가를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고통 당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사람이 절대로 옳은 대답이나 만족 할 만한 해답을 줄 수 없다는 사실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