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슨의 대통령 당선이 보여준 정치에 있어서의 민주적 격변은, 미국인들이 모든 시민을 위한 보다 많은 권리와 기회를 오랫동안 추구해 온 그 노력의 한 국면에 불과했다. 또다른 국면은 노조의 시작이었다. 1835년,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노동 세력들은 그때까지의 "해뜰 때부터 해질 때까지"의 하루 노동시간을 10시간으로 줄이는 데에 성공하였다. 뉴햄프셔주, 로드아일랜드주, 오하이오주 그리고 1850년에 연방에 새로 편입된 캘리포니아주에서도 이와 비슷한 개혁이 시작되었다.
참정권의 확대로 사람들은 이미 교육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갖게 되었는데, 어디에서나 총명한 정치가들은 교육을 못받은 문맹자들까지도 보통선거권을 갖게 될 때의 위협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뉴욕주의 드위트 클린턴, 일리노이주의 에이브러햄 링컨, 그리고 매사추세추주의 호레이스 만 등은노동단체들의 지지를 받았다. 이들 노동 단체의 지도자는 세금으로 뒷받침되는 무료학교를 모든 아동들을 위해 세울 것을 요구했다. 점차적으로 여러 주가 차례찰O로 그러한 무료 교육을 실시하기 위한 법을 제정하였다. 그리하여 이 나라 북부 전역에서는 공립학교제도가 보편화되었다. 그러나 이 나라의 다른 지역에서는 공립학교 교육을 위한 투쟁이 여러 해 동안 계속되었다.
이 기간에 대두한 또다른 영향력있는 사회운동은 주류 판매와 음주에 대한 반대, 즉 금주운동이었다. 이 금주 운동은 종교적 신념, 근로계층에 미치는 음료의 영향, 부녀자들이 폭음한 남자들로부터 당한 폭행과 고통 등 다양한 관심사와 동기에서 나왔다. 1826년 보스턴의 목사들은 금주촉진협회를 조직했다. 7년 후 이 협회는 필라델피아에서 전국대회를 소집했고, 이 대회는 미국금주연맹을 결성했다. 이 연맹은 모든 주정 음료수의 폐기를 요구했고, 주의회에 대해 주류의 생산과 판매를 금지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1855년에 와서는 13개 주가 금주법을 시행했다. 하지만, 이 법은 후에 법원에서 그 타당성 여부를 심리받게 되었다. 금주법은 북부의 뉴잉글랜드 지방에서만 존속하였다. 그러나 1830년부터 1860년 사이에 금주운동은 미국인의 1인당 주류 소비를 낮추었다.
다른 개혁운동가들은 교도소 문제와 정신이상자들을 돌보는 문제를 다루었다. 그들은 처벌에 중점을 둔 감옥을 범법자들이 사회복귀를 준비하도록 교도하는 장소로 바꾸고자 노력하였다. 매사추세츠주에서는 도리어 딕스가 정신이상자들을 위한 환경개선을 위해 애썼다. 당시 정신이상자들은 환경이 열악한 사설 구빈원과 감옥에 감금되었었다. 매사추세츠주에서 이들을위한 환경개선 운동에 성공한 후, 그녀는 남부로 옮겨가서 이 운동을 벌였는데, 남부에서는 9개 州가 1845년부터 1852년 사이에 정신이상자들을 위한 병원을 설립했다.